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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식 Oct 17. 2019

아침 안개 눈 앞 가리듯

27일: 그란다스 데 살리메에서 아 폰사그라다(27.67km)

2019년 6월 18일(화)

 

두 번째 보는 장례식. 죽음 앞에는 모두가 숙연하다.

어제저녁을 먹고 난 직후였다. 바깥에서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도로를 메운 채 언덕 너머로 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맨 앞에는 높이 들린 십자가가 있었다. 십자가 바로 뒤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는 걸로 보아 장례식 행렬이었다.

큰 도시가 아니고 조그만 마을이니 아마도 모두가 알고 지냈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을 보니 그의 삶이 그려졌다.

바욘에 도착한 날 대성당에서 장례식을 보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죽음이란 단어는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사람은 태어남으로 그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의 이야기는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살아생전에도 삶에 대한 평가는 있다. 그러나 죽음 뒤에 이어지는 평가는 때로 혹독하고 때로 그립게도 한다.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다시는 올 수 없는 길로 떠난 사람의 뒷모습과 그를 그리워하는 행렬을 보면서 내 뒷모습을 잠시나마 그려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구가 있다. 유안진의 ‘그리워지는 얼굴’의 마지막이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아름답게 기억되기보다는 그리웁게 기억되고 싶을 뿐이다. 가장 외롭고 가장 허전할 때 그냥 그리워지는 그런 사람으로’ 무덤에 묻힌 그가 그를 추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웁게 기억되기를 바란다.



짙은 안개는 신비스러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어제처럼 조금 올라가면 신세계를 볼 수 있을까 했다. 하지만 8km를 걸어도 어제처럼 신세계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10m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는 신비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풀잎에는 이슬이 가득했다. 바지는 비록 젖었지만 사각사각 풀잎에 스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전라도 사투리로 좀 거시기한 말이지만 안개 덕분에 생리현상도 해결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따금씩 길을 걷다 보면 사람인지라 갑자기 찾아오는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다. 근처에 들어갈 수 있는 가게가 있으면 모를까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노상방뇨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짙은 안개는 여유롭게 해결할 수 있는 천연 가림막이 되어주었다. 자연이 주는 고마움이 어디 이뿐일까? 하며 영주 씨와 웃었던 날이었다.


숲 길도 안개가 가득했다. 더 신비스러웠다.

들판을 지나던 길은 숲으로 이어졌다. 안개 때문에 간간히 보이는 높은 나무가 이곳이 숲임을 알게 해 주었다. 학창 시절 불렀던 찬양이 입으로 나왔다. “아침 안개 눈앞 가리듯 나의 약한 믿음 의심 쌓일 때 부드럽게 다가 온 주의 음성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찬양을 부르니 지금 내 처지가 딱 이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긴 사람의 인생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으니 누구나 다 아침 안개에 가려진 상황이다. 20대에 이 찬양을 부를 때는 젊은 패기가 있어선지 아니면 염려할 것이 없어서인지 좋았다.


31살에 군목이 되어 처음 목회를 시작했다. 군종장교 훈련이 끝나갈 무렵 모든 이들의 관심사는 어디로 배치되는지였다. 기, 천, 불 각 1명씩 무작위로 호출이 되었고 세 명이 동시에 단추를 눌러서 나온 결과지에 각자가 근무할 곳이 나와 있었다.

훈육장교가 불러주는 내 첫 근무지는 2사단 양구였다. 2002년만 해도 이런 말이 있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그래도 괜찮아 우리에겐 양구가 있잖아”  

자대 배치받은 날 아내와 통화를 했다. 아내는 자대 배치 이런 곳으로 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성준이가 하늘의 별을 보고 바람 소리를 듣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나는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다. “당신 기도에 하나님이 정확히 응답하셨어. 양구야” 아내는 양구가 어디인지를 물었고 나는 "강원도에 있으니 지도 찾아보면 알 수 있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나는 아내가 기도한다고 하면 때론 무섭다.

양구를 거쳐 아홉 번의 이사를 할 줄 나는 몰랐다.

양구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은 두 명의 병사를 내 손으로 염을 하고 장례식을 치를 줄 나는 몰랐다.

