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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맘 Oct 03. 2024

생태맹, 생태 교육을 받다.

생태맹이란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에 나온 설명이다. 생태맹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생소했던 나는 그 의미를 되새김하며 마치 내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도시 태생. 서울에서 나서 서울에서 컸다. 유년의 기억이 선명한 여섯 때부터 아파트에 살았다. 꽃과 나무 이름에 무지한 생태맹이다. 이 내용은 은유 작가님의 [쓰기의 말들] 책에 나오는 일부 내용으로 나에겐 무척 공감되는 글귀다.


3월에 농촌 유학을 온 뒤 나는 심심할 겨를 없이 다양한 교육을 받고 체험하며 바쁘게 지냈다. 시골에 이사를 와서 무료한 생활을 이어갈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이곳의 삶은 무척 바빴다. 대부분 무료로 진행되는 체험활동과 교육 소식은 놀랍기만 했다. 도시에서는 선착순, 높은 경쟁률로 참가하기 어려웠던 프로그램들이 이곳에서는 배우고자 한다면 대부분 들어갈 수 있었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었다.


벚꽃이 무르익었을 무렵에는 보은산 근처에서 진행하는 중년 여성 힐링 프로그램을 만났고, 또 숟가락을 열심히 저어가며 딸기고추장을 만들기 체험을 했다. 천연 염색 과정을 배우면서 자연에서 만난 은은한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달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축제에 참여하다 보니 1학기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건 군민에게는 대부분 무료로 수강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고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농촌유학을 가려면 학교를 선택하는 과정, 필요서류제출, 사전 방문등의 여러 절차를 거친 뒤 최종 결정을 하고 이후에는 강진에 전입 신고를 해야 한다. 우리 가족은 학교에서 정해준 기간, 즉 2월 중순경에 강진으로 전입 신고를 마쳤다. 강진 군민이 된다는 게 이렇게 많은 혜택을 받나 싶은 정도로 우리 가족은 특별한 환대와 혜택을 받고 있는 중이다.


7월에 강진 교육지원청은 농산어촌 유학생 가정, 강진 학부모, 다문화 가정 등을 대상으로 생태해설사 양성과정을 모집했다. 작은 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도 여러 학부모가 생태교육을 신청했고 약 4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생태교육을 받았다. 우리의 열정은 뜨거운 무더위를 이겨낼 만큼 강렬했다.


자연을 바라보며 그저 아름답다 감탄만 할 줄 알았던 나는 서두에 나온 내용처럼 꽃과 나무의 이름에 무지한 '생태맹'이었다. 그런 '생태맹'이 16차시를 지나며 마지막 수료식을 앞두고 있다. 그 사이 계절은 바뀌어 가을이 되었다. 생태 수업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분께서 오셔서 이론 교육을  해주셨고 현장 실습도  병행했다. '강진만 생태 공원'에 나가 현장 답사를 하며 우리는 다양한 생물 배워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강사님은 '고독한 생태 철학자'님이셨다. 오직 한 길, 이 길만 몇십 년 동안 연구하셨던 강사님은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았지만, 그분의 말씀에서 나오는 철학자와 같은 말은 나에게 '깊은 질문'을 던져 주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끄덕'이는 말씀들을 하셨다. 생태공원 데크길을 따라다니며 선생님의 말씀을 놓칠세라 나의 귀는 열려있었고 그분의 말씀을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생물 관찰하랴, 강사님 말씀 들으랴, 잊어버릴세라, 기록하랴, 뜨거운 햇빛 가리랴 정신없었지만... 하지만 나는 안다. 생태 지식을  많이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을...


수료식을 앞두고 과연 나는 '생태 해설사'라는 첫발을 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난날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강진만 생태공원을 떠올리며 나와의 마음속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 이곳은 강진만. 탐진강과 남해 바다가 만나는 곳이지.

 짱둥어가 밀고 다녀서 길이 생겼고 망둥어가 뛰어다녀서 길이 없다고 했어. 둘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사이는 서로 좋지 않대. 짱둥어가 있는 곳은 갯벌이 있으니까 기억해. 그걸 기수역이라고 한다고! '

'그런데 짱둥어야 미안해! 강진에 짱뚱어탕이 유명하다고 해서 지난번에 짱뚱어탕 먹었어. 이건 아이들한테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아.'

