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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맘 Sep 10. 2024

"CCTV 달아줘서 고마워!"

결국은 해피엔딩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무척 어려워한다. 나는 가끔 그런 남편이 섭섭할 때가 있다.

"여보! 내가 당신한테 신장 선물해 줬잖아~ 나한테 어떤 마음이 들어?"

"고맙지."

"그런데 여보~당신이 나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

"뭘~ 그걸 이야기해. 말 안 해도 다 아는데..."

"아니야~ 모를 수도 있어. 고마운 마음은 꼭 표현해야 한다고! 자~ 우리 연습 한번 해보자고요!"

"시~작!"

"뭘~쑥스럽게~"

"여보! 나 들을 준비 됐으니깐 빨리 말해줘!"

남편은 멋쩍은 듯 먼 산만 바라보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고... 마워."

"여보~표현해 줘서 고마워. "

나는 남편의 반응이 궁금한 나머지 장난스럽게 말을 꺼냈고, 남편은 진심을 담아 담백하게 말해주었다.

부부사이에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냐 싶지만, 꼭꼭 숨겨둔 마음의 빗장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나는 남편의 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남편의 진심 어린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한술 더 떠서 이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닌가?

"여보! CCTV 달아줘서 고마워."

"뭐라고? CCTV? 어떤 CCTV를 달아줬다는 거야?"

"내 뱃속에~!"

"하하하!!! 당신도 참~."

역시나 유쾌한 남편은 신장을 기증받는 것도 시시티브이를 달아줬다고 표현했다.

나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늘 유머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남편의 모습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의 그런 모습이 좋다.

남편은 늘 나의 감시망 속에서 산다고 이야기한다. 그럴때마다 나는 피식 웃곤 한다.

 

태생부터 다른 남녀가 만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이룬 지 18년 만에 남편에게 신장을 선물해 주었다. 때로는 남편의 몸에 나의 장기가 살아 움직임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랍다.

"여보! 내가 당신 CCTV로 항상 감시하고 있으니깐 항상 행실을 바르게 하고 다녀야 해. 내가 지켜보고 있다고~!"

"네~! 알겠습니다."

남편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기증자와 수혜자인 우리 부부는 유쾌한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일정치 않았던 남편의 신장 수치도 안정화되었고, 나 또한 특별하게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일생생활을 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우리 가정의 '신장 이식 여정'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나와 남편은 이제야 비로소 한 몸이 된 것 같다. 곁에 있는 사람의 몸에 내 몸의 일부가 뛰고 있다는 경이로움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엄마! 아빠 수술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수술 안 해도 돼요?

"응? 응~그럼!"

"그런데 신장 사용 기간이 정해져 있다고 들었어요."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넷째가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했다.

"응?? 응... 아빠는 앞으로 수술하는 일은 없을 거야. 아빠가 신장을 아껴주고 건강관리 잘하면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대. 아니 아빠는 평생 사용할 수 있어. 엄마가 엄청 튼튼한 신장을 아빠에게 줬거든~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진짜요? 휴~정말 다행이네요."

그제야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럼... 그런 기적이 일어날 거야...'


우리 부부가  이식 수술한 지 1년을 훌쩍 넘겼다.

우리는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예측할 수도 없는 먼 훗날의 진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다.

지금 현재에 감사하고, 현재를 누리기에도 충분한 삶이니까.


우리는 매일 '기적'을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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