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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맘 Oct 10. 2024

어쩌면 이곳은 한국의 미래 모습 같다.

팽나무 학교의 전교생은 21명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 수와 도시에서 한 학급의 수가 비슷하다. 아니 도시에서는 한 학급당 학생수가 더 많은 곳도 있으니 비슷하지만은 않다.  팽나무 학교도 오래전에는 학급수도, 학생수도 많았던 곳인데 자연스레 농촌 지역의 인구 감소로 인해 학생수가 적어지게 되었다. 학생수가 적다 보니 학교와 지원청에서는 농촌 유학생을 적극적으로 모집해서 작은 학교 운영을 하고 있으며  생수 재학생 유학생보다 조금 더  다.


예전에 우연히 저출산을  패러디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유머라고 보기엔  혹 그런 사회가 내 눈앞에 다가오는 것 같아 웃지 못하고 안타깝게 보았던 영상이다. 그 영상에는 강의실에 대학생 수가 3명, 그리고 학생 수 감소로 인해 여러과가 통합이 되어 길어진 과이름을 학생들이 걱정하며 이야기 나누고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럼 우린 무슨 과 되는 거냐?"

"경영경제사회복지관광통일국문학과."

"형이 미팅 잡았다."

"무슨과랑?"

"유아초등중등고등특수교육학과랑"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영상 속 학생수와 팽나무 학교의 학생수는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나는 다자녀 엄마이다 보니 집에서는 아이들로 북적이고, 또 신도시에서 거주하고 있어 학교는 학생들이 넘쳐나는 곳에 살고 있다. 그 지역은 아파트가 새로이 들어설 예정이라 학부모들은 넘치는 학생수를 걱정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언론에서 '저출산', ''저출생' 이야기할 때마다 크게 실감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 팽나무 학교에 와보니 어쩌면 이곳이 한국사회의 미래의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촌 특성상 고령화된 어르신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보면 젊은 사람 찾기는 쉽지 않다. 내가 사는 마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 아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요즘 아이들 보기 힘든데'라고 말씀하시며 어르신들은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올초에 강진 시장에  구경을 갔다. 가판대에는 아동 내의를 싸게 판다며 수북이 쌓인 내의와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옷이 잘 팔리지 않아 내복을 싸게 내놓으셨다는 아주머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의를 고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온라인 시장의 영향도 있겠지만, 저출의 영향은 이곳 또한 비켜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서 아이들과 분식을 먹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애국했다'며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삼남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야기다. "아이 세명을  애국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남매를 보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이들과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데  어떤 어르신이 분식 비용을 내주시겠다며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인심이 넘치는 지역이다. 우리는 이미 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어르신의 감사한 마음만 받았다. 나는 처음에는 이런 낯선 관심을 받는 것이 어색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모르게 어린 아기들과 젊은 사람이 지나가면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삼 남매가 가는 곳마다 관심과 사랑을 주심에 감사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곳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한국 사회의 미래가 걱정된다.


아이들과 읍에 있는 식당에 가면 서빙하는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거리에서도 찬가지다. 팽나무 학교 재학생의 절반이상이 다문화 학생다.  전남 지역 학교는 다문화 학생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시골 다문회 사회로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강진군에서는 다양한 인구 유입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 같다. 올해부터 농산어촌 유학생을 대상으로  '만원 주택'을 임대해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고 또 주변에 이사 온 다른 가정은 '2년 살기'로 세 아이를 데리고 오셨는데 그분 역시 '만원 주택'에 거주하신다고 한다. 또 타 지역에서 귀농한 부부 역시 '만원 주택'의 혜택을 받고 있다.


아이들과 읍으로 나가는 길에 시골모자에 몸빼바지를 입은 젊은 부부가 지나가는 걸 보았다.

"어? 저기 지나가시는 분 '세 달 살이'하러 오신 분이에요."

"우리 그 마을로 지나가는데 태워드릴까?"

"좋아요."

"안녕하세요? 저희 00이네 휴양마을 앞으로 지나가는데 태워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그분들을 팽나무에서 뵌 적이 있기 때문에 반갑게 인사했다.

짧은 몇 분 동안 젊은 부부와 이야기를 나눴다. 수도권에서 오셨고, 완도를 알아보다가 우연한 기회에 강진을 알게 되어서 오시게 됐다는 것, 그리고 거주기간이 세 달이기 때문에 우리 보다 먼저 강진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분들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지 않았데 벌써 휴양마을에 도착했다.

"강진에서 좋은 추억 많이 남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이야기에 그녀는 경쾌한 목소리로 답변했다.

"네~ 감사합니다! 저희 집에도 놀러 오세요."

짧았던 첫 만남에서 집에 놀러 오라는 말이 쉽지 않은데 그 말이 정겹게 느껴졌다.

이곳은 원주민, 다문화 가정, 농촌 유학생, 살아보기 가정 등 다양한 가정들이 공존해서 살아가는 곳이다.


얼마 전  방송국에서 농촌유학가정을 촬영한다는 소식 들려왔다. 타깝게도 방송국의 촬영 일정 변경으로 인해  촬영이 취소되었지만 그때 작가님과  통화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작가님은 나에게 농촌유학온 계기, 그리고 좋았던 점 등을 물어보았다. 그리곤  "귀촌하실 생각이 있으시나요?"하고 다.

"네? 아니요. 저는 농촌 유학을 왔고요. 서울에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떨어져서 지내고 있어서요. 귀촌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강진에 농촌 유학 온 지 7개월 차였던 나에게 '귀촌'이라는 질문은 참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동안 그 단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귀촌'이라는 단어를 곱씹어서 생각해 보았다.

지금 당장은 여러 여건 때문에 귀촌하기는 어렵지만 오로지 도시생활만을 지향했던 나의 생각이 이곳에 와서 변화되었다.  아이들이 독립한 뒤에 훗날, 우리 부부가 시골에 살고 있는 꿈을 그려본다.


시골에 살아보니 이곳은 정서적 풍요와 더불어  삶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막연한 시골살이에 대한 편견이 깨진 곳이기도 하다. 또 강진은 나에게 새로운 '꿈'과 '도전'을 준 곳이어딜 가든지 이곳을 '제2의 고향'이라 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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