'붉은발말똥게는 바쁘게 움직이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게는 진동을 느낀다고 하지? 미안~! 조심히 지나갈게. 아~그런데 게는 만지면  죽으니깐 만지면 안 되는 거야!'

'저 옆에는 새섬매자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어. 새섬매자기가 많이 없었는데 일부러 복원을 했다 하지? 새섬매자기가 엄청 많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줄어들었다가 다시 살아난대. 새섬매자기 뿌리줄기는 고니가 좋아해. 쉿! 사실은 새들이 물고기보다 풀을 더 많이 먹는다고 해.' '생태공원에는 식물종이 다양하지는 않아. 하지만  1100여 종이 넘는 생물이 살고 있어. 이거 다 공부하려면 나 힘들겠는걸? 하지만 괜찮아~ 해설사는 완벽하지 않아. 우리가 관찰한 대표적인 종부터 먼저 공부해 가면 되잖아.'

'어~저기! 중대 백로가 날아간다. 그런데 백로는 발 색깔에 따라 이름도 조금씩 달라.'

'와~ 저기 저 작은 섬에는 하얀 꽃이 핀 것 같지? 그런데 저기는 새들의 쉼터래, 아름답지 않니?'

'어? 오목눈이 뱁새가 운다. 어떻게 소리를 내지? 하하하! 뭐라고? 뱁뱁뱁이라고? 장난치지 말고~'

'저기 저 멀리 왜가리와 백로가 먹이를 잡아먹으려고 서있는데? 우리 잠깐 지켜볼까? 맞아. 쌍안경이 있으면 더 잘 보이겠지?'

'이곳은 탐진강이 흐르는 곳이야. 하구가 없으면 강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데 탐진강은 막힌 곳이 없대.'

'저기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갈대를 잘 관찰하면 물이 어디까지 차올랐는지 알 수 있어.'

'데크길에 똥이 있다고? 게껍질이 있는 거 보니깐 수달의 소행인 게 분명해. 수달은 1급 멸종 야생동물이야.'



나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니  '고독한 생태철학자'님의 말씀이 다시금 떠올랐다.

"우리는 남을 훔쳐보고 있는 거예요." 누군가 나를 훔쳐보고 있다면 섬뜩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씀이 맞다. 생태공원의 집주인인 생물들에게  우리는 허락을 받지 않고 엿보고 있으니 어찌 보면 훔쳐보고 있는 게 맞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태공원에 살고 있는 생물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을까?

 "얘들아! 우리 최대한 조용히 걷자! 만지지 말고 바라만 보자! 작은 소리로 이야기하자!"



고독한 생태 철학자님과 현장답사가  끝나갈 무렵, 나는 궁금한 것이 떠올라 강사님께  질문을 했다.

"강사님!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어떤 질문이요?"

"강사님은 강진만 생태공원에서 어떤 냄새가 나세요?"

"제가 냄새를 아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모르겠는데요."

'아차! 내가 의도한 질문은 그게 아닌데.. 우스갯소리로 말씀하시는 거겠지.'

"강사님~! 저는 여기 오니까 바람을 타고 바다 냄새가 나는데요. 강사님은 어떤 냄새가 나세요?"

오랜 시간 동안 생태를 공부하신 선생님의 답변이 내심 기대가 됐다.

"지금은 장마철 냄새가 납니다."

"네? 장마철 냄새요?"

"바람 냄새는 부패 냄새가 나고요... 갈대는 젊은 냄새가 나요. 하지만 지금은 늙은 냄새가 납니다."

"아~ 네~"

나는 잊어버릴세라 빠르게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생태가 겻들어진 강사님의  답변은 다시금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올해 10월 말에 강진만 생태공원에서 축제가 열린다. 축제명은 '강진만 춤추는 갈대축제'

우리는 축제기간 중에 하루를 학생을 대상으로 생태 해설을 하게 되었다. 그때  강진만 생태공원  집주인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낯선 방문자들에게 제 모습을 보여줄까? 갈대와  바람은 어떤 냄새가 날까? 또 사람들은 어떤 냄새가 느껴질까?

그리고 다시금 질문을 던져본다.

남의 집을 훔쳐보고 있는 우리는 누구를 위한 축제를 여는 것일까?






똑똑똑!!

 안녕하세요? 저희는 강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희가 여러분들 집 좀 빌리고 싶어서요~
생태공원에서 9일 동안 축제 좀 해도 될까요?
조심히 사용할게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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