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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오늘을 산다는 것은?

32일: 멜리데에서 오 페드로우소(34.36km)

2019년 6월 23일(주일)

    

30km 넘게 걸어야 하는 날이다. 일찍 눈을 떠서 길을 나섰다. 156 베드인 알베에는 20여 명이 되지 않는 순례자들이 묶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아침 길은 쌀쌀했다. 사립 알베 식당에 들려서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멜리데를 빠져나왔다. 

도로를 따라 멜리데를 벗어난 길은 숲으로 이어졌다. 숲을 끼고 있는 집에서는 아침을 준비하는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더불어 왜 내 허락 없이 이 동네를 지나가냐며 개들이란 개들은 다 함께 짖어댔다. 아마도 개들 때문에 동네 사람들 잠을 설쳤겠다 싶었다. 

작은 마을 입구의 십자가 탑.

보엔테를 지난 길은 적당한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아침 숲은 청량함을 맛볼 수 있어서 언제나 좋았다. 비도 오지 않는 흐린 날이었지만 적당히 감추어진 하늘과 청량한 숲의 공기는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렇게 숲길을 걷는데 뒤에서 우리나라 말이 들렸다. 돌아보니 두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네 명은 눈이 마주쳤고 인사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친구였다. 프랑스 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도 걸어온 길을 이야기했다. 멜리데에 오면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없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멜리데를 지나쳐 갔다고 한다. 그제야 멜리데 알베에 사람이 없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짧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내고 네 명은 각자의 속도로 길을 걸었다. 

 





알베 안내간판. 

466m에서 시작한 순례길은 오 페드로우소까지 전체적으로 내리막길로 구성되어있었다. 간간히 오르막도 있지만 이전에 경험한 오르막에 비하면 평지처럼 여겨졌다. 아루수아에 들어서니 수많은 알베들이 있었다. 마을 입구에 순례자를 형상화한 간판에 알베르게가 있는 방향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마을을 통과하는데 알베 유리창 너머로 캐리어들이 보였다. 동키 서비스 차량을 기다리는 순례자들의 짐이었다. 사연이 있겠지 하면서 길을 걸었지만 편하게 걷는 게 과연 순례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했다. 나의 연약함이 다시 올라온 시간이었다. 

캐리어들을 보면서 또 생각했다. 

마을을 벗어난 길에서부터 일단의 무리들을 만났다. 엄청 시끄러웠다. 무리는 두 팀이었다. 한 팀은 젊은 신부님이 청년들을 데리고 온 듯했다. 한 무리는 친구들인 것 같은 남자들 10여 명이었다. 10여 명씩 되는 무리들이 내 앞 뒤로 걸으면서 서로에게 하는 말은 여태까지 혼자 걸었던 나에게 큰 소음이었다. 30여분을 걷다가 결국 그들과 걷는 것이 이롭지 않겠다 싶어서 쉬었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웽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내가 이렇게까지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졌구나 하는 생각과 이제는 저런 소리에 적응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었다. 

살세다를 지난 후 길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어디로 갈까 하다 굴다리로 가지 않고 직진했다. 걷다 보니 왼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전 나를 포위했던 두 무리가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두 갈래로 나눠진 길은 다시 합해졌고 숲으로 이어졌다. 숲에서 그들과 같이 걸을 생각을 하니 숲의 조용함을 느끼고 싶은 내 마음에서는 “싫다 싫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따로 걷다가 합류한 영주 씨가 발바닥을 봐야 한다하기에 그 핑계로 숲에 들어오자마자 쉬었다. 두 무리는 젊은이들답게 씩씩하게 걸어서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말소리는 그 후로도 들렸다. 

이 숲이 아니었으면 소음에 파묻혔을 것이다. 

숲은 높은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맑아진 하늘이었지만 하늘이 가릴 만큼 나무는 빽빽했다. 숲에서 나오니 오늘 목적지까지 3.4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1시간쯤 가면 되겠네 하면서 잠깐 쉬었다. 


다시 출발한 길에서 나는 표지석 위에 놓인 신발을 보았다. 신발을 올려놓았으니 여기까지 온 것은 분명한데 어떻게 걸어갔을까? 하는 생각과 여기까지는 어떻게 왔는데 도저히 걷지 못할 상황이어서 신발을 올려놓고 갔나 하는 생각이 충돌했다. 뭘까? 하는 의문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영주 씨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는 다른 신발 신고 순례길 무사히 끝낸 걸로 결론지었다. 


