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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산티아고여~~!

33일: 오 페드로우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24.18km)

2019년 6월 24일(월)

 

이른 아침 산티아고를 향한 길. 바람대로 모든 것이 좋았다. 

내가 과연 걸어서 산티아고에 갈 수 있을까? 정말 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수없이 해왔다. 그렇게 걸어왔고 산티아고에 들어가는 아침이 밝았다. 오 페드로우소를 벗어난 길은 숲을 끼고 초지로 이어졌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맞이하며 걷는 길은 걱정과 근심에서 두근거림으로 바뀌고 있었다.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길에는 사람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여태 보지 못했던 이들도 이름 모를 길에서 합류했다. 


한국을 떠날 때 몸무게보다 5kg이 빠졌다. 

산티아고에 온 것을 환영하는 듯 거대한 돌비석이 고속도로 옆 순례길에 떡 하니 서 있었다. 이것을 보니 정말 산티아고에 왔다는 느낌이 확 하고 들어왔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멀었다. 산티아고 공항을 둘러가는 길을 지나 산파요 성당 앞에서 잠시 쉬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흐린 하늘이 걷기에 좋은 날씨를 제공해 주었지만 오늘만큼은 화장한 날이었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통했는지 10시 넘어서 하늘은 파란색과 하얀색 구름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었다. 



고소산 정상. 산티아고 대성당이 보인다. 

산파요를 지난 길은 TV에서 봤던 고소산으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바라본 산티아고는 손에 잡힐 듯 눈에 들어왔다. 어제 만났던 젊은 한국 분들을 또 만났다. 서로 고생하셨다며 나머지 길 잘 가시라는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산을 내려오는 길 왼편에는 마치 옛날 군대 막사를 보는 것 같은 똑같은 모양의 구조물들이 있었다. 400 베드에 달하는 대규모 알베였다. 이곳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는 1시간 30분 걸린다. 순례자들이 이곳에서 자고 여유롭게 출발해도 되는 거리였다. 이유는 산티아고 성당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래며 산을 내려갔다. 

고소산 알베. 군대 막사 보는 것 같았다. 

 고속도로 위로 난 다리를 건너 산티아고에 들어가니 콘코르디아 공원이 나왔다. 공원 앞에는 순례자들이 걸어 놓은 수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나도 뭘 걸고는 싶었지만 순례길의 끝은 피스테라였기에 스쳐 지나갔다. 몇 개의 건널목을 건너니 건물의 높이도 낮아지고 지은 지 오래돼 보이는 건물들이 간간히 보이기 시작했다. 구시가지에 접근했나 싶은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런데 “목사님” 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나가는 한국 사람이라곤 나와 영주 씨 둘 뿐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이룬부터 라라베추까지 함께 걸었던 혜원 씨였다. 한 번은 꼭 만났으면 했는데 산티아고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물랐기에 정말 반가웠다. 3일 전에 도착한 혜원 씨는 오늘 귀국한다고 했다. 다시 한번 길안내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헤어졌다. 



길은 약간의 오르막길로 이어졌고 오래전 지은 건물과 오래된 길임을 알 수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드디어 멀리서 봤던 종탑이 커다랗게 눈앞에 보였고 백파이프 소리가 나는 곳으로 순례자들의 줄은 이어지고 있었다. 성당과 부속건물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곳에서 들려오는 백파이프 소리는 공명이 되어서인지 듣기에 좋았다. 

지금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던 순례자들에게는 더없이 힘이 되는 소리였다. 그렇게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대성당. 많은 순례자들이 서로서로에게 격려를 보내고 있었다. 

많은 순례자들이 있었다. 순례자들은 함께 걸어온 이들과 도착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나와 영주 씨도 그 기쁨의 말들을 서로에게 해주었다. 단체로 순례를 온 듯한 사람들은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그 소리가 다른 때 같았으면 소음으로 들렸겠지만 이때만큼은 당신도 정말 수고했어!라는 소리로 들렸다. 