같이 교회를 섬기던 권사님이 속이 쓰리다며 병원을 가셨는데 6개월 뒤 췌장암으로 돌아가셨고 그분의 장례식을 내가 집례 할 줄은 몰랐다.

특전사에 근무하게 될 줄 몰랐고, 비무장 지대에 들어가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지도 몰랐다.

온통 안개에 싸여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도움의 손길로 염려하며 걱정하던 나를 인도하시고 지켜주셨다.


길을 걷는 지금 안개는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생각나지.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이 길을 잘 걸으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정말 알 수 없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그 옛날의 기억들을 생각나게 하니 말이다. 잊고 살았던 소중한 것을 지금으로 소환시켜서 나에게 힘을 주고 있으니 이 묘한 힘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아마도 길을 걸어본 이들은 내 심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안개가 걷히면 길이 보인다. 내 인생의 안개도 걷히길......

해가 뜨면서 안갯속에 감춰져 있던 초록색 대지와 잔뜩 찌푸린 하늘이 나타났다. 길은 그리 힘들지 않은 오르막으로 이어졌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바람까지 불어 날씨가 추워졌다.


고지대를 걷는 것은 이런 멋진 광경을 보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그라도에서 얻은 조끼 덕에 체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잠시 뒤 잠깐 파란 하늘이 나타났고 도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계곡에는 운해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왜 구름바다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들은 어제 돌아 돌아온 봉우리였다. 댐에 수몰된 지역이 상당히 넓었음을 알 수 있었다.

3시간쯤 걸은 순례길은 1100m의 고지로 이어졌다. 나중에 기록을 보니 3km 정도의 오르막을 어떻게 올랐나 싶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이 힘들었을 텐데 용케 넘은 것 보면 신기했다. 아세보를 넘어오니 한가운데에 돌로 만들어진 선이 보였다. 이 선을 기점으로 갈시아로 접어든다는 표시였다.  



돌을 기준으로 오른쪽이 갈리시아 주(州)다.

갈리시아 주로 들어선다는 것은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바스크,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를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며 영주 씨와 나는 경계를 넘으면서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조그만 바르가 보였다.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서 들어갔더니 낯익은 순례자들도 커피로 비에 젖은 몸을 녹이고 있었다. 바르를 운영하는 분의 젊었을 때 사진을 보니 순례길을 걸으신 것 같았다. 세요가 가득 찍혀있는 순례자 여권은 “나도 예전에 너희들과 같은 순례자였어” 하면서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말은 없지만 커피를 건네주는 주인으로부터 순례자라는 공통분모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잠시의 휴식은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와 바람이 기다리는 순례길로 나갔다. 순례길은 도로를 따라 이어졌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서있는 표지석은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여태까지의 표지와는 다른 게 눈에 띄었다. 조개의 방향이 다른 것이다. 여태까지는 조개 빗살이 모인 방향과 화살표가 같은 방향이었다. 그런데 갈시아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표지석의 조개 빗살 방향이 반대였다. 넓게 펴진 쪽과 화살표가 같은 방향이었다.

그런데 얼마를 가니 조개 빗살이 모인 방향과 화살표가 같았다. 뭐가 맞지 하면서 화살표를 따라갔다. 표지석을 보니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였다. 이왕 할 거면 통일 좀 시키지 왜 이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오 카다보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그냥 걷던 대로 도로를 따라 걷기로 했다. 오르막 도로는 힘들었다. 하지만 숲에서 올라오는 오르막보다는 덜 가파르다는 것에 위로를 하며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알베는 마을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언뜻 보기에 허름해 보이는 알베의 내부는 외부와는 전혀 다른 최신식이었다.


짐 정리와 샤워를 끝내고 부엌으로 가보았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조리 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문을 다 열어보아도 정말 이렇게 깨끗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별 수 없이 마트에서 냉동식품과 컵라면 우유 그리고 컵라면보다 비싼 포크를 사가지과 알베로 왔다.

비싼 포크로 먹는 컵라면은 정말 맛있었다. 폴라데 시에로에서 구입한 스페인 고춧가루가 있어서 한국인의 매운맛을 달래주었다.

안개, 구름, 비, 바람과 동행한 힘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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