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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핸드스탠드를 하면서 아직 코어 잡는 감을 잘 모르겠고, 빈야사 다운독 점프 할 때에도 엉덩이를 오리엉덩이로 뒤로 빼서 점프 뛰는 법, 머리서기 할 때 골반을 피는 법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다리를 올렸는데, 그 이상으로 빠르게 진행하진 않는다.
언젠간 되겠지, 하며 마음을 놓아줬는데, 그러면 정말로 언젠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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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히말라야 빈야사 하면서는 속 안에
있는 응집되어 있는
에너지들이 직접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느낌이었다. 끝나고 초콜렛이랑 커피 마시면서 이만한 행복이
없다고 느꼈고, 나 혼자 있는 고독이 행복했다.
속에서 일어나는 행복은 비할 수 있는 게 없다.
오늘 요가하면서 느낀 건 서서히 강해지고 유연해진다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의 중심을 잡고 남을 보지 않아야 내가 산다.
어제 무용수를 보면서 느낀 건 프로세스 인잇 안무가님이었는데, 예전에 해방촌에서 본 키큰 무용수였는데 예전보다 운동을 했는지 덩치가 커진 느낌이었다. 표정이나 몸 움직임 자체가 무거우면서 자유로우면서 고통스러워보이면서 동시에 에너지가 상승하는
느낌이었는데 말로표현 못 하게 좋았다. 길면서 무겁지만 짓눌린 무거운 게 아니라 깊고 상승하는 무거움이어서 같이 작업하고싶을 만큼 좋았고
남성성이 강하면서도 동시에 여성같은 섬세함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국적으로 생긴 여자 무용수님 움직임도 좋았는데 그것보다 전반적인 느낌이 좋았다. 자메이카? 느낌이었는데, 이미지 자체랑 움직임
자체가 유연하고 가볍고 날카롭지
않는 날카로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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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서킷 트레이닝을 하면서 느낀 건, 나는 맨몸으로 무언갈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왜 그런진 모르겠다.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아서 스스로 골머리를 짜내야 하고 항상 연습하고 수련해야한다는 느낌이 너무나 좋았다. 이상하게도 항상 그룹수업을 듣는데 거기에서 웬만한 사람들과 친해지진 않고 그냥 운동만 하고 나온다.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데, 종종 그 바운더리 안에 끼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자체는 좋기 때문에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사랑의 마음으로 관찰하는 이상한 습관(?) 도 있다.
종종(아니 매 순간) 사람들에게 까탈스럽게 대하지만, 창작을 할 때에는 누군가가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하기도 한다. 이상한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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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다시 당을 줄이고 있다.
나는 무언갈 갈망하는 걸 엄청 싫어하는 거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면서도 혈당스파이크 일어날 줄 알면서도 단 걸 찾는다.
요즘에 일부러 슴슴하게 단백질 위주 식단으로 하니 음식을 갈망하지 않게 되었다.
원래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으나, 뭐 먹지? 하는 고민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들을 제외하고 단순하게 욕심을 줄이는 방식으로 하니 삶이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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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쳐보면 아무런 중요도도 없는 것들을 처음 겪을 때에는 지나치게 아프지만 결국 어느정도 인내하고 직면하고 나면 그게 별 것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무언갈 갖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갖고자 하는 집착과 욕망은 스스로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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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의 어릴 적 많은 상처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병적인 강박으로 표출이 되곤 했는데, 그 모든 걸 고치려고 수년 간 명상을 하고 어렸을 때의 기억을 되돌아 보고, 위로해주고, 사랑해주고, 내가 스스로의 엄마가 되어주곤 했다.
그리고 그것을 많이 하다보니 이제는 어렸을 때를 들여다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받는 영향들과 내 주변 환경의 영향들에 의한 것들이 크기도 해서 그런 외부적인 것들을 정화시키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집단이 나에게 있어서 완벽하게 사라진 기억은 아니지만, 이제 나는 그것의 울타리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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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사람의 진심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왜냐하면 정말 잘 모르겠다.
저사람의 행동이 왜 저런지에 관한 것들. 혹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행동 속에 있는 숨겨진 의도들, 기타 등등의 것들. 사실 그 사람의 진심이나 의도를 꼭 알지 않아도 된다. 사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잘 모르겠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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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스데닉스와 요가를 하는 이유가 뭘까? 내가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사실 잘 하시는 분이 너무 많아서 그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림도 그렇다. 잘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것 하나하나 비교하다보면 그림 못 그린다.
하지만 내가 제일 잘 하는 점 중 하나는 운동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림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저녁과 밤에 수많은 상상과 꿈에 대하여 실현 방식으로 고안해내고 혼자서 들떠서 그 계획을 다 짜고 조금씩 해나가기도 하고 계획 하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그것들이 잠을 잘 때 꿈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아침이 된다. 사실 가끔씩 그것들이 너무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냥 이 삶 자체가 한낱 꿈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아침이 그랬다. 전혀 허탈하진 않다.
어제는 하늘에서 이상한 불같은 별똥별같이 생긴 것이 떨어졌다. 주변을 관찰하면서 걷는 편인데, 나만 그걸 봤다. 다른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점점 내가 가야 할 지점으로 떨어져서 무서웠다.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폭발물일 수도 있을 것이고 추락 사고일 수도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긴 했지만, 그 때 내 삶에 대해서 다시 돌아봤다.
살면서 차사고도 나고, 예전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아침에 경보가 나왔던 23년 6월도 그렇고, 그렇게 죽음과 가까워졌을 때 찰나의 몇 초간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곤 한다.
그리고 더 많이 경험하지 못하고 내가 하고싶은 걸 다 하진 못했어도
나 진짜 후회없이 살았고 지금 죽어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하지만 조금 아쉽다) 라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든다.
매 순간 행복하진 않았고 종종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것이 있어서 내 삶이 더욱 풍성해졌다.
나는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준 사랑보다 더 많은 그것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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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iked his perpetual inventory system - where a dream becomes a drawing, the drawing becomes a painting, the painting becomes a sculpture, the sculpture becomes a installation, the installation becomes a dream, I liked his self - contained system and the freedom he gives himself to go from one medium to the next, and the way he’s in a constant dialogue with his own work
J’aimais son système d’inventaire perpétuel – où un rêve devient un dessin, le dessin devient une peinture, la peinture devient une sculpture, la sculpture devient une installation, et l’installation devient un rêve. J’aimais son système auto-contenu et la liberté qu’il se donne pour passer d’un médium à l’autre, ainsi que la manière dont il entretient un dialogue constant avec son propre trav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