오 페드로우소에는 공립 일베 뿐 아니라 사립알베도 많았다. 검색을 하던 영주 씨가 스파가 있는 알베도 있다고 했다. 오늘은 그곳에서 묶기로 일단 정했다. 하지만 한 시간을 걸어가는 길은 무척이나 더웠다. “산티아고가 그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야” 하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오 페드로우소에 도착했고 마을 초입에 공립 알베가 있었다. 우리는 괜히 먼데까지 가지 말자며 공립 알베로 갔다. 


이곳 부엌도 요리 도구가 없었다. 이제 내일이면 헤어질 영주 씨와 마지막 저녁 식사였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사기로 하고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식사를 했다. 해는 지지 않았지만 19시쯤 되니 바람도 불고 시원했다. 


나는 오늘도 내가 이곳에 왜 왔는지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맡기시면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또 올려 드렸다. 이 기도까지 곁들였다. “주님 간절히 바라기는 진리 되신 주님의 길에서 내 길이 벗어나지를 않기를 바랍니다”

이곳에 와서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언제나 눈을 뜨면 오늘 걸을 수 있는 힘, 오늘 일용할 양식, 오늘 잠잘 수 있는 곳을 구했다. 자연스레 나는 ‘오늘’이란 단어에 집중하게 되었다. 오늘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잊히지 않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하나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었다’ 군에서 바로 곁에 있던 병사들과 교인들을 보낸 기억 때문이다. 

군에서 마지막 근무지는 이천이었다. 함께 교회를 섬기던 권사님이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다. 유방암 치료를 잘 받고 계셨었다. 어제저녁에도 얼굴을 본 권사님이셨는데 다음 날 아침 서울 아산병원 응급실로 실려 가셨다. 응급실에 들어가기 전 남편 집사님께서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권사님 몸에는 수많은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두 분은 내가 네 번째 교회에서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19개월 동안 바라본 두 분의 믿음 생활은 다른 이들에게 존경받았다.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서 안수집사와 권사로 임직을 했었다. 그랬는데....... 나이도 이제 50 중반이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사람 앞일이란 게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임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권사님 옆에서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권사님 손을 붙잡고 권사님 귀에 시편 23편 말씀을 전해 드렸다. “권사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골짜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하고 권사님 눈을 보니 알았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셨다. 그날 저녁 권사님은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다. 

내일을 살고 싶어 하셨던 권사님. 하지만 주님께서는 오늘까지 최선을 다해 사셨던 권사님을 주님의 품으로 데려가셨다. 그런 주님의 결정에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고 엄마를 보내는 가족들은 잠시 슬퍼했다. 하지만 이내 평안을 되찾았고 아내와 엄마의 빈자리를 서로 채워가며 오늘을 살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성지순례 후에 알게 된 구절이다. ‘나 어제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나와 같으리’ 이스라엘과 터키 두 나라로 떠난 성지순례였다. 터키의 파묵칼레는 로마시대 황제가 휴양하던 곳이었다. 지금도 따뜻한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고 로마시대에는 병든 몸을 치료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휴양과 병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렸고 근처에 조성된 마을 이름이 히에라폴리스 즉 살아있는 사람들의 도시였다. 지금도 도시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사진을 정리하면서 히에라폴리스를 검색을 했었다. 그런데 네크로폴리스가 함께 나온 블로그가 있었다. 그 블로그에서 발견한 글이다. 네크로폴리스는 시체들의 도시, 죽은 자 들의 도시란 뜻으로 무덤이 즐비한 곳이다. 병 치료차 히에라폴리스에 머물던 사람이 죽으면 산 너머로 시신을 옮긴 후 장례를 치렀다. 누가 한 말이고 누구의 무덤 비석에 적혔는지는 모르지만 오늘의 소중함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글은 없는 것 같다. 

새살이 차오른 발바닥. 참 수고했다.

 ‘오늘’이란 단어의 의미를 지금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그래서인지 산티아고는 지금까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소홀히 여기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해 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저물어가는 해를 보며 최선을 다해 걸어온 나에게 참 잘했다, 수고했어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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