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던 땅에 하나, 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점점 이곳으로 모이고 하나의 마을이 형성된다. 남자와 여자, 아이와 노인들은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하늘 아래 남부러울 것 없는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마을의 행복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탱크가 불쾌한 기계 소리를 내며 마을을 짓밟고 군인들은 사랑과 추억으로 가득한 집과 마을을 불태운다. 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 무참히 학살당한다.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시력을 잃거나 걷지 못하는 등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몸과 마음이 뒤덮인다.
2020년 개봉한 이길보라 감독의 영화 <기억의 전쟁>은 1968년 2월, 퐁니, 퐁녓 마을에서 있었던 한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 사건을 다룬다.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는 관광지인 다낭과 불과 20분 거리에 위치한 이 마을에는 사건 당시 해병대 청룡부대에 의해 학살당한 주민 135명의 위령비가 있다. 짧고도 긴 시간이 지났지만, 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2월이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제를 지낸다. 가족과 이웃 주민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증언하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다 보면, 감히 이들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뜬 눈으로 지세웠을 수많은 밤들. 악몽에서 깨어나도 악몽이 이어졌을 나날들을 영화 한 편을 통해 어떻게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사건을 기억하고 아파하는 이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슬픔에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말조차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겪어보지 않은 슬픔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무엇보다도 평화롭게 살고 있던 무고한 베트남 사람들을 학살했던 건 다름 아닌 한국인들이었으니까.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이 벌인 민간인 학살은 약 80건, 희생자는 9천여 명으로 집계되며, 추정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국가의 부름, 국가의 발전을 위해 파병된 것이었음에도, 한국군이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자행했던 극악한 폭력이 정당화될 순 없다.
몇십 년도 더 지난 사건이 지금의 나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물을 수 있다. 일본이 한국전쟁을 통해 경제 특수를 누렸던 것처럼, 한국에도 베트남전쟁은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것으로 보이는 이데올로기를 총칼로 찔러 죽인 결과, 현재 한국은 배불러 죽는 사람은 있어도 굶어 죽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 나라에 사는 우리가 과연 베트남전쟁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한국군의 잘못이 우리 개개인에게까지 이어진다고 볼 순 없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이어지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닐까? 끊임없이 읽고 보고 배워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자신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누군가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영화 <코코>의 주인공 미구엘의 가족을 보면 이미 죽은 가족 구성원의 사진을 액자 속에 걸어놓고, 기억하고 기린다. 죽은 가족 구성원이 사후세계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누군가를 잊지 않으려고 기억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국가적 폭력 앞에서 무참히 쓰러져갔던 사람들, 그리고 사건들. 약자라는 이유로 쓰러져갔던 피해자들이 영원 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과 영원히 '작별하지 않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