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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Apr 06. 2021

조선 최악의 나쁜 남자

 사람들은 숙종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장희빈의 남자라고. 사람들이 한 나라의 군주였던 숙종을 두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사극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커플이 장희빈-숙종 이기 때문이 아닐까. 남편인 숙종을 가운데 두고 궁궐 여인들이 펼치는 암투는 사극의 단골 소재이다. 그렇다면 숙종은 어떤 인물일까. 장희빈만을 사랑했던 로맨티시스트였을까. 아니면 그저 궁궐 여인들의 치마폭에 둘러 쌓여있던 유약한 왕이었을까. 조선 후기 군주이지만 영조와 정조에 비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숙종. 나는 조선 제19대 임금, 숙종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숙종은 말하자면 ‘장자 프리미엄의 최종 보스’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조선은 정실부인의 맏아들인 적장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역대 군주 중에 실제로 적장자가 왕이 된 경우는 단 7명뿐이었다. 숙종은 적장자 인 데다 할아버지인 효종, 아버지인 현종에 이은 3대째 외아들이었다. 따라서 숙종은 3대에 걸친 적통자로서 그 누구보다 강력한 정통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열세 살 나이에 왕좌에 올랐음에도 자신감이 충만했다. 그런 숙종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한 사람이 있다.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가 한 말들 들어보자.     


 "세자는 내 배로 나았지만 그 성질이 아침에 다르고 점심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니, 나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변덕이 심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실제 숙종이 했던 언행을 살펴보면 매우 다혈질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숙종의 생모인 명성왕후는 며느리인 인현왕후에게 이렇게도 말했다.     


 "주상은 평소에도 희로의 감정이 느닷없이 일어나시는데, 만약 꾐을 받게 되면 나라의 화가 됨은 필설로 다할 수 없습니다"  

 

 아들이 감정 기복이 원체 심해서 만약 어떤 유혹에 빠진다면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늘날 조울증 환자의 증상을 보인 숙종, 명성왕후가 아들의 성품을 보고서 한 이 말은 훗날 궁궐에서 벌어질 비극을 예언했던 걸까. 과연 어머니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숙종은 재위 기간 동안 무려 세 번이나 환국을 강행하였다. 환국이란 신하인 집권여당을 다른 세력으로 완전히 물갈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였으니 오늘날처럼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정치인을 당선시키는 일은 당연히 없을터. 조선 정부에서 인재를 등용하려면 신하들의 추천과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임금님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다. 

 문제는 숙종이 세 번이나 되는 환국 정치를 행하면서 수많은 선비들과 인재들이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했던 궁궐 여인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는 비정한 남편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을 만나보자.   

   

장 씨는 곧 장현의 종질녀이다. 나인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


 보시다시피 장희빈의 미모는 <숙종실록>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후궁이었던 장 씨는 숙종도 한눈에 반하게 만들 만큼 빼어난 미모의 여성이었던 것 같다. 장 씨에게 마음이 빼앗긴 숙종은, 장 씨가 아들을 낳자 이 어린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려 한다. 숙종의 정실부인인 인현왕후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말이다. 당시 중전인 인현왕후는 26살밖에 되지 않았었다. 

 이때 집권세력이자 서인의 원로 격인 송시열이 숙종의 뜻에 반대하며 나서게 된다. 중전이 아직 젊으니 후궁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송시열이 누군가. 우리나라 학자 중 공자, 맹자 다음으로 ‘송자’라고 불리는 대학자이지 않는가. 송시열이 숙종의 결정에 반대하자 숙종은 그를 유배 보내는 것도 모자라 사약까지 내린다. 


 당시 숙종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왕세자로 만들겠다는데 감히 너희가 반대를 해?! 앞으로 내 말에 반대하는 세력은 그 누구도 가만두지 않겠다!’ 노발대발한 숙종은 송시열을 필두로 서인들을 귀양 보내는 것도 성에 안찼는지 급기야 중전 자리에 있던 인현왕후를 궁궐에서 내쫓기까지 한다. 투기 죄라는 명분을 삼아서 말이다. <인현왕후전>에는 인현왕후가 퇴궐할 때의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상감의 노하심이 급급 하사 ‘빨리 나가라.’라고 재촉했다. 본가에 사람을 보내 ‘빨리 가마를 들이라.’라고 성화했다. 미처 가마를 꾸미지도 못한 채로 벌써 창덕궁 북문까지 나오셨다는 말이 들리니 경황없고 급하여 보통의 가마에 흰 명주보로 가마 위를 덮어 들어가니 왕후께서 벌써 경복당 앞에 내려와 걸어오시는지라···.    

