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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Apr 06. 2021

감정 근육을 단련하라

 우리는 화가 날 때면 어떻게 분노를 해소할까? 내가 자주 사용하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폭음과 폭식이었다. 분노하는 일이 생기는 날이면, 나는 주로 술자리를 찾았다. 삼겹살과 소주 앞에서 그날 나를 화나게 했던 일을 떠올리며 소리치곤 했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노래방에 가서 목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 하면 잠시나마 분노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부정적인 감정이 솟구치면 그 순간의 감정을 당장 없애버리려고 전전긍긍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을 잘 들여다보면 오히려 역경을 이겨내는 열정의 힘으로 사용할 수 있다.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나에게 알려준 지혜이다.


나는 소설 읽는 것보다 백성들의 민원을 읽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 


 이 유명한 말을 남긴 정조는 평생 백성들과 소통하기 위해 힘쓴 왕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세종대왕에 이은 애민의 군주라고 평가한다. 정조는 집권 초기부터 백성들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늘 백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쌀이 필요한 노인에게는 쌀을 주고, 세금이 무겁다는 백성에게는 세금을 면제해 주곤 했다.      


매번 전복 캐는 수고로움을 생각해보니 어찌 전복을 먹을 생각이 나겠는가
 

 제주도 사람들은 깊은 바다에서 전복을 따다가 공물로 바치느라 목숨까지 잃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러자 정조는 해녀들의 고통을 헤아려 전복을 먹지 않기로 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인재육성에도 힘쓴 왕이었다.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을 만들어 인재들을 학문에 힘쓰도록 했다. 그가 규장각에서 육성한 대표적인 인재가 수원화성을 설계한 정약용이다. 정조의 꿈이었던 수원화성은 세계 최초의 계획 신도시라는 점과 역사와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조의 삶을 살펴보면 ‘조선 역대 왕 중에 이렇게까지 힘겹게 살았던 인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어린 시절은 비극 그 자체였다. 정조가 열한 살이었을 때,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정조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열한 살이면 웬만한 것은 알 만한 나이이지 않은가. 그는 왕세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는 반대파로부터 암살 위협을 받으며 견뎌야 했다. 그랬던 그가 왕이 되는 첫날, 대신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아, 이게 무슨 말인가. 정조는 세손 수업을 받는 10년 동안, 한 차례도 사도세자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는 역적으로 죽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정조는 사도세자의 이복형이었던 효장세자의 양자가 되어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왕이 되자마자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선언을 하다니! 정조는 자신이 역적의 아들이라고 선포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대신들 중에는 사도세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곧 피바람이 불 것이라 여기면서 벌벌 떨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정조였다면 그 자리에서 ‘나 이제 왕이야, 나의 아버지를 죽이게 한 놈들, 전부 다 나와! 똑같이 복수해주겠어!’ 이렇게 말하며 당장 원수를 갚고자 했을 것이다.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분노가 내면에 쌓여 있었을 것이다. 하마터면 연산군처럼 무자비하게 피의 복수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분노의 감정을 반대파를 향한 복수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복수를 위한 분노는 자신 역시 불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기를 꿈꾼다. 사실 현실이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행복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행복만을 추구하다 보면 다른 감정들은 모두 필요 없는 것이라 여길 때가 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은 사랑, 설렘,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좌절, 실망, 창피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있다. 힘든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듯이, 행복과 불행은 항상 같이 존재한다. 문제는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들을 대처하는데 서툴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부정적인 감정이 솟구치면 이를 불편해하거나 빨리 사라지기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이제는 화가 나면 잠깐 멈추어 나 자신의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내가 어떤 지점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솟구쳤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내가 화가 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정적인 감정은 나를 비롯한 타인에 대한 기대감이 좌절되었을 때 나온다. 나의 가족이나 친구, 또는 직장이나 국가가 나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과 짜증을 넘어서 울화가 치미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근원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게 어느 정도 화가 풀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분노의 감정이 나에게 주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나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쓸 수 있도록 해보자. 분명 한 걸음 더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화가 나면 더 이상 폭식이나 폭음을 하지 않는다. 폭음이나 폭식은 당장 분노를 없앨 수 있는 것처럼 보여도, 언제든 또다시 불쑥 튀어나와 나를 망치게 했기 때문이다. 대신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마다 종이 위에 내가 화난 이유에 대해서 글을 써보았다. 내 나름대로 나의 감정을 살펴보는 방법이다.

 

 나를 격분하게 만든 일에 대해서 찬찬히 글을 쓰다 보면 나의 내면의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면 어느새 ‘이렇게까지 내가 화가 날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몸 근육처럼 감정 근육도 튼튼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나를 성장하게 하는 또 다른 힘이 되었다.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였던 정조의 원동력은 어쩌면 ‘분노의 감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비극적인 가정사를 겪어야 했다. 왕이 된 이후에도 정적들의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분노의 감정을 상대를 향한 복수심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불행하고 고독한 왕이었다. 그럼에도 가슴속에 있는 분노의 감정을 오히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원동력으로 활용했다. 그것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향한 것이다. 그는 워커홀릭이라 할 만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평생을 노력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를 역적의 아들이 아닌, ‘정조대왕’으로서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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