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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오리들을 위해, 선량한 차별주의자

선량한 차별주의자 후기

by 밸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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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개별적이다. 여러 범주가 다양한 비율으로 섞여, 한 사람을 만들기 때문이다.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이면 자홍색이 되고, 파란색과 초록색이 섞이면 청록색이 되고, 초록색과 빨간색이 섞이면 노란색이 된다. 세 가지 색의 비율이 서로 다른 색을 만든다. 세상에 같은 색은 없다. 같은 것은 없지만, 우리는 편의를 위해 범주를 나눈다. 이건 노란색, 이건 보라색, 이건 파란색.


사람들은 범주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범주를 나눴을까? 아니면 범주를 나눴기 때문에 이유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질문은 평등에 대한 두 가지 태도와 관계된다. 이유가 있다면, 범주는 유지되어야 하고, 억압받는 범주의 사람들을 위로 올리는 평등을 주장할 테고, 이유가 없다면 억압받는 범주의 사람도 우리와 같게 대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할 것이다.


이것은 형식적 평들과 실질적 평등으로 나누는 입장 차이다.

우리와 같게 대우하니까, 소수자인 너에게도 우리와 같은 기준을 제공한다,

우리는 다르니까, 소수자인 너에게 우리와 다른 기준를 준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저자는,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것은 전자지만, 후자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유연한 평등이다.


어떤 곳에서는 실질적 평등이 필요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형식적 평등이 필요하다. 저자가 예로 든 난민 문제나, 흑인과 백인의 인종분리 정책은 "저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를 전재로 한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분리할 이유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도 없다. 실질적 평등은, 우리는 모두 다르니 우리에겐 모두 다른 기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청각장애인은 영어 듣기를 못하니, 토익 600점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니 토익 600점이라는 채용 기준은 실질적 평등의 관점에서 차별이 된다.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저 사람은 우리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장애인이라서, 외국인이라서, 어떤 장소에 출입을 금지당한 사람에게 실질적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사람에게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은 차별의 이유지, 평등의 이유가 아니다.


저자가 놓치고 있는 부분도 이런 맥락이다. 이미 한 장소에 출입이 금지된 사람이 특혜를 입어 들어온다고 차별이 사라질까? 특혜 때문에 더 차별받지는 않을까?

"넌 능력이 없는데, 할당제로 들어왔어."

같은 말을 들으며 말이다. 이 말을 능력주의에 의한 차별로 본다면, 그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과연 능력주의가 없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 붙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사라질까? 나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한 범주의 사람들에 대한 험오감만 더 일으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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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는 형식적 평등에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나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차별에 대한 대표적인 비유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말일 것이다. 기울어졌다. 기울어졌으니, 힘(법, 정치)으로라도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은 폭력적이다. 누군가가 내려갔기 때문에, 누군가는 올라간다면, 전자는 자신의 피해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다시 후자에게 돌아간다. (물론 이것이 기득권의 논리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난 실질적 평등이니, 형식적 평등이니, 둘 다 그리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운동장을 달려야 한다. 남자가 여자의 위치에,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위치에 서보기 위해, 그리고 다시 반대로 여자가 남자의 위치에,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위치에 서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한 끝에서 다른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할 때 우리는 평등을 경험할 것이다. 기준은 하나가 아님을,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평등은 개인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개인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회가 바뀌어도 같은 실수만 반복할 뿐이다. 우리는 모든 색을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도달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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