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인간의 삶은 사건 후에도 계속된다. 사람은 죽기 마련이고, 한 사람의 죽음 후에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된다. 계속되고, 계속되는 삶. 황정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는 그렇게 계속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평범한 이야기다.
평범하다. 실은 평범하지 않다. 화자가 되는 세 인물 소라, 나나, 나기 모두 한 부모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가 죽고 없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올 수 있는 사회적 여파를 피해 간다. “아버지가 없는 게 뭐 어떻다고?” 하는 뻔뻔함, “아버지 있는 사람들은 더 낫나?” 하는 재치. 뻔뻔함과 재치로, 평범하지 않을 수 있는 이야기를 평범하게 만든다.
소라와 나나의, 어머니는 애자로,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그녀만은 끝내 평범해지지 않는다. 그녀의 사건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을 사랑했고, 그 남편은 죽었다. 잊으면 지나가지만, 잊지 못하기에 남겨지는, 사건 속 애자. 그것은 소라와 나나를 압도하는 사랑. 뻔뻔하게 넘어갈 수도, 재치로 덮을 수도 없는 사랑.
소라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애자가 되는 것. 너무 사랑해서 빠져나오지 못할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것. 소라가, 나나가 임신했음을 직감하면서도 묻지 못했던 것은, 어머니가 된다는 건, 그런 압도적인 사건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
소설 속 사랑은 하나의 사건이다. 나기의 사랑은 사건이었고, 나기의 “너”는 계속 나기 곁에 머무는 존재, 이제 안부조차 묻을 수 없지만. 완전한 사랑은 이별 후에 사건이 되고, 사건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든다.
이 점에서 나기는 애자와 닮았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사건 속에서 사랑을 기억하는 사람(나기)은 화자로서 이야기하지만,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애자)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우리가 했던 것이 사랑이었음을 기억하기.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사건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기억하라는 말, 이제 잊으라는 말, 그리고 살라는 말.
사건을 겪은 인간은 이 세 가지 말을 듣는다. 나도 그랬다. 자살을 시도하고, 군대 밖으로 나왔을 때, 주변 사람들은 이제 잊고 살라고 했다. 그래도 살아서 나오지 않았냐고. 나는 나에게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는 남겨지고, 누구는 나왔다면 누군가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고민했다. 어떻게 기억하며 살 것인가?
비극적인 인간이 사는 방법은 유머와 재치, 많이 웃었고, 장난쳤다. 웃을 수 있다면 살 수 있다. 견딜 수 있다. 삶은 견디는 것. 부모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기. 그렇게 살았다.
기억하기, 기억하기.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에게 사랑이 있었음을 기억하기. 인간의 호의를, 당신이 말한 이유를 믿기. 그게 내겐 사람을 사랑하는,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랑.
어쩌면 사랑을 잊어버리는 것이 사랑을 잃는 것.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 사랑하고, 사랑하다, 죽고 싶다. 죽었을 때, 아무도 아프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