영상통화로 아내에게 도착 소식을 전했다. “우리 남편 대단하네. 고생했어요” 하며 아내도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TV 영향 때문인지 나는 울고 있는 사람이 있나 살폈다. 많은 순례자들 중에 우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솔직히 도착하면 벅찬 감정이 올라올까 싶었다. 그런데 “아~ 왔구나” 하는 감정 외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아마도 여기가 끝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한참을 시청 기둥에 기대앉아서 대성당과 하늘 그리고 순례자들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각자 갈 길이 있었다. 늦은 점심을 하면서 영주 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늘 점심은 헤어지는 턱으로 자기가 내겠다며 영주 씨가 계산했다. 영주 씨는 버스로 포루투로 갔다. 나는 산티아고를 떠나려고 계획했다가 산티아고에서 하룻밤 묶고 출발하는 걸로 계획을 변경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공립 알베는 걸어왔던 곳으로 다시 가야 했고 내일 가야 할 방향과는 반대였다. 앱을 살펴보니 내일 가야 할 방향에 알베가 있어서 그곳에 짐을 풀었다. 저녁이 되어서 마트에 갔다. 오래간만에 혼자 먹을거리를 사야 하니 어색했다. 물건을 들었다 놨다를 몇 번 하다가 우유와 빵 그리고 사과 2개를 사서 들어왔다. 

메움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고마운 국수.

딱딱한 바게트 빵을 먹으려다 그만두었다. 그래도 산티아고에 들어왔는데 고생한 나에게 조그만 사치를 부리고 싶었다. 검색을 해보니 가까운 곳에 중국식당이 있었다. 알베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매운 중국식 국수를 먹으니 그동안 매운 것에 배고팠던 위장이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다시 대성당 광장에 갔다. 그때까지 백파이프 연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끝냈는지 많은 순례자들이 광장 이쪽저쪽에 앉아서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우두커니 앉아 성당, 하늘, 지나가는 사람들을 봤다. 우리나라 말이 들리는 쪽을 보니 같이 길을 걸었던 순례자들이었는지 서로서로 수고했다며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프랑스 길을 걸었던 모양이다. 나처럼 북쪽 길과 프리미티보 길을 걸었다면 얼굴을 봤을 텐데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850km를 걸어서 왔다. 48살 인생에 이렇게 오랜 시간 걸었던 때는 없었다. 나는 결코 큰 키도 아니다. 

군에 들어올 때 신검에서 내 키는 168cm였다. 발도 내 또래 남자치고는 작다. 250cm. 작은 키에 작은 발로 한발 한발 걷다 보니 850km가 내 인생에 쌓였다. 그렇게 산티아고에 왔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렇게 큰 감흥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는 큰 각오도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내가 잘못되었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크다고 하면 큰일을 이루었으면 뭔가 다음에도 대단한 걸 할 거라는 것은 착각인 것 같다. 


실제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환경은 떠나기 전과 바뀐 것이 없다.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아내는 생활전선에 나가고 있다. 나는 산티아고에 오기 전 감명 깊게 봤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 ‘kingdom of heaven’이다. 예루살렘 마지막 공방전이 끝난 후 발리언과 살라딘이 강화회담을 한다. 

회담이 끝난 후 발라딘이 살라딘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예루살렘은 뭡니까?” 살라딘의 답은 이렇다. “nothing or everything”.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살라딘의 답은 지금도 선명하다. 

산티아고에 다녀오는데 350만 원이라는 비용이 들었다. 그러니 경제적 논리로 따지면 350만 원에 해당하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순례에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바란다는 것은 맞지 않다.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뭘 해도 때론 결과물이 없을 수 있다. 난 오늘 내 마음에 커다란 감흥이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싶다. “850km를 걸었는데도 기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면 그러냐고 받아주는 것이 정상이다”라고. 

왜 그래? 어디 아파? 왜 그 정도의 말뿐이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돈의 논리에 너무 젖어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뺏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으니 그는 “nothing or everything”이라고 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850km를 걸어보니 “기쁘다”는 말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나를 보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산티아고에 다녀와서 달라졌다면 달라진 것이다. 

침대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티아고 대성당.

알베에 들어왔다. 침대 위층에 있는 브라질 청년이 280km 걸었다며 자랑스럽게 순례증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내 것도 보여 달란다. 나는 내일 묵시아 거쳐서 피스테라까지 간다고 했다. 눈이 동그라지면서 그럼 어디서 출발했냐고 하길래 내 크레덴시알을 보여주었다. 850km 걸었다고 하니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며 웃던 얼굴이 금세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너도 대단한 일을 했다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그랬더니 다시 웃으면서 이곳에서 이틀을 쉬면서 즐기다가 집으로 간다며 나머지 길 잘 걸으라며 격려해 주었다. 산티아고의 첫날밤은 그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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