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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달 Apr 08. 2021

조선 역사에서 배운 인생

 서른, 치열하게 일했지만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결혼에 대한 문제와 이직에 대한 걱정,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들. 점점 팍팍해져 가는 현실에서 내 통장만 쪼그라드는 것 같다. 분명 열심히 살고 있는데, 일과 삶의 문제로 불안한 사람은 과연 나뿐인 걸까? 나는 서른이 되어서야 세상을 향해 끝없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복잡다단 세상사,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역사 속에서 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수백 년이나 지난 조선시대 이야기가 왜 21세기인 이 시대에 필요하냐고. 하지만 수 백 년 전이든, 첨단 문명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세계든 우리는 이 땅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역사 교육자인 최태성 선생님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역사.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역사.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하는 역사.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말은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닙니다.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놀랍게도 현시대와 너무나 비슷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을 먼저 살아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때로는 반면교사로, 때로는 시대를 초월한 지혜로써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힘과 위안을 전해준다. 온고지신이라고 하지 않던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일깨우는 것. 명제는 쉬워 보이지만 사실 오랜 경험과 상당한 성찰을 거쳐야 얻을 수 있는 말이다.

 역사를 통해 비춰보는 것은 비단 현재뿐만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얼굴도 비춰볼 수 있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하였을까?’ ‘이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자.


 우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경술국치를 이겨냈다. 암울했던 한국전쟁을 지나 지독한 가난과 독재에 맞서 왔다. 민주주의를 쟁취해 내고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해왔다. 오늘날 민주시민은 위대한 ‘촛불 혁명’을 이루어냈다. 

 2016년 겨울, 한창 광화문에서 집회가 열릴 때였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모였고 나도 퇴근 후 전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향하곤 했다. 그런데 거제도에 살고 있던 고향 친구가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까지 온다는 게 아닌가. 한 번이 아니라 매주 주말마다 4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다녀간다는 것이다. 

 광화문뿐만 아니라 전국 대도시까지 퍼져나간 촛불운동은 나와 같은 친구, 가족, 이웃들이 함께한 시민혁명이었다. 


 나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려는 민주시민의 열망은 동학 농민운동의 정신으로부터 계승되었다고 본다. 1894년, 민(民)이 주체가 된 동학 농민혁명의 가치는 3.1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상하이 임시정부 건국을 불러일으켰고 광복군의 활동이 전개될 수 있었으며 8.15 해방을 도출해냈다. 그리고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민주항쟁, 최근에 일어난 촛불 혁명까지 이 놀라운 역사의 뿌리는 동학농민운동에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불안한 현실에서 내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려면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나다운 인생, 삶의 의미를 온전히 느끼며 살고 싶다. 스펙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불어 상생하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우당 이회영 선생, 거상 김만덕,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는 나눔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였다. 그분들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쫓아가다 보면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 나간 것을 엿볼 수 있다.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많은 유혹과 갈림길에 마주하지 않던가. 물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적인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을까? 


 나는 품격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만을 생각한다.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누군가는 부당한 방법을 행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짙밟으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훗날 나의 선택이 어떻게 평가될지 가늠해본다면 결코 근시안적인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제 강점기에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가문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낸 이회영 가문은 일제 아래서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며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회유를 뿌리치고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쳐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만약 나였더라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제주 여성인 거상 김만덕이 칭송받은 이유는 뛰어난 장사 수완 때문만이 아니다. 일회성 나눔이 아닌, 일상에서 절약하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며 죽어가는 제주 사람들을 살려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통틀어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보여주었다. 내 재산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가진 것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나누는 것, 나눔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      


  몇 해 전 겨울, 연탄과 도시락 배달 봉사를 위해 독거노인 분들의 집을 방문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따라 찾아갔던 곳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어르신들의 집이었다. 그중 한 할머니는 나와 뜻깊은 인연이 되었다. 처음 할머니를 마주했을 때 할머니는 영양실조 위협에 있었다. 다행히 정기적으로 찾아뵌 지 2달쯤 되었을 때, 할머니는 건강을 회복하고 잃어버렸던 웃음도 되찾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맞잡은 손에서 온기가 전해졌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은 내 마음까지도 따뜻하고 포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삶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 내가 하는 일에 자긍심을 느끼고 떳떳하게 행동한다면, 설령 시련이 찾아온다고 해도 묵묵히 가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겠지. 내가 공부하는 건 역사지만 결국은 사람을, 인생을 공부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수백 년 전 인생 선배님들이 보여주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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