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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Jun 05. 2018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아주 약간의 스포가 있으며 이 영화에 다한 주관적인 의견이 담겨있습니다.

   부모와 자식들의 사랑은 참 아이러니하다. 어찌보면 누군가의 자식인 우리들은 부모의 일부에서 떼어나온 것 일 수도 있지만, 명확한 것은 자식들은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 즉 우리들은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너무나 사랑하여 자식을 본인의 소유물, 혹은 일부라고 여기면 문제가 발생한다.

   이 영화 또한 그러한 측면에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앙투안과 미리암의 문제 중, 양육권 문제에 도달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 명의 입장은 상이하다.
   결론적으로 이 판결의 끝은 이 부부의 아들을 아버지와 지속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나온다.

   아버지는 물론 아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의 강압적인 방식으로 사랑한다. 이 강압은 자기 자신과 아들의 분리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는 듯 보인다. 즉 앙투안은 아들을 본인의 일부 혹은 소유물로 간주하고 아들의 자유를 침해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비밀 은식처까지 캐내고 만다.

   영화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아버지는 본인의 가장 마지막 추악한 모습까지 보이고, 그로 인하여 미리암과 줄리앙은 공포로 떤다. 모든 상황이 종료 되었을 때 줄리앙의 어머니 미리암은 말한다.

'끝났어. 끝났어. 끝났어. 끝났어.'

   제목과 대조적으로 끝났다는 대사가 반복된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적 고통과 상처들은 과연 끝이 났을까 의문이다.

   부부간의 갈등과 그 사이에 끼어진 자식들의 문제에 대하여 잘 보여진 영화였다.

   어쩌면 부부는 그들의 문제에 있어서 자식을 분리해야 하는 노력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 같았다. 그들의 문제이지 자식의 문제는 아니고, 이 과정에서 자식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들의 문제가 대를 거쳐서 자식에게까지 상처를 입힌다면, 그 상처는 지속적으로 순환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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