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니카는 나를 참 좋아한다. 내가 오면 방에 벌러덩 누워서 애교를 부리고, 내가 껴안아주면 사랑에 빠진 야옹이가 된다. 밥도 매일 같은 걸 먹지만 맛있게 잘 먹고, 츄르를 주면 굉장히 행복하게 먹는다. 니카에게는 그것들이 그냥 행복인것이다. 내 품에 안겨 있는 것,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고, 열심히 뛰어다니다가 자고, 열심히 온몸을 핥는 것. 니카는 더 많은 돈에 집착하지도 않고 더 많이 소유하지도 않는다. 아무 생각 없이 현재만 산다.
서울에서 살면서 많은 걸 관찰한다. 꽉 막히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표정들을 보면 피곤하고 무표정에다가 가끔은 인상을 찌뿌린다.
카페에 가면 하는 이야기는 돈, 연애, 등 다양하다.
행복한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각자의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돈과 소유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은 덧없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태어나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떠난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우리의 탐험과 모험, 사랑의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무언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 욕심은 끝이 없다. 소유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 수록 아니러니하게도 더욱더 텅텅 비어버린다. 그것은 공허와 결핍이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차피 우리는 언젠간 소유했다고 착각한 것들을 잃을 운명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다.
사실 모든 세상은 순간으로만 이루어져있다. 무엇인가를 많이 얻어도 그것은 순간이고, 무엇인가를 많이 잃어도 그것은 순간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그것들은 한 순간이다. 하지만 변치 않는 것은 있다. 소유를 넘어선 존재 자체의 평화와 행복, 그리고 사랑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때, 지금 이 대로의 모습에 만족하고 지금 이 순간 속에 안착할 때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숨소리다. 아주 작은 것, 아주 사소한 것에 초점을 맞추면 본인의 숨소리에도 감사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가장 운 좋은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소유와 욕망은 우리 자신이 아니다.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생각과 에고일 뿐이다. 그것은 일시적이지만, 그것들과 동일시되면 자기 존재를 집어 삼키려 한다.
나는 존재지향적인 삶이 좋다. 존재 지향적인 삶을 살면 누군가에게 가식떨지 않아도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다. 우리 존재 자체는 기쁨이다. 굳이 노력해서 가식부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 내면의 살결이 이미 곱고 아름다운데, 거기 위에 헛된 때를 묻힌 뒤, 그 위에 가면을 얹을 필요가 있을까? 간단하게 때를 닦으면 되는 것이다. 삶은 간단하다. 그저 우리집 니카처럼 나랑 같이 사랑하면서 사료를 맛있게 먹고 내가 가끔 주는 츄르를 엄청나게 감사하게 먹고, 가끔 미친듯이 집을 뛰어다니고, 열심히 털관리를 하듯 살면 되는 것이다.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높아진다고 해서 존재의 높낮이가 올라가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존재 자체는 다 똑같기 때문이다. 존재는 사람의 위치로 판단할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