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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홀로 두지 마시고

28일: 아 폰사그라다에서 오 카다보(24.68km)

2019년 6월 19일(수)

   

저녁까지 내리던 비와 바람 때문에 눈을 뜨자마자 날씨부터 살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손끝에 전해오는 느낌은 차가웠다. 어제 사온 빵과 과일로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오늘 목적지는 오카다보. 카미노 앱에 나온 거리는 24.31km. 그런데 늘 걸어보면 이보다 많이 나온다. 내 생각으로는 앱에 나온 거리는 마을과 마을 사이이고 나는 알베에서 알베까지 걷기 때문인 것 같다.

작은 마을인지 금세 푸른 초지가 나왔다. 이어지는 길은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숲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중간에 1021m까지 오르막이었지만 서서히 올라가는 길이라서 그리 힘든지 몰랐다. 하지만 급격한 내리막길은 무릎을 아프게 했다. 

프리미티보 길은 산지를 걷는다. 하지만 루고까지만 가면 그다음부터는 평지나 다름없다.

날씨는 흐렸고 바람은 차가웠다. 이따금 내리는 비 때문에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 했다. 산길을 걷는데 라메사에 만났던 두 명의 젊은 영국 순례자들을 만났다. 그들도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두 분 할아버지는 아직 뒤에 있다는 말도 건넨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선지 프리미티보 길을 걸으면서 소만큼 많이 본 게 풍력발전기다. 멀리서 보면 마치 선풍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옆을 지나갈 때면 웅 웅 소리는 크게 들리고 높이도 상당히 높아서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어제부터 배낭이 왼쪽 어깨에 통증을 주어서 걸으면서 조정을 하려고 줄을 잡아당겼다. 툭 하는 소리가 나기에 배낭을 벗어 보니 연결부위의 플라스틱이 깨진 소리였다. 산 중턱에서 황당했다. 

바욘에서 시작할 때는 혼자여서 배낭이 다 이런 줄 알았다. 그런데 이룬에 도착해서 내가 배낭을 잘 못 구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순례자들이 메고 있는 배낭은 등과 배낭 사이가 떠 있어서 바람이 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구입한 배낭은 쿠션만 있을 뿐이었다. 허리에 매는 부분도 빈약했다. 갑자기 준비했으니 어쩔 수 없다 했는데 연결부위가 끊어지니 준비과정이 중요함을 다시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연결부위를 버리고 어깨끈과 다른 끈을 묶어서 순례를 끝내기로 했다. 이후로는 배낭이 뒤로 처져도 어쩔 수 없었고 의외로 편해서 피스테라까지 그대로 갔다. 

 

멀리 보이는 산들과 순례길의 정상은 뾰쪽하지 않고 둥글어서인지 정겨웠다. 하지만 그 밑 계곡은 힘들었다. 지도를 보니 급격한 오르막이 있었다. 나중에 거리를 보니 1km 정도였다. 674m에서 982m까지 올라가는 길이었다. 쉴 곳도 마땅치 않았고 오르막에 쉬면 더 힘들었기에 쉬지 않고 스틱을 움직였고 마지막 5분은 기합을 넣어가며 올라갔다. 고도차는 308m였는데 숫자는 숫자일 뿐 정말 힘든 오르막이었다. 올라오니 순례길은 도로를 따라 내리막이라 다행이었다.

뾰족한 모습은 찾기 힘들다. 둥글둥글한 모습이 정겨웠다. 

 바르가 보여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갔다. 오르막을 올라오느라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었지만 차가운 바람에 땀은 금세 식었다. 들어간 바르에는 마침 벽난로가 있어서 따뜻했다. 급격한 체온 변화를 막아 주어서 휴식시간은 편안했다.



산길을 따라 내려온 순례길 끝에 오 카다보 공립 알베가 있었다. 문은 열려있고 관리인은 16시에 온다는 종이가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각 방에는 이층 침대 4개가 있었다. 아래층에 짐을 풀고 찬바람에 지친 몸을 따뜻한 샤워로 녹였다. 빨래를 하고 잠시 쉬었다. 

오 카다보 공립알베. 마을 입구에 있다. 5분 걸으면 마을에서 벗어난다. 

 오 카다보도 작은 마을이었다. 잠깐 비치는 햇살을 만끽하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으니 나른해지는 기분이 참 좋았다. 

옆에 있는 영주 씨가 그런다. “하루라도 그냥 보내는 때가 없네요?” 나도 “그러게 마지막 오르막은 정말 힘들었어”로 답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길을 걸으면서 편하게 걸었던 때가 있었나? 했다. 하긴 편하게 걸어본 때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길이 평탄하면 뜨거운 햇살에 시달렸다. 길도 험한 데다 비와 바람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것도 4일씩이나. 프리미티보의 고지대를 걸을 때도 어제와 오늘처럼 비와 바람에 시달렸다. 보이는 길도 험한데 인생길이야 말해 무엇하랴. 이런 인생길을 혼자서 걷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된 하루였다. 

걸을 때 핸드폰에 담아온 성경을 듣기도 하고 노래도 들으면서 걷는데 오늘은 시편을 들으며 걸었다. 시편 37편 5절로 7절 말씀이 오늘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아일랜드 형은 잘 살고 있을까? 이 그림처럼 흥겨운 삶을 살기를......

저녁이 다 되어 가는데도 넓은 알베에는 5명이 전부였다. 그중에 한 명이 내 시선을 끌었다. 4일 전 폴라 데 아얀데에서 부대찌개를 먹고 물을 들이켜던 아일랜드 순례자였다. 

4일을 같은 알베에서 묶었다. 식사는 했겠지만 그는 매일 저녁 와인이나 맥주를 옆에 두고 살았다. 코까지 빨개진 것을 보면 그가 많은 양의 술을 먹었음을 알 수 있었다. 길을 걸을 때 그는 늘 웃었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알베에 들어오면 언제나 침울했고 술을 먹는 모습만 봤다. 보다 못한 우리가 술 그만 먹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오늘도 그는 6캔의 맥주를 마시고 골아떨어졌다. 50살 남자의 그런 모습을 보니 왠지 웃음 뒤에 감추어진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에게 사연이 있다면 그 사연을 하나님이 어루만져 주시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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