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대로 보인다. 내가 어두웠던 시절 나는 세상에 대한 가시로 곤두섰었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그랬던 건 아니다. 아주 어두운 곳 속에 은유적으로 나는 나 스스로의 가능성을 지니고 그것을 믿고 있었다. 황홀한 행복감 또한 알았으며 사람간의 사랑 또한 알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나 또한 아팠으며 그게 비단 그 사람을 아프게만 하려는 게 아니라 일종의 사랑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내가 어두웠고 악을 좋아했던 시절 또한 선이 없었던 건 절대 아니다. 나도 선이 있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세상은 흑과 백으로 완벽히 나눌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세상을 무섭게 보면 무섭게 보이는 것이고 아름답게 보이면 아름답데 보이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완전히 악한 사람도, 완전히 선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것 또한 내 믿음이고 내 관점이다.
내 안에도 여러 가지 본성이 있다. 선과 악, 양아치와 선비, 더러움과 깨끗함, 사랑과 증오, 따뜻함과 차가움 등등 다 들어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 스스로 그것을 느낀 적이 있다. 정말로 본질적인 내 본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사실 말로는 표현이 안 되고 너무 신비로워서 나 스스로가 신이 되어버린 느낌이어서 놀라웠다. 그저 세상이 너무 신비로웠다. 여전히 세상은 신비롭다고 믿고 있지만 그 때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적인 황홀감과 기쁨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엄청난 선을 보았다. 여러 요소를 다 제거하고 나니 나에게는 너무나 큰 선이 있었다. 그 본질 위에 나 스스로가 닦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악이었고, 나 스스로의 본성은 선이었다. 너무 신기하다.
어떠한 본성을 택하느냐는 본인의 몫이다. 본인 안에 있는 사랑을 택하느냐 증오를 택하느냐는 본인의 몫이고, 그것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만을 살아야 한다.
모든 존재에는 사랑이 있고, 그 자체로 소중하다. 모든 존재는 한 획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소가 있고 나는 그것을 판단하거나 유추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존재의 가치는 나 스스로가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모두가 다 다르고 모두가 다 소중하다. 그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