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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편함 vs 불편함

29일: 오 카다보에서 루고(30.5km)

2019년 6월 20일(목)

   

카미노 앱에 나온 거리가 30km에서 400m가 빠지는 거리였다. 일찍 출발하려고 했는데 눈을 뜨니 6시였다. 늦잠을 잤다. 이럴 수가~~ 하면서 영주 씨 깨워 부지런을 떨었다.

조그만 마을을 벗어나니 길은 약간 오르막이었다. 이렇게 오르막이 계속되나 싶었는데 이후로는 내리막길에 평탄한 길이었다. 편안하게 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고 어제저녁에 생각하고 일기를 썼는데 정말이지 너무나 편안하게 힘들이지 않고 걸은 날이었다. 거기다 길도 걷기에 적당한 흙길이었다. 앞으로 오늘만 같았으면 하는 인간의 얕은 본능이 나를 감싸는 순례길이었다. 사람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면서 걸었다.

어제 걸은 길에 비하면 너무나 편한 길이었다.

오전까지는 하늘이 흐렸다. 간간히 부는 바람 때문에 어깨를 움츠리기도 했다. 하지만 숲에 들어가면 바람이 어느 정도 막혀서인지 바람소리만 들릴 뿐 내 몸에는 영향이 없었다. 숲길을 걸으면 고즈넉한 분위기가 정말 좋다. 둘이 걸어도 둘의 걷는 속도가 다르니 자연스럽게 혼자서 걷게 된다. 들려오는 소리는 바람소리와 새소리 뿐이다. 그 분위기에 심취되면 찬양하며 길을 걷는다.

뭔가를 알려주는 표지판인데 한참을 웃었다.

숲이 많아서인지 오늘은 벌목하는 곳을 두 곳이나 보았다. 한쪽에서는 높이 솟은 나무들을 잘라내고 있었다. 잘린 나무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는 기계 옆에는 잘린 나무를 도로로 옮기는 기계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빽빽한 숲에서 나무들을 솎아주어야 나무끼리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무분별한 벌목이 아니었다. 또 일정 구획을 벌목한 뒤 나무를 심어서인지 나무들의 크기가 구획마다 거의 같아 보였다. 자연이 주는 것을 욕심내지 않고 적당하게 사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과 벗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했다.

 







카스트로베르데 알베에 벤치가 있어서 그곳에서 휴식을 했다. 알베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은 열려 있었다. 안을 보니 형광등이 곳곳에 켜져 있었다. 전기 소등도 할 겸 알베 구경도 할 겸 겸사겸사 알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내부도 어제 묶은 알베보다 좋았다. 부엌으로 가니 뒷사람들 먹으라는 메모와 함께 파스타 소스가 한가득 있었다. 맛나 보였지만 나와는 상관없었다. 옆을 보니 휴대용 물병이 보였다.

나는 그때까지 1리터짜리 생수통을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딱 저거면 좋겠다 싶어서 물병을 씻어서 물을 넣은 뒤 가지고 나왔다.

걷는데 자꾸 뒤통수가 따가웠다. ‘하긴 내 것도 아닌데 누가 흘리고 갔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

한편에서는 ‘괜찮아 누가 쓰라고 두고 갔겠지. 아침이 훨씬 지난 시간까지 거기에 있는 걸 보면 혹시 놓고 갔어도 그 사람은 포기하고 갔을 거야 걱정하지 마’ 하는 두 소리가 내 마음에 울리고 있었다.

괜한 짓을 했구나 싶었다. 나중에 만난 영주 씨에게 이야기했더니 “뭐 어때요? 어차피 누군가는 가져가지 않았겠어요” 한다. 그 말을 듣고 내심 안심은 했지만 마음 졸이며 걸었던 시간 때문에 내내 불편했고 앞으로는 이러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물통 어떻게 했냐고? 피스테라 셰어박스에 넣고 왔다.


순례길은 도로를 걷기도 하고 다시 숲길로 또는 마을로 이어지면서 루고까지 이어졌다. 도로에서 숲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돌로 만들어진 화살표가, 숲에서 도로로 이어지는 길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화살표가 바닥에서 길안내를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길도 헤매지 않고 잘 찾아올 수 있었다.

시골이고 그리 많지 않은 집에는 개가 한두 마리 정도는 있었다. 문제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첫 집의 개가 짖는다. 그러면 온 동네 개가 그 마을을 나갈 때까지 짖어댔다. 좁은 골목에서 다른 길도 없고 고스란히 짖어대는 소리를 들을 때면 이 동네 사람들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작은 마을로 접어드는 도로에서 갑자기 소 한 마리가 왼쪽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나왔다. 뭐지 하고 쳐다보니 그 뒤를 이어서 20여 마리 정도의 소떼가 무리를 지어서 나오는 것이었다. 중간에는 소몰이 개가 짖어대면서 소들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맨 뒤에는 아주머니와 아들이 소를 몰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맨 뒤에 있는 소가 다른 길로 가려고 방향을 나에게 트는 것이었다. 이럴 때 갑자기 움직이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잠깐 얼음하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본 아들이 빛과 같은 속도로 소를 쫓아와서는 가지고 있는 막대기로 소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내가 듣기에도 딱 소리가 정말 컸다. 그러니 소도 정말 아팠을 것이다. 그런데 매질이 한 대에서 멈추지 않았다. 연달아 이어지는 스트레이트 어퍼컷처럼 세 번의 매질이 이어졌고 소는 음메~~ 하면서 대열에 합류했다. 아마도 그놈이 제일 말 안 듣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매질을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잠깐이지만 놀란 가슴을 쉬려고 두리번거리니 간이 휴게소 같은 게 보였다. 어지럽혀 있었지만 싱크대와 수도꼭지도 있는걸 보아 순례자들을 위한 휴게소였다. 그런데 자판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자판기 그림만 걸려 있었다. 이게 뭐지 하면서 두리번거려도 시원한 음료수를 주는 자판기는 없었다. 자판기가 고장 나서 고치러 갔겠지 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길을 재촉했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하늘은 맑았다. 적당히 구름도 있어서 길을 걷는데 힘도 들지 않았다. 고속도로 위로 난 다리를 건너니 멀리 언덕 위에 있는 루고가 보였다. 저 정도면 1시간 30분이면 되겠다 싶었다. 길은 초지를 지나고 작은 마을을 지나 언덕을 넘어갔다.

