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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립스틱

by hari

가장 추운 봄에는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입술이 퍼렇게 번져

아주 춥게 나에게 달려온다든가

아주 따뜻하게 나에게 달려오는 게 아니라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지도 모르게 내 등속에 퍼렇게 번지지


다닥다닥한 점들이 생겼어 나만 모르게

이게 뭐냐고 머리칼을 흘기며 바라보는 눈초리에 깨닫지 못했지

나를 압박하고 압축하고 싶어

모든 것을 압축하여도 평범한 선에 머물지 못하거든


아주 깊은 것들이라며 들었던 소리가 들려

뭐든지 못 알아챘으면 해 내가 말했던 것들에게서

나에게서 빠져나가 나를 바라보면

저건 뭐야, 하고 소리칠 것 같거든


주목받으면 소리가 집안을 기어다니는 벌레들 같아

제 딴에는 이잉이잉 하고 지나가지만 아무도 듣지 못하지

아, 더 저돌적으로 기어가볼까? 하고 생각해도 한계가 들려


생각을 하지 말아야 돼

라고 말하곤 해

그러면 나는 더욱 더 부단히 생각을 하곤 하지


뭐든지 반대로 나아가는 걸 즐겨서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이 날 떠나가려 할 때마다 붙잡곤 해

그러기에 아직도 전에 살던 집에 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걸


속에서 생겨나는 것들에 가장 겁을 먹곤 해

변형되기 아주 쉽거든

한 틀을 가져다 놓으면 비집고 빠져나가길 원하는데

무지의 도화지를 챙겨오면 가만히 있거든


나처럼

반대로 나아가는 공간 같아

사그라질 것 같지가 않아


그림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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