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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행성 Feb 21. 2021

어서 오세요, 입구는 0층에 있습니다

비엔나가 나를 길들인 네 가지 - 층, 물, 트램, 열쇠


"여행은, 다 끝나고 나서 돌이켜봐야 진짜야."


좋아하는 언니가 말했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베란다 너머로 오전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영락없는 한국의 겨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한국에 있구나. 비엔나를 떠나면 기분이 아주 이상할 줄 알았는데, 한국의 모든 것이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떠나는 것에 비해 생각보다 쉽고 편안했다.


"왜 말이 없어? 너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됐구나."


이제는 떠난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시차 때문일 리는 없었지만, 비엔나에 살던 순간들은 어젯밤 꿈이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몽롱한 기분이었다. 한국은 놀랄 것도 없이 변한 것 하나 없다. 마치 마법을 써 이곳의 시간을 멈춰놓고, 아무도 몰래 다소 긴 휴가를 다녀온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돌아온 게 '당연한' 일이었던 것처럼. 어쩌면 비엔나의 이야기는 꿈보다도 전생일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그만큼 다시 만난 한국은 너무도 익숙했지만, 문득 내가 비엔나에 살았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은 주로 '한국과 맞지 않는 습관이나 생각'으로 인해 일어나기 때문에 실수에 가까운 것들이 많은데, 나는 비엔나에 길들여졌다는 사실이 기뻐서 진심으로 웃고 만다.




하나, 유럽의 층수

교환학생 시절 <에밀리, 파리에 가다>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즐겨봤었다. 프랑스어도 할 줄 모르는 미국인이 낯선 유럽에 가서 온몸으로 부딪히는 이야기부터 공감이 갔지만, 가장 무릎을 쳤던 순간은 에밀리가 아파트 층수를 잘못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나 역시 종종 그랬으니까.


1층부터 시작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유럽의 층수는 0층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기숙사 방은 4층이었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 기준에서는 5층만큼 높았던 셈이다. 쉽사리 익숙해지지 못해 친구들에게 종종 '1층에서 만나자'(입구에서 만나자는 의도로)라고 해놓고 0층에 가 있던 적도 많았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습관적으로 0층을 찾게 된다. 유럽에서 1층은 밖으로 나가거나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가 아니기 때문에 누를 일이 잘 없었으니.


이제와 따져보면 건물 층수에 0층을 포함시키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더 맞지 않나 싶다. 0층의 존재를 알고 나면, '지하 1층과 1층 사이에 비밀의 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여기만 숫자 두 칸이 차이 나는 거야?'라고 비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둘, 탭 워터

"한국에서도 수돗물을 마셔?"


오스트리아에서 친해지게 된 현지인 친구가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서울에도 아리수가 있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음수대에서 아리수가 나왔지만, 특유의 비릿한 불소맛이 싫어 졸업한 이후로는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다. 집에서도 당연하게 물을 끓여마시거나, 마트에서 사 먹곤 했다. 하지만 비엔나에서는 식당에서도 탭 워터(수돗물)를 메뉴로 판매한다. 


처음 한 달 간은 주방에서 수돗물을 틀어 컵에 받아마시는 과정이 거부감이 들어 근처 마트에서 물을 사다 먹었다. 하지만 1.5L짜리 페트병에 담긴 물은 금방 다 떨어져 버리곤 했고, 귀찮게 매일 하나씩 사 오거나 한꺼번에 여러 병 사 오는 것 모두 혼자서는 꽤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탭 워터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두 번 마시다 보니 일반 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무겁게 매번 물을 사들고 올 필요도 없었고, 통에 담긴 물을 기울여 따를 필요도 없이 그때 그때 수도꼭지를 틀어 마시면 되니 편했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개씩 버려지는 커다란 플라스틱 페트병이 필요가 없게 되니 환경에도 좋다. 


한국에 와서도 목이 마르면 종종 습관처럼 컵을 들고 싱크대로 간다. 입에 대고 마셔보기 전에 맞다, 하고 버리곤 하지만, 유난히 기분이 좋아지는 비엔나의 습관 중 하나다. 아마도 비엔나에서 친구들과 둘러앉아 무언가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때, '뭐 마실래?' 물어보면 누군가 한 명은 꼭 외치던 '나는 탭 워터!'라는 목소리가 저절로 재생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셋, 교통권 그리고 트램

서울에서 가장 그리울 것 같은 비엔나의 장점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교통비 부담 없이 언제든 대중교통에 올라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학생들을 위한 semester ticket은 정말 저렴해서, 1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으로 한 학기 동안 버스, 트램, 지하철을 무한정 이용할 수 있다. 서울에서 한 달 교통비가 7-8만 원 정도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꽤 많이 차이 나는 셈이다.


