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그러하듯, 정신도 본인이 건강하도록 스스로 정제시켜야 한다.
그리고 나는 정제한 깨끗함과 순수가 좋다. 하얀색과 투명색이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그것이 극에 닿아서, 뭐랄까, 조금은 집착했을 시기에는 사람 또한 그 기준으로 선악을 나눈 것 같기도 하다. 무릇 모든 것들은 극단으로 치닫으면 너무나 위험하기에, 극단적 악도 위험하지만, 극단적으로 선을 추구하는, 극단적인 긍정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동안 그것에 매료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전에 만났던 남자친구가, '아름다운 것만을 보기를 원해?' 라는 맥락의 말을 했을 때 그것을 느꼈다.
많은 것들에는 악과 부정부패와 아픔이 있다. 그것을 쳐다보아야 한다. 아주 뚜렷하게 직시해야 한다. 회피하면 그 순간에는 편하지만 언젠가 불편하고 더욱 큰 아픔이 온다.
그리고 그것을 치유하면 다시 맑고 깨끗해지는 것이다. 선악을 뛰어넘어서 말이다.
이전에는 내가 다칠까봐 선한 사람, 건강한 사람을 은연중에 찾았던 것 같다.
이제는 딱히 방도가 없다. 누굴 보더라도 가슴 언저리에 상처는 있다, 조그맣든, 혹은 가슴에 안 담길 만큼 너무 크든 말이다.
나 또한 그렇고 말이다.
나의 슬픔과 아픔, 타인의 슬픔의 아픔을 직시하고 직면해야 된다. 그리고 그것을 쓰다듬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치 야생적이고 언제 공격할 지 모르는, 상처로 인하여 공격적인 사냥개의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처럼, 계속해서 어루만지고 사랑을 주어야 한다.
건강한 타인을 만나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 내가 먼저 건강한 사람이 되어, 조건없이 그저 사랑한다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정말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