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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니 Jan 03. 2021

# 12. 'good' bye, 좋은 안녕

평소 드라마를 빠짐없이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유명한 드라마 명장면은 꽤 알고 있다. 짧은 영상으로 편집된 명장면은 가볍게 보기 좋기 때문이다. 그중에 재미있게 본 장면은 드라마 「감자별」에서 노수영 역이 본인의 아버지 회사 인턴으로 근무하는 에피소드이다. 노수영의 아버지 노수동은 (주)콩콩이라는 회사의 설립자이다. (주)콩콩이라는 회사는 시대를 풍미했던 놀잇감 회사이다. 즉 꽤 큰 기업이라는 콘셉트이다. 큰 기업의 딸이 회사 사람들 몰래 인턴으로 입사하여 겪는 에피소드들의 웃음 포인트는 사회생활이라곤 해본 적 없는 노수영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행동하는 데에 있다.


사실 그 행동들은 예의와는 거리가 멀다. 현 대표직에 있는 자신의 오빠의 연설을 큰 소리로 비웃고, 상사에게 할 말은 해야겠다며 큰소리치며, 제 집인 양 행동하기 때문이다. 감독과 배우의 센스로 희극이 되었지만 내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머리 꽤나 아팠을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는 직함과 자리에 맞지 않는 인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작은 스타트업, 감자별과 같이 가족 회사라면, 본인이 세웠다고 생각하는 회사 대표라면 더더욱 안하무인인 경우가 있다.


일주일 동안 퇴사를 결정을 수리해달라고 부탁한 결과 퇴사를 하게 되었다. 업무 인수인계할 틈 없이 임원진이 결정을 수리해준 다음날이 내 마지막 근무일이 되었다. 인계할 내용을 정리할 새도 없이 교육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을 하고, 고객을 상대하던 중 대표는 내게 다가와 지나가듯 이야기했다.


로시니 님 사직서는 적당한 양식으로 작성해서 내게 메일로 보내세요.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퇴사 과정에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정리할 것은 명확하다. 인수인계 내용, 사용하지 못한 연차, 퇴직금 관련한 내용, 심지어 이전 회사는 주말 및 휴일 근무를 평일 휴무로 대체했기 때문에 소진하지 못한 대체휴무일이 꽤 되었다. 내가 준비해놓은 내용만 이만큼인데 면담 없이, 아무런 정리 없이 사직서 전달로 퇴사를 퉁치려는 대표의 태도가 굉장히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에 맞추어 난 통보하고 돌아선 대표를 불러 세워놓고 내가 정리해야 할 것에 대해 요구했다. 그러자 대표는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관련한 내용은 정리해 사직서와 같이 메일로 공유해달라고 하고 돌아갔다.


퇴사한 이후 두 차례 대표와 통화할 일이 있었다. 대체휴무 및 연차에 대한 수당과 처리에 대한 내용 그리고 퇴직금 수령시기에 대한 내용. 마지막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한 대표 탓을 하니 괜히 억울했던 기억이 있다.


2017년 1월 1일 나는 부모님과 ABC를 오르기 위해 네팔에 있었다. 네팔에는 히말라야를 오르기 위해 많은 한국사람들이 관광을 온다. 수요가 얼마나 많은가 하면,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셰파만 고용하여 '한국 사람'만을 위한 여행사가 있을 정도이다. 나도 그 여행사에서 셰파를 고용하고 등정을 할 준비를 했고, 무사히 그 여행사가 운영하는 호텔에 돌아와 삼겹살로 ABC 등정을 축하하며 피로를 씻었다. 숙박업, 한식 레스토랑, 등산을 위한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한국 사람이었다. 썩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와 안전한 등산을 마치고 만족스러운 저녁식사와 따뜻한 샤워 후 떠나는 우리에게 멋진 미소를 보여주었다. 사실 지불한 만큼의 서비스를 받았지만 처음과 끝의 그 멋진 미소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고, 누군가 ABC를 오른다면 그곳을 추천해주고 싶다.


'처음과 끝' 이 단어의 나열이 주는 울림이 있다. 뭔가 형용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 같다. 두 사장님의 사례를 비추어보면 그 중요함은 더더욱 명확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을 아직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나의 여러 정의 중 하나는 「좋은 인상으로 여운을 주는 사람」이다. 나는 나만의 멋진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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