교통권은 생각보다 많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집 앞으로 러닝을 하러 가다 날씨가 너무 좋으면, 고민 없이 그 자리에서 트램을 훌쩍 타고 벨베데레 궁전으로 가 뛸 수 있다. 마리아힐퍼 거리에서 쇼핑을 하다 맘에 드는 옷이 없으면 바로 지하철을 타고 슈테판 쪽으로 가면 된다. 일정이 없는 늦은 오후, 집에서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버스를 타고 간 슈타트 공원에서 일몰을 보던 하루도 있다. 서울도 대중교통이 아주 잘 되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들이지만, 왕복 2500원의 작은 부담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들에서 '그냥 가지 말지 뭐'라는 생각에 힘을 실어주기 유용하기에.


그래서 두 발에 날개가 달린 듯한 비엔나가 좋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트램이 좋았다. 트램 중에서도 장난감처럼 생긴 구형을 선호했는데, 우리는 그걸 '귀여운 트램'이라고 불렀다.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릴 때면 늘 구형이 오길 바랐다. 신형 트램에 비해 다소 높아, 정말로 덜컹대는 장난감에 올라타는 기분이었다. 트램의 맨 뒤에 매달려, 큰 창문을 통해 멀어져 가는 비엔나의 풍경과 철로를 조용히 바라보곤 했다. 가장 아끼는 순간들이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습관처럼 교통비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어딘가로 출발하곤 한다. 이내 깨닫고 교통카드를 꺼내곤 하지만, 기분은 썩 나쁘지 않다. 어쨌든 '그냥 안갈래'라는 생각을 건너뛰게 해 준 건 비엔나로 인해 생긴 착각 덕분이니까 말이다. 또, 교통비 한 두 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주는 즐거움을 막기에는 꽤 작은 대가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넷, 열쇠

비엔나에는 도어록이 없다. 도어록에 익숙한 나에게 비엔나에선 어딜 가든 열쇠를 챙겨야 하는 일은 복잡하고 귀찮았다. 깜박 잊고 열쇠를 집 안에 두고 문을 닫기라도 하면 자동으로 잠겨 큰일이 나기 때문에, 집을 나가는 순간까지 가방이나 주머니를 두 세 번 확인하는 것은 필수였다.


열쇠로 문을 여는 것도 까다롭다. 건물단지 입구에서 한 번, 대문에서 한 번, 현관문에서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 열쇠를 넣고 돌려야지만 입성할 수 있는 집에 살던 오스트리아인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가 들고 다니던 열쇠 뭉치만 해도 한가득이었던 걸 생각하면 참 재밌지만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일이다. 


시장을 잔뜩 봐서 양손에 반찬거리가 가득일 땐 더욱 힘들다. 비엔나의 슈퍼에선 따로 비닐봉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에코백을 챙기는 걸 깜박하는 날이면 양손에 계란, 양파, 귤, 우유 등을 한 아름 안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이런 날 열쇠로 문을 열기 위해선 모든 물건을 하나하나 바닥에 내려놓았다가, 문을 연 후 다시 들고 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루는 확 짜증이 나 한국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여긴 왜 이렇게 구식이야!'하고 투덜댄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열쇠는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직 도어록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집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들어가지 못할까 봐 우유 구멍이나 창틀 사이에 복사한 열쇠를 숨겨놓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집은 화분 밑이나 계단 구석이 열쇠 전용 은신처이기도 했고, 아예 열쇠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니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제는 대부분 도어록으로 바뀌어 예전처럼 흔히 보기는 어려운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비엔나 덕분에 나는 아직도 종종 집 밖을 나갈 때 열쇠를 챙겼는지 예전의 그 어린아이처럼 확인하곤 한다.




소설 <어린 왕자>에는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한 많은 구절들이 나온다. 생택쥐페리는 길들임이란 한 편으로는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눈물을 흘릴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비엔나에 길들여졌다는 것은 이 모든 의미를 함축한다. 좋든 싫든 그곳에서 살았던 몇 개월은 습관의 형태로 흔적을 남겨, 비엔나를 좋아하게 만들기도 하고 그리워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여행은, 다 끝나고 나서 돌이켜봐야 진짜야."


언니의 말이 꼭 맞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도 충분히 여행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언니의 편에서 잠시 생각해보면, 내가 그 도시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는 여행이 끝나고 나서 그 장소를 떠나야지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게 맞을 것이다. 길고 긴 비엔나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내가 가진 이 습관들도 언젠간 닳아서 희미해지겠지만, 한 때 내가 비엔나와 조금 닮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오래오래 잊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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