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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이 길을 걷는 이유는?

31일: 페레이라에서 멜리데(21.2km)

2019년 6월 22일(토)

   

침대가 바로 문 옆이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의 발걸음에 나는 자연스레 눈을 떴다. 잠시 뭉그적거리다 이내 침낭 밖으로 빠져나왔다. 짐을 정리하고 나니 아침식사 시간인 7시다. 오늘 걸을 거리는 21km. 아침을 먹고 출발해도 13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넉넉한 마음으로 식당으로 갔다. 갓 구운 빵 냄새에 입에 침이 고였다.

한 달째 먹는 빵이다. 주식이 밥인 사람이 빵에 질릴 만도 한데 갓 구운 빵 냄새는 그렇지 않았다. 식당에 들어가니 빨간색 과일이 눈에 들어왔다. 체리였다. 체리는 딸이 좋아하는 과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곳에서는 두 손으로 한 움큼 쥐어도 1유로가 넘기도 하고 그 이하 이기도했다. 중3인 딸이 이곳에 왔을까? 하면서 한 접시의 체리를 먹었다. 든든한 배의 힘을 느끼며 길을 출발했다.

보통은 남편이 짐을 지는데? 하는 생각을 하게 한 노부부. 길은 평탄했다.

길은 어제처럼 평탄했다. 아스 세이샤스를 지난 순례길은 정상이 바위로 덮인 산으로 이어졌다. 저 산을 넘나 싶었는데 길은 산의 8부 능선을 따라 이어졌다. 주말인지 걷는 동안 자전거를 탄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는 일이 많았다.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고 사방으로 길이 나있었다. 차들이 다니기에 넉넉할 만큼의 길이었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출발했다. 얼마를 내려가니 멀리 멜리데가 보였다.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3시간을 걸어간 후에 멜리데에 도착했다. 다시금 깨닫게 된 것. 보인다고 도착한 것은 아니다.

믿음의 여정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사라짐으로 끝에 도착한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도착한 것은 아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달려갈 길을 다한 후에 받는 것이 의의 면류관이다. 달려갈 길을 다 한 후에야 도착한다.



완만한 내리막길은 우의를 쓰지 않을 만큼 내리는 비 덕분에 덥지는 않았고 걷기에 좋았다. 이렇게 길이 편안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할 만큼 3일 동안 정말 편하게 길을 걸었다. 멜리데에 도착하니 요란한 음악이 들렸다. 어린이들의 노랫소리도 들렸다. 성당 앞에는 무언가 장식하려는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알베에 도착하니 13시였다.

156 베드나 되는 공립 알베는 여태까지 머문 알베 중 가장 컸다. 짐 정리를 끝내고 부엌으로 갔다. 깨끗하게 정리된 부엌은 좋았다. 그런데 전자레인지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요리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를 마쳤을 때 음악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렸다. 성당 쪽에서 나는 소리여서 나가보았다.

성체절 축제.


성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그 앞으로는 빨간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양탄자 양쪽으로는 꽃들이 장식되어 있었다. 그 끝에는 악대와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아이들이 퇴장하면서 악대는 신나는 음악을 연주했다. 음악에 맞추어서 어른들은 아이들이 퇴장한 빈자리에서 쌍쌍이 어울려 춤을 추었다. 그렇게 한바탕 잔치가 끝났다. 도대체 뭐지? 하는 의문은 성당에 들어가서 풀렸다.

성당 안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순서지 비슷한 것을 들고 있는 여성분이 문 앞에 있었다. 그분에게 바깥에서 했던 것에 대해서 물었다. 짧은 영어실력이라 다는 못 알아 들었지만 육체라는 말과 변화 그리고 성찬식에 대한 설명이었다.   

군에 있을 때 군종장교들은 기, 천, 불, 원불교의 절기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서 교육시간에 알려주었다. 참모시절에는 절기에 각 종교시설에서 축사도 했었다. 천주교의 3대 절기는 알고 있었는데 성체 절이 있었다는 것은 오늘 알게 되었다.


이틀 뒤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 나는 이따금씩 궁금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까? 어떤 계획이 있으셔서 아내의 마음을 움직이셨을까? 긴 시간 길을 걸으면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난생처음 와보는 나라에서 지도와 화살표만 보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정말 큰 모험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정말 최선을 다해서 걸었다. 잠시 길을 헤맬 때는 두려웠다. 하지만 다시 길을 찾았고 포기하지 않고 걸었다.

오늘에서야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 일을 맡기시려고 그러시나? 휴식이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출발점이다.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왔듯이 그런 우직함이 필요한 일을 맡기시려고 연습시키시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산티아고는 나에게 정말 좋은 예방주사가 될 것이다. 얼마나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해야 할 일인지는 모른다. 다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을 맡겨주신다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었듯이 우직하게 묵묵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일하겠다는 다짐을 올려 드렸다.


순례길에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책. 그리고 발바닥에서 떨어진 각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말 어려운 상황임에도 나를 이곳까지 보낸 아내가 정말 보고 싶었다. 우스개 소리로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영어로 이곳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들은 모든 외국인들은 나에게 그랬다. “네 아내 정말 대단하다”.

걷는 중에 아내의 이름을 몇 번이고 크게 불렀었다. 전화하면서 “오늘 집에 오는 길에 누가 부르는 소리 안 들렸어?” 썰렁한 말일 텐데 “그러게 귀가 좀 간지럽던데”하며 응수한다. 19년을 향해 가는 부부의 장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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