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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단순함이 나를 이끌다

34일: 산티아고에서 네그레이라(22.4km)

2019년 6월 25일(화)

 

가기로 했으니 가자. 산티아고를 뒤로 하고 걷는다. 

잠을 설쳤다. 산티아고에 왔다는 기쁨 때문이면 좋으련만. 새벽에 들어온 순례자가 쿵쿵 거리는 소리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깼다. 6시에 눈을 떴다. 정말 침낭 밖으로 나오기 싫었다. 갈까? 말까? 꼭 가야만 하나? 짧은 시간 동안 사람이 수많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했다. 생각이 많아지면 복잡해진다. 단순하게 생각했다. 나에게 이렇게 답했다. “가기로 했으니 가자. 걷자고 왔으니 걷자”

아침 공기는 차가웠다. 앱의 지도를 보며 길을 걸었다. 내 앞에 한 사람이 부지런히 길을 가고 있었다. 순례길은 산티아고 외곽을 돌아 숲으로 이어졌다. 주택단지 두 개를 지나 알토 도 벤토로 이어졌다. 






해돋이는 언제 봐도 경이롭다. 

첫 번째 주택단지를 벗어난 언덕에서 동쪽 하늘을 보니 산티아고 대성당 위로 해가 솟고 있었다. 먹구름 사이로 나온 섬광이 비추어주는 대성당의 모습은 신비함으로 가득한 미지의 세계처럼 보였다. 네 명의 순례자들은 그런 모습을 각자의 핸드폰에 담았다. 


하늘이 흐려서 오전에는 걷기에 좋았다. 순례길에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대부분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끝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대성당을 벗어나는 골목에는 피스테라와 묵시아를 버스로 돌아볼 수 있는 안내 전단지를 나누어 준다. 가격은 25유로에서 29유로다. 하루에 다녀올 수 있기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처럼 걷는 이들도 있었다. 


숲과 언덕과 도로를 따라 알토 도 벤토에 들어가니 생리현상이 찾아왔다. 앞을 보니 순례자들이 들어가는 바르가 보였다. 급하게 들어가서 화장실을 찾으니 웃으면서 주인이 손짓으로 화장실을 가리킨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고 내 모습이 그랬나 보다. 나를 보더니 당신 같은 순례자 많다는 듯이 빙그레 웃는다.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해서 야외에서 막간의 휴식을 즐겼다. 


어제부터 알베에서 혼자 잤다. 프리미티보 길 12일은 길에서는 혼자여도 알베에서는 영주 씨와 같이 지내면서 밥도 같이 먹었는데 어제부터 혼자서 먹는 게 영 어색했다. 길을 걸으면서 내가 처음 길을 걸을 때 느낌을 또 받았다. 동양인이 나 혼자였다. 키 작은 동양인 남자의 순례길을 처음 보는지 사람들은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의식해서인지 그 눈길에 대한 나의 감정은 반반이었다. 

폰테나세이라 입구. 퐁당 하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패스.

길은 넓은 초지를 지나 공장을 오른쪽에 두고 가파른 언덕길로 이어졌다. 지도상으로는 이 언덕을 지나 내려가면 네그레이라였다. 언덕이라고 해야 내가 넘은 산에 비하면 평지였다. 하지만 4일 정도를 평탄한 길을 걸은 몸은 금세 그 길에 익숙했던 기억에 힘들어했다. 

사람이 이렇게 편안한 것에는 금세 적응하는구나 했다. 오백 미터 정도의 언덕길을 올라오니 금세 길은 내리막으로 바뀌었다. 좌우에 높이 솟은 나무 덕분에 그늘진 길은 오르막길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 가파르지 않고 완만했다. 흥겹게 찬양을 부르며 내려왔다. 



좌우의 나무가 사라지자 건물들이 나타났다. 피스테라로 가는 순례자들이 묶어가는 첫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작은 도시임에도 알베가 많았다. 공립 알베는 내일 순례길이 시작하는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도심을 벗어나야 했기에 도심에 위치한 사립 알베로 들어갔다. 

네그레이라 입구의 순례자 동상.

 5층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알베는 주인도 없었다. 

여태까지 경험한 것이 있으니 안내문을 찾았다. 

주인은 16시쯤 온다고 하며 알아서 하라는 내용은 같았다. 짐을 정리하는데 동양인 여자가 들어왔다. 한국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일본 순례자였다. 


짐 정리와 빨래까지 끝내니 15시였다. 해는 중천이고 몸은 피곤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17시였다.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도시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에 길로 나왔다. 

가까운 마트에 가서 내일 아침거리와 과일을 샀다. 

마을은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관공서까지 있는 그래도 규모가 있는 도시였다. 바르의 외부에 앉아서 햇볕을 즐기는 마을 사람들은 지나가는 나를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특히나 나이 든 어른들은 환히 웃으면서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고 생각하니 마음 편했다. 


18시쯤 문을 연 식당이 있어서 순례자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뉴스를 보니 유럽을 휩쓸고 있는 무더위에 대한 여러 화면들이 보였다. 스페인에는 큰 불이 났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가 불가마였다. 검색을 해보니 40도가 넘는 무더위가 스페인 남부를 불가마로 만들고 있었다. 다른 유럽의 여러 나라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내가 왜 덥지 않냐고 묻는지 나는 오늘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흐린 날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침에 침낭에서 나오기 싫었던 그 찰나를 이기고 나온 것이 보람 있는 하루였다. 다시 시작했으니 내일 최선을 다해 걷자고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시켰다.


걷는다는 것은 참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내가 바욘에서부터 피스테라까지 어떻게 걸었나 생각하면 은혜이고 기적일 수밖에 없다. 길 위에서 나는 오늘 하루만 걷자라는 다짐을 수없이 했다. 그러니 길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걷는 것뿐이었다. “정말 그것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일단 한 번 걸어봐” 걸어보면 길 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 44박 45일 동안 나는 정말 단순하게 살았다. 그리고 사람이 단순하게 산다는 것이 왜 정신건강에 좋은지 알게 되었다. 산티아고를 떠나는 아침 채 2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단순하게 산다고 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길 위에서 비를 맞아가며 때로는 바람과 싸워가며 높은 산을 넘기도 했고 넓은 초지를 외로움과 싸워가며 걸었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다음 목적지까지 갈 수 없는 것이 산티아고다. 그 산티아고가 나에게 알려준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단순하게 살라는 것이다.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면 길이 보인다. 


강원도 최북단 간성에서 목회하는 친구의 카톡 프로필 글은 이렇다. “가장 중요한 것을 얻기 위해 중요한 것을 포기하라” 이것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만 고르면 된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버려진다. 목사이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친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기에 친구는 젊은 날 그곳에 들어갔고 지금도 그곳을 지키고 있다. 단순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가장 중요한 것에 내 모든 것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길 위에서 나는 복잡함을 버리는 훈련을 한 것 같다. 그렇다고 단세포가 된 것은 아니다. 깊이와 복잡은 다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는 훈련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길은 그렇게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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