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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i Mar 03. 2019

누구를 위한 삶이고 누구를 위한 예술인가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소네트>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주위로부터 소위 말하는 ‘현실적인’ 말을 듣는다.     


   그것을 하면 돈 많이 벌어? 어떤 식으로 먹고 살거야?   


   즉, 돈과 명예, 인정 같은 방식의 말들을 듣는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열망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 단 하나의 삶은 무엇이고, 지금 당장 죽더라도 본인 스스로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말이다.     

   피아니스트 세이모어는 헛된 욕망과 타협하는 현실을 뒤로한 채, 자기 자신의 순수한 열망을 실현시키며 살아가는 피아니스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을 자유로이 하며, 무대에서 내려와서 음악교사를 하는 세이모어. 재능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한 답.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에단호크는 말한다.     


   최근 저에게 고민이 있습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하는 고민이었죠. 쉽게 눈에 보이는 이유들, 물질적 부라든지 유명세 같은 건 허상이라는 걸 알고 있었죠. 하지만 뭐가 진실인지는 몰랐어요.    


   이 영화는 삶과 예술, 순수한 자신의 열망과 예술성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삶과 예술을 분리시키지 않고, 고난을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보는지, 그리고 명예에 대한 시각과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하는 영화이다.     

 음악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음악을 통해 느끼는 진정한 자아.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작은 자아가 아니다.



   우리는 고통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삶에는 고통이 따른다. 삶은 우리를 한 순간 버리는 듯 느껴지고, 자기 자신은 좌절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좌절 속에서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마침내 봄이 와 꽃이 핀다. 삶은 우리를 어떠한 방식이든 스스로를 구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물질적인 안락함과 외부적인 안정을 좇다보면, 자기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없어지고, 텅텅 비어버린 허영만이 남아버리기 쉽다.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슴이 시키는 일과 예술을 해야만 한다. 그 행위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울려 퍼진다.     

   삶의 아픔은 배의 언저리에 있는 근육을 키워준다. 고통을 껴안고도 활짝 웃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자신이 예술을 하고 있다면, 그 행위를 통하여 극적인 전율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폭풍우를 원치 않지만, 아주 잔잔하기만 한 개울물 앞에서는 한없이 나른하게 잠들기 십상이다. 우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해주기 위하여 삶은 우리에게 고통을 선물 하는 것이다.    


   세이모어는 말한다.


불협화음 후에 들리는 화음은 더욱 아름답게 느껴져요.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회피하지 말고, 계산적이고 안정적이기만 한 현실과 타협하지 말라. 그저 뛰어들어야 한다. 외부의 것들에 의존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라. 그저 즐겁게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음악을 해야 한다. 그 순간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목적 없이 그 순간에 온전히 빠져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이다.  




        

   예술적 형태는 인류가 발명한 유일하게 이기적이지 않고 사욕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 존재의 의미는 아무 목적이 없고 전혀 사리사욕 없는 예술적 행동에 있을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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