고대와 현대가 잘 조화된 루고. 철길이 보이면 루고에 들어온 것이다.

언덕에서 내려가는 길 왼쪽으로 돌로 만들어진 철교가 보였다. 철교가 보이면 루고에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내리막길을 통과해서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진 순례길은 도시 뒷골목을 통해 3세기 로마인이 건설한 루고 성벽으로 이어졌다.

화살표는 성벽 안으로 이어졌다. 바깥에서 본 성은 작아 보였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수원의 화성을 연상케 하는 작은 도시가 있었다. 성문에서 공립 알베까지는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알베 관리인에게 여권을 보여주니 “안녕하세요" 하는데 깜짝 놀랐다. 한국 사람이 많이 오냐고 물었더니 많지는 않지만 이따금씩 있다며 그때 배운 말이라고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영주 씨도 10분 전에 왔다면 짐을 풀고 있었다.

샤워를 끝낸 우리는 빨래를 어떻게 할까? 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길을 걷는 남자끼리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빨래하기 귀찮다는 뜻이다. 세탁기를 사용하기로 하고 세탁실로 갔다. 세탁기와 건조기 합해서 5유로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동안 손빨래하지 못했던 것 다 가지고 와서 세탁기에 넣었다.

 “돈이 편하네요” 영주 씨가 그런다. 돈이 있으면 편하긴 편하다. 그런데 편안함을 위해서 돈의 노예가 되는 일이 종종 있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일과 놀랄 일들을 지금은 일상으로 접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동호 목사님이 라디오 프로에 나와서 하셨던 말씀이다. “우리는 돈이 많으면 잘 산다고 이야기해요. 아니에요. 돈이 많으면 부자지 잘 사는 것은 아니거든요. 잘 산다는 의미부터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나도 공감했다. 잘 사는 것과 돈이 많은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까지도 잘 믿는 것의 척도를 물질적 풍요에 두고 있으니 믿음의 변질이 정말 무서웠다.


군에 있을 때 일이다. 군은 6월부터 연말까지 진통의 시간을 겪는다. 진급 발표가 있기 때문이다. 나도 2012년에 소령 진급 대상자였다. 그러니 진급 대상자의 심정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그해 교회에서는 나를 포함해서 3명이 소령 진급 대상자였다. 교인들에게 당락에 상관없이 믿음 생활 지금까지 한 것처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진급발표가 있는 날 나는 사무실에 들어오지 못한 채 외부 업무를 하고 있었다. 겨우 점심 먹고 들어와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는데 같이 근무했던 교인의 전화를 받고 내가 진급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른 PC를 켜고 진급 발표지에서 명단을 살펴보았다. 한분이 진급에서 비선 되었다. 주일에 그분은 의연하게 자리를 지켰다. 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분에게 비선은 큰 상처였기 때문에 마음의 고통은 컸다. 하지만 그분은 의연하게 아픔을 잘 다스렸다.

소령 발표가 끝나면 이어서 중령 그리고 이어서 대령 그리고 장군 진급이 줄줄이 이어진다. 이때까지 내가 거친 교회가 7개였다. 그러니 진급 철만 되면 함께 교회를 섬겼던  분들의 이름을 찾아보게 되었다. 비선 되신 분들에게는 전화로나마 위로를 드렸다.


그런 와중에 정말 기쁜 때도 있었다. “솔직히 마음은 아픕니다. 하지만 진급도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고 비선도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니 아멘으로 받겠습니다. 목사님 기도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그분은 전역과 동시에 취직이 되어서 지금 멋지게 제2의 인생을 주님과 함께 보내고 계신다.

잘되면 복이고 못되면 저주라는 공식은 잘못된 공식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을 믿는 길에서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공식이다.

저녁이 되려면 시간이 남았었다. 배가 고픈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나는 루고 시내 구경을 영주 씨는 돈을 찾기 위해서 헤어졌다.

루고 성벽. 3세기에 건축했단다. 보존 상태가 좋았다. 성벽 길도 걷기에 참 좋았다.

루고 성벽은 3세기에 로마인들이 건축한 것이다. 루고 대성당 정문에서 성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기념비가 도시의 역사를 증명해주고 있다.


성당에 들어가니 미사가 진행 중이었다. 성당 안은 한창 보수 공사 중이었다. 정문 오른쪽에는 박물관이 있는지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나는 기념비가 서 있는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 위는 사람들이 걸을 수 있도록 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왼쪽으로 걸어가니 성벽 안쪽에 있는 학교가 보였고 학생들이 선생님과 체육활동을 하고 있었다. 성벽 바깥도 도시가 연결되어서 루고가 작은 도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루고 대 성당.

 20여분을 걷다가 밑으로 내려왔다. 순간 여기가 어디지 하며 길을 헤맸다. 바욘에 도착했을 때처럼 종탑을 찾았다. 높이 솟은 대성당의 종탑이 보여서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골목을 여러 개 통과해서 알베까지 왔다. 영주 씨가 은행에 다녀오면서 사온 냉동식품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98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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