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학자였던 한비자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용은 잘 길들이면 등 위에 탈 수 있을 정도로 사람과 가까운 동물이다. 그러나 절대로 손대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목 아래에 거꾸로 난 1개의 비늘인 ‘역린’이다. 이 부분을 건드린 사람은 누구도 화를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게 된다.”
거스를 ‘역’, 비늘 ‘린’. 역린이란 용의 목에 거꾸로 솟아난 비늘을 말한다. 만약 누군가 이 비늘을 건드리게 되면 용의 분노를 사게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한비자는 군주에게도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역린’이 있다고 했다. 즉, 군주의 역린을 건드린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용인할 수 없는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셈이다.
조선 역사에는 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권세를 떨쳤던 신하들이 있다. 그러나 왕의 분노를 일으키는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한순간에 몰락해버린 신하들이 한 둘이 아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홍국영이다. 그는 정조의 오른팔이라고 할 만큼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신하였다. 홍국영이 맡았던 직책만 보더라도 그를 향한 정조의 신임이 얼마나 두터웠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왕의 비서실장인 ‘도승지’부터, 왕의 자문을 담당했던 ‘홍문관 제학’, 국가의 재정을 관리하는 ‘선혜청 제조’, 왕의 건강을 보살피는 ‘약원부 제조’를 맡으면서 행정 부분을 장악했다.
어디 그뿐인가. 왕의 경호를 담당했던 ‘숙위 대장’과 ‘금위대장’, ‘훈련대장’을 겸직하면서 군권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는 문·무관을 넘나들며 주요 관직을 꿰찬 것이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청와대 비서실장부터 경호실장, 수도방위사령관, 경찰청장, 대통령 주치의까지 겸직한 셈이다.
이렇게 많은 직책을 한꺼번에 맡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홍국영이 조정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그의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를 향한 정조의 두터운 신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정조에게 있어 홍국영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정조는 어린 시절부터 정적들에게 숱한 위협을 받았었다. 그때마다 위기 상황에서 정조를 지켜준 사람은 홍국영이었다. 그만큼 홍국영은 정조에게 힘이 되어주는 유일한 신하였다. 정조도 즉위 직후 “국영과 갈라서는 자는 역적”이라고 선언할 만큼 그에 대한 전적인 신임을 내비쳤다.
정조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게 된 홍국영은 승승장구했다. 마침내 조정 내 모든 실권을 거머쥐었다. 그러자, 국정의 주요 사안이 홍국영을 거치지 않으면 국왕에게 보고조차 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요즘 말로 ‘문고리 권력’이 된 것이다. 홍국영은 권력의 핵심, 그 자체였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속담이 있다. 당시 홍국영처럼 권세가 대단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 않을까.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그의 무소불위 권력도 허망하게 끝나버리게 된다.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할 방법으로 무리수를 두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조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그는 이 틈을 노려 자신의 여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냈다. 만약 홍국영의 여동생이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장차 왕이 된다면, 홍국영은 왕의 삼촌이 되는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자신이 왕의 외척이 되겠다는 뻔한 의도이다. 그러나 후궁이 된 여동생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자, 홍국영의 계획은 틀어지고 만다. 만약 그가 여기서라도 멈췄더라면, 그의 인생이 한순간에 몰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홍국영은 멈추지 않았다.
홍국영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이성을 상실하고 선을 넘는 행태를 보였다. 여동생이 중전에 의해 독살당한 것이라며 정조의 아내인 효의왕후를 모함한 것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말이다. 중전을 의심하는 것도 모자라 궁녀들을 잡아다 고문까지 일삼았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왕족인 상계군을 죽은 여동생의 양아들로 입적시킨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양 조카가 된 상계군을 다음 왕으로 만들려고 했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이 왕의 인척이 되겠다는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아들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왕좌에 앉히려는 그의 야욕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정조 집권 초기, 홍국영은 정조를 도와 외척 세력을 척결하는데 앞장선 인물이었다. 그런데 권력을 쥐게 되자, 오히려 자신이 외척이 되고자 했다. 더구나 왕위 계승에까지 개입한 행동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었다. 정조는 더 이상 그를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홍국영은 추방당하고 만다.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도성 출입도 금지되었다.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홍국영이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은, 정조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임금의 총애를 받는 신하라도 왕권에 반하는 행동은 용인되지 않는 법이다. 홍국영은 정조의 신임을 믿고 자신의 권력을 장기적으로 장악하려는 욕심을 부렸다. 종국에는 왕의 권위까지 무시하는 행동을 하다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홍국영은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정조는 홍국영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렇게 회고했다. <정조실록>의 내용이다.
홍국영이 이런 죄에 빠진 것은 사려가 올바르지 못한 탓이다. 처음엔 나라의 안정과 근심을 함께 하는 데 있어 그의 지위가 무겁지 않으면 위엄이 서지 않았기에 ‘권병(權柄·권력의 손잡이)’을 임시로 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삼가는 방도를 생각하지 않고서 오로지 총애만을 믿고 '위복(威福·벌과 복을 주는 임금의 권력)’을 멋대로 사용하여 끝내는 극죄(極罪)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국왕의 통치 아래에서 살지는 않지만, 다양한 형태의 군주를 모시고 산다. 그들은 우리가 일하고 있는 회사의 사장님일 수도 있고, 내가 근무하는 부서의 상사일 수도 있다. 군주에게도 역린이 있듯이, 그들 또한 역린을 가지고 있다.
가령 학벌 콤플렉스가 있는 사장님 앞에서 학벌로 잘난 체한다거나,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상사 앞에서 외모를 평가하는 행동은 그들의 심기을 건드리는 것이다. 직장에서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태도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누군가 그랬다. 오너의 위치는 고독한 자리라고. 만약 회사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오너이다. 비록 문제의 원인이 직원의 작은 실수였다 하더라도, 결국 뒤따르는 모든 책임은 오너가 감당하게 된다. 대기업의 대표이든, 동네 작은 가게의 사장님이든, 오너의 권위는 마땅히 존중해 주어야 한다.
팀장급이라 할 수 있는 중간관리자들의 역할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경영진과 직원들 사이에서 양쪽으로 압박을 받는 위치에 있다. 중간관리자는 회사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한편으론 직원들의 입장을 헤아리며 팀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처지에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도 나와 같은 직장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간혹, 윗사람의 명령이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설령 상사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더라도, 상사의 권위를 무시하는 듯한 언행은 피해야 한다. 상사에게 내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다가 자칫해서 무례한 행동으로 보이면 본인만 손해다. 그러므로 상사에게 나의 생각이나 의견을 전달할 때에는 상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하도록 하자. 최소한, 리더의 자리에 있는 상사의 권위는 인정해 주면서 말이다.
조선의 군주들도 그들이 갖는 왕권의 권위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했다. 홍국영이 결국 몰락하게 된 것도 선을 넘어 왕의 권위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회사의 사장님이나 직장 상사가 조선의 왕과 동일한 존재는 아니지만, 적어도 윗사람의 민감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누구든지 리더의 권위를 상하게 하는 것은, 곧 자신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란 것을 잊지 말자.
생각해보면 사람은 누구나 불편하거나 예민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다. 리더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가슴속에 저마다의 역린을 품고 사는 것이다.
가령 취업준비생에게, “아직도 놀아? 이제 취업해야지!”
나이 든 싱글녀에게, “여태 시집도 못 가고 뭐하니?”
이와 같은 말들은 아무리 애정으로 하는 말이어도 듣는 사람으로선 큰 상처가 된다. 누구든지 아픈 부분을 찔러대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는 없다. 따라서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역린을 자극하지 않는 것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