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 불이 켜지는 순간을 기다려볼까요
해가 지기 전에 알베르티나에 가자. 장난감 같은 2번 트램을 타고 사람이 많던 그 정류장 앞에서 내리자. 다들 어딘가로 가기 바쁜, 무언가를 하기 바쁜 사거리를 그냥 지나치자. 한 손에는 좋아하는 맥주를 들고, 한 손에는 따뜻한 귤을 들고.
어느 영화의 주인공들이 앉았던 자리와 마주 보고, 해가 지기까지 오래도록 앉아 있자. 비엔나의 온 틈새에 저녁이 깔리고 노오란 조명이 올라오는 순간을 의미 없이 기다리자. 긴 말은 하지 않아도 돼. 영화의 한 장면을 따라 사진을 찍는 연인들을 바라보며 11월의 캐롤을 틀자. 순간을, 누군가를 기다리길 잘하는 사람들처럼.
생각이 많아질 땐 알베르티나에 오자,라고 말하자. 멍투성이 세상 속에서 도망칠 곳 하나쯤은 남겨두자.
노을이 지기 시작하면 고개를 들어 비행운을 보자. 누군가를 태우고 있을 거야. 이곳에서의 시작이든, 이곳에서의 마무리든. 긴 꼬리가 남긴 여운을 바라보며 저것도 곧 흩어질 거야,라고 생각하자. 밤이 되어 오페라극장에 불이 켜지면, 아무 말 없이 일어나자. 돌아가자.
그냥 알베르티나에 가자. 다음에도, 기쁘게 도망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