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큰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을 위해 교육 목적으로화분에 '모'를 심었다. 학교 정문 안쪽에 네모난 화분이 놓여 있었고 아이들은 지나갈 때마다, 계절이 바뀜에 따라 벼가 자라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모'는 네모난 공간 안에서 제법 잘 자랐고 ,가을에는 낟알이 꽉 찬 고개 숙인 벼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당시 나는 아이들이 등교할 때마다 오며 가며 벼를 보기는 했지만 큰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삶이 무척 바빴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그때 그 장면이 떠오른다.낟알이 꽉 차 있던 벼는 이후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진다.
지난 10월, 학교 근처 휴양 마을에서 벼 베기 체험 활동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팽나무 학교가 아닌 타학교에 아이들이 체험하러 온다고 했다. 팽나무 학교 학부모가 휴양 마을 보조 강사로 활동하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체험활동을 참관을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했다. 다행히 사무장님의 허락을 받고 참관할 수 있었다.
휴양 마을의 아침은 아이들 맞이로 분주했다. 휴양마을에 거주하며 농촌체험하러 오신 여러 분들이 함께 나와서 예스러운 모습의 탈곡기도 꺼내고, 휴양마을 마당에 홀태도 놓아두었다. 그날은 아이들이 벼 베기 체험을 하러 오는 날이었는데 전날 비가 오는 바람에 아이들이 논에 들어가기엔 땅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그래서 어른들이 벼를 미리 베어 오기로 했고 아이들은마지막 순서에벼를 베어보는 체험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서둘러 트럭을 타고 논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농촌체험팀과 우리 팀이 트럭에 올라탔다. 나는 시골마을에서 가끔씩 트럭 뒤에 사람들이 타고이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직접 타본 적은 없었다. 함께한 팀들은 놀이기구 타는 어린이처럼 신이 났다. 우리는 트럭 위에 올라가서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시골 길을 지나갔다. 어른들의 신나는웃음소리는 바람을 타고 내 귓가를 간질여 주었다. 그사이 트럭은 벌써 논에 도착했다. 천진난만한 얼굴의 허수아비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늘 체험하러 오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작품이었다. 귀엽고 앙증맞은 허수아비들이 누렇게 익은 벼들을 줄을 서서 지키고 있었다. '와! 비로소 시골에 온 것 같다.' 넓게 펼치진 황금 들판은 무척 아름다웠고 진짜 가을이 왔음을 우리에게 뽐내듯 보여주었다.
"자~ 이쪽에서 저쪽까지 벼를 베어 오시면 되겠습니다." 휴양 마을 대표님은 농촌체험 팀에게 낫을 이용해 벼를 베는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그분들도 벼를 베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다. 서투르게 벼를 베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쉽지 않아 보였다. 나도 호기심에 낫을 들고 벼를 베어 보려는데 벼 줄기가 꽤나 질기다.
마치 벼 줄기와 낫이 줄다리기하는것 마냥 서로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았다.
'탁''탁'
농촌체험팀들의 벼 베는 속도가 빨라졌다. 정해진 수확량이 끝나자우리는 다시 휴양 마을로 이동을 했다.
아이들이 도착할 시간이 다가왔다. 저기 주차장 입구에 노란 버스가 들어섰다.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자 우리는 반가운 나머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학년들만 이곳에 왔다는데 이 학교 역시 아이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팽나무 학교 아이들보다는 더 많았다. 휴양마을 체험장 안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벼의 한살이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고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체험활동이 시작됐다. 옛날 전통 방식의 체험 활동이었기 때문에 홀태라는 낯선 도구를 이용해 벼의 낟알을 분리해 보는 체험을 했다. 밀짚모자를 쓴 아이들이 신중한 모습으로 낟알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홀태가 흔들리지 않게 발로 고정시킨 후, 벼를 홀태 틀에 '탁' 하고 올린 후 훑어야 한다. 요령을 익힌 아이들이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열심히 낟알을 훑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진지한 꼬마 농부 같다.
다음 순서는 홀태로 모은 낟알들을 탈곡기에 넣었다. 물레방아처럼 생긴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속이 빈 볍씨와 마른풀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그리고 낟알들이 바구니에 우수수 떨어졌다. 다음 순서는 체험학습장 안으로 들어가서 낟알을 매통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갈아보면서 벼껍질을 벗겨보았다. 아이들은 생소한 도구를 이용해 벼껍질을 벗겨보면서 쌀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농부들이 수고하시는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계속된 체험으로 아이들이 배가 고플 무렵, 맛있는 고구마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아이들은 간식으로 마련된 고구마와 음료 그리고 귤을 맛있게 먹었다. 열심히 체험학습을 하고 먹는 찐 고구마 맛은 꿀맛이 아니었을까? 물론 나도...
드디어 벼를 베러 갈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다시 노란색 버스를 타고 논으로 출발했다.
논길을 따라 저만치 멀리서 줄을 서서 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해는 중천에 떠었었고 질척했던 땅도 어느 정도 말랐다. 맑개 갠 날씨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이들은 휴양 마을 대표님 설명을 듣고 작은 낫을 이용해 벼베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벼를 한 움큼씩 쥐고 낫을 이용해 벼를 베기 시작했다.
'쓱쓱 싹싹', '쓱싹 쓱싹'
아이들이 그날 수확한 벼는 모내기 체험 활동을 했을 때 심었던 '모'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손수 심었던 '모'가 낟알이 꽉 찬 벼로 자랐고, 그날 벼 베기 체험을 한 것이다. 농촌에서 살기 때문에 이렇게 연속적인 체험활동에 참여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체험은 시골 특유의 정서와 계절의 변화를 직접 관찰할 수 있어서 아이들에겐 특별한 체험학습이라 생각된다.
그날은 나에게도 의미 있는 날이었다. 3월, 꽃샘추위가 한참일 무렵 아이들과 강진에 이사를 와서 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었다. 작은 '모'들이 어느새 자라서 고개 숙인 벼가 되었다.
뻥 뚫린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계절이 바뀌었음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드넓은 들판, 떨어지는 나뭇잎, 시원한 가을바람이 내 몸을 휘감는다. 시골에 살면서 오감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우리 시야를 가리고 있는 큰 건물들이 없기 때문이다. 밖을 나가면 오롯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 펼쳐진다.
계절마다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시골의 바람은 더더욱 솔직하다. 때론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때론 시원하게, 때론 차갑게... 나는 이 바람을 느끼며 어떤 계절임을 직감할 수 있었으나 요즘 이곳의 바람을 느끼고 있노라면 헷갈릴 때가 있었다. 분명 시원하고 상쾌한 가을바람이었는데 어느 날은 더운 바람으로 바뀌었고 , 어느 날은 봄바람 같았다. 이상기후의 영향일까?
얼마 전, 봄에 피는 꽃인 민들레를 11월 중순에 만났다. 꽃들도 헷갈리는 걸까? 나만 느끼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