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되지 않은 글
아마도 나의 불안은 누군가의 ‘사랑'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작은 개념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사랑 말이다. 너무 불안한데, 나에게 필요한 건 불안에 대한 약이 아니다. 약은 계속 먹다보면 의존하게 된다. 너무 여러 약을 먹으면 몸이 힘들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포옹이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도 지친다. 그냥 아무 말 없이 포옹만 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말 아무 말 없이.
말은 글과 달라서 정리되지 않은 개념들이 뒤죽박죽으로 나올 수 있다. 그래서 실수를 하는 것 같다. 말과 글은 매우 다르다. 말 한 마디 덕에 내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그냥 누군가가 내 옆에 존재만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바라는 바 이다. 단지 어떠한 존재자가 말 없이 포옹만 한 채로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직도 가족들에게 껴안아달라는 말을 못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닌가보다.
내가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 적은 나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누군가와 같이 있었을 때 굉장히 행복한 기억이 있다. 그것이 지금 내가 바라는 이상이랑 거의 비슷한 경우였다.
전 남자친구가 인천에 살아서 그곳에 놀러갔는데, 시장에서는 축제를 하고 있었다. 굉장히 시끄러웠는데 나는 시끄러운 장소에 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홀로 이어폰을 꽂은 채 그의 손을 잡고 거리를 걸었다. 정말 별 것 아니었지만 그때 종교적인 경험(이때 종교적인 경험은 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종교적'이라는 정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다)을 했다. 너무 행복했다. 삶의 의미가 내 앞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삶이 죽음과 가까운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항상 삶과 죽음이 있다면 나 스스로가 죽음의 방향으로 걸어가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때의 경험은 죽음은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하였고, 삶이라는 것이 나와 굉장히 가까운 곳에 자리잡혀 있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황홀경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와 같이 있을 때의 순간만이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그래서 La double vie de véronique라는 영화가 나의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베로니끄는 항상 혼자가 아니었다. 저 멀리에서 베로니카라는 존재자만 있었다. 하지만 둘은 그들의 가시적인 존재를 알지 못하고 다만 숨결로 통하여 마음속으로 '그러한 존재가 있다 느낀다'라는 식으로만.. 그렇게만 서로를 알고 있었다.
괜찮다. 괜찮다. 내 마음 속 또다른 나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 사랑한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