 

 아무리 장희빈에게 눈이 멀어도 그렇지 일국의 중전을 이렇게 막무가내로 쫓아낼 수 있단 말인가. 가마가 오기도 전에 빨리 나가라며 윽박지르다니···. 숙종의 불같은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국 쫓겨난 인현왕후와 그녀의 정치적 뒷배였던 서인 세력도 함께 무너지게 된다. 숙종은 한바탕 피바람을 일으켜 정치테러를 자행했다. 대대적인 숙청에 서인이 몰락하자 남인이 정국의 주도권을 쟁취하게 된다. 그리고 후궁이던 어여쁜 희빈 장 씨를 중전으로 승격시킨다.


 이것이 우리가 국사시간 외워야 했던 ‘기사환국’이다. 그런데 잠깐. ‘기사환국’을 통해 중전이 된 장희빈을 다시 생각해 보자. 그녀는 조선 왕조에서 유일하게 후궁에서 중전의 자리까지 올라간 여성이었다. 중전이 된 장희빈과 새롭게 집권세력이 된 남인의 관계는 과연 우연일까? 한편 인현왕후가 사가로 쫓겨난 뒤 민가에서는 이런 노래가 유행했다고 한다.  

   

미나리(인현왕후)는 사철이요, 장다리(희빈 장 씨)는 한철이라
철을 잊은 호랑나비(숙종) 오락가락 노니,
제철 가면 어이 놀까.     

 

 백성들도 숙종의 애정행각을 조롱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장희빈을 열렬히 사랑했던 숙종의 마음은 생각보다 얼마 가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자 내쳤던 조강지처를 5년 만에 다시 궁궐로 불러들이라 한 것이다. <숙종실록>에서 그가 한 말을 들어보자.  

   

‘기사년의 일’을 생각해보건대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라의 운수가 태평한 곳으로 돌아와 중전이 복위되었으니 백성에게 두 주인이 없음은 고금의 공통된 의리이다. 장 씨의 왕후 인장을 회수하라.

 숙종이 과거에 인현왕후를 내쫓은 일을 후회하신단다. 언제는 본부인을 무자비하게 내쫓고선 후궁을 중전으로 만들더니, 이제는 새 중전을 내쫓고 다시 옛 부인을 불러올리라니···. 아무리 변덕이 심할지라도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인현왕후는 중전으로 복위된 지 얼마 가지 않아 병으로 죽게 되었다. 이에 숙종은 장 씨에게 사약을 내린다. 이건 또 무슨 황당한 일인가. 이유인즉슨 장희빈의 저주로 인해 인현왕후가 죽게 되었다는 고변을 들었기 때문이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몸종이었던 최 씨에게 이 같은 고변을 듣고선,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린 남편이었다. 정실부인을 쫓아내면서까지 그토록 사랑했던 장 씨가 아니었는가. 장 씨에게 사약을 내리면서 하는 말은 더 가관이다.     


 내 앞에서 죽일 것이로되 네 얼굴을 보기가 더러워 약을 보내니 네 염치가 있을 텐데 이 약은 네게는 상인 줄 알고 죄 위에 죄를 더하여 삼척 지율을 받지 말라.     

 그는 사랑하던 여인에게 사약을 빨리 먹으라고 재촉까지 했던 비정한 남편이었다. 장희빈이 사약을 마시고 죽자, 그녀와 정치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남인 또한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당한다. ‘갑술환국’이 일어난 것이다.

 역사책을 보면 숙종은 환국 정치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다고 한다. 남인을 소탕하고 서인으로, 서인을 내치고 남인으로, 그리고 다시 남인을 쳐내고 서인으로···. 

 그 과정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들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택하고 버리기를 반복한 것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하나밖에 없는 남편만을 바라보고 사는 궁중 여인들은 숙종의 말 한마디에 생사가 오고 가야 했으니 말이다. 


 서인 핵심 인사의 딸이었던 인현왕후, 남인 세력과 결탁한 장희빈, 그리고 무수리 출신인 최 씨. 그녀들은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 궁중 암투를 벌여야만 했다. 목숨을 건 대결에서 최후의 승리자는 아무도 없었다. 훗날 영조의 어머니가 된 최 씨도 장희빈이 죽은 후 대궐을 떠나야 했으니 말이다. 

 숙종이 진정 사랑한 여인이 있기는 했던 걸까? 오직 왕권 강화를 위해 필요에 따라 부인들을 철저히 당쟁에 이용했던 나쁜 남자 숙종. 인현왕후도, 장희빈도, 최숙빈도, 모두 숙종의 덫에 걸린 불행한 여인들이라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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