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망각을 위한

by hari

하늘의 색이 좋은 밤이다
나의 하늘색은 짙은 검푸름

지난주에는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4일은 아팠고 그 이후로는 집 근처에 있는 펍에 혼자 다니곤 하였다. 일주일 사이에 친구가 많이 늘었다. 제각각 색깔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갈색이고 어떤 사람은 하늘색, 어떤 사람은 검은색이고 어떤 사람은 복잡한 색이고 어떤 사람은 흰 색이었다.
나는 파랑색이었고 mk 갤러리 관장님이자 내 단짝(나 혼자 착각하는 단짝(?))인 오빠는 초록색과 아주 채도가 높은 파랑색과 검정색이게 느껴진다.
내가 파랑색이었을 때에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너무 깊은 파랑색이었다. 작업은 내 일기와 같은 흔적이었다. 나는 그걸 주로 기억이라고 부르곤 하였는데 기억이 나를 꽉 감싸 안곤 했다. 아주 깊은 감정에 시달리곤 하였고 나는 장난삼아 나를 감정천재라고 불렀다.

요즘 나의 키워드는 망각이다.

한 달 전인가? 나는 파랑색을 거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났는데 그 이후로 즐겁게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나는 즐기고 있고-지극히 내가 꿈에서 깨어있을 때에만- 미래와 과거를 훨훨 날려 보냈다. 미래와 과거는 날아가고 있고 나는 하늘색을 지우고 다시 칠하고,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흔적이었던 작업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아주 깊은 파랑색이었을 때에는 한 달에 대여섯 번 꿈-내가 주관적으로 쓰곤 하는 단어이다. 잠을 잘 때의 꿈 말고도 여러 의미를 담곤 한다-을 꾸었었다. 조명이 깜빡깜빡하는 몽롱한 느낌을 얻곤 하였다. 나는 지금 깨어있다. 꿈이라는 것을 잠에서만 꾸곤 한다. 망각이다. 생각이 닥칠 때마다 나는 나중에 생각하자 라며 생각을 기피하였다. 그 이후로 현실과 분리된 꿈을 많이 꾸질 않는다. 망각과 흔적에 대한 집착과 강박은 둘 다 좋지 않지만 나는 책 <불멸>의 로라와 아녜스처럼 나를 더하고 지우고를 반복하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망각이다. 모든 것을 잊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말한다.
망각의 부작용은 꿈이다. 꿈의 상태는 잠과 몽롱한 상태와 술 취한 상태와 카페인을 마셨을 때의 상태 등으로 나뉜다. 나로 예를 들면 말이다.
요즘은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다 태우기 때문에 불멸증에 전혀 시달리지 않는다. 눈을 감으면 바로 잠이고 꿈이다. 꿈을 꾸었을 때 나는 이를 갈기 시작한다. 아침에는 턱이 아프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또 즐겁게 나를 바라본다. 지극히 현실세계에서 생각을 잊고 즐기기만 하였을 때 밤의 ‘나’가 괴로웠다. 최근에 아주 많이 느낀다. 어떠한 것을 감추고 꾹꾹 욱여넣으려 하고 기피하게 되면 무의식중에 의식의 여러 부분이 들어간다. 내가 모르는 무의식이 ‘나’가 그것을 느끼며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지 못하기에 의식 속의 나는 그렇게 많은 고통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자아가 분리되고 있는 것도 같다.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아주 강하게 살아있음을 느낀다.
몇 달 동안 몽롱한 상태가 거의 찾아오지 않았지만 이번 일주일동안은 꽤 많이 느꼈다. 몽롱한 꿈의 상태-현실 속에 있지만 꿈꾸는 듯한 그런 느낌-는 아주 행복한 느낌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두 달 전에 아주 마음이 아팠는데 그 때에도 나는 꿈을 꾸었다. 타인과 말이다.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아픈 것에 중독된 마냥 그것을 즐겼다. 아프고 슬픈 꿈이었다. 그 때 이후로 현실과 분리된 꿈의 상태에서 행복 말고 다른 감정이 들어갈 수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 일주일 동안 몸이 아프면서 꿈을 꾸었고 술을 마시며 꿈을 꾸었고 다 같이 붉은 조명 아래에 제각각 앉아 있을 때에도 꿈을 꾸었고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다. 아주 행복한 감정도 있었고 즐거운 감정도 있었고 고통스러운 감정도 있었고 무미건조한 꿈도 있었고 숨이 턱턱 막히는 꿈도 있었다. 망각에서 나온 꿈들도 있었다. 다 지워야지 하며 지우개로 벅벅 지웠지만 지워지지는 않고 그 위에 흰 색 물감으로 다양한 색을 칠하곤 하였다. 가끔 흰 색의 색이 벗겨져 안쪽의 색이 보이기도 하였다. 무의식의 발현이었다.
파란색을 쓰다가 오늘 검정색으로 작업을 하였다. 지난주에 아주 연하게 파랑으로 칠한 뒤 세필 붓으로 대충 슥슥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리자마자 별로 기분도 안 좋고 마음에도 안 들었었다. 하지만 며칠 뒤에 그 그림을 다시 보니 너무 좋게 느껴졌다. 그 날 내가 너무 많이 슬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날 찢어진 슬픔이었다. 작품은 추상적인 나의 일기장이었고 여러 가지 꿈과 감정을 뒤섞어 놓은 표현이었다.
오늘은 내가 생각한 더럽고 수치스러운 감각을 그렸다. 표현상 그리 더럽고 수치스럽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리며 많은 통제를 했다. 나는 무엇이든 암호화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남들에게 들키기 싫지만 힌트를 넣어 몇몇이 맞출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검정색 위에 미세한 파랑이 들어가는 게 현재의 ‘나’같다는 기분에 작업을 하며 통쾌했다. 오늘 하루 말이다.
망각에는 검정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덧붙인 것을 지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검정색의 속 안에 다른 여러 가지의 색은 지워지지 않고 검정색에 감싸 안겨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말이다. 마치 무의식처럼 말이다. 무의식의 ‘나’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동시에 상대 또한 고통에 처하게 할 수 있는 굉장히 큰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다음날에는 죄책감에 들곤 하는데 그런 나를 또 잊으려 노력한다. 망각이다. 나의 키워드이자 나를 지키는 방식이자 나에게 더 해가 될 수도 있는 방식인 망각.
나의 망각은 모순이다. 그림이 기억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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