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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Aug 21. 2021

걷자, 비가 오니까

오늘의 비 예보는 100% 였다. 난 기상청의 슈퍼컴퓨터가 처리하는 정보와 중첩된 계산의 분량이 늘상 궁금하다. 도대체 어떤 비상한 능력을 가져야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자고 일어나면 비가 올 것이라 '예상' 할 수 있을까? 찾아보니 그들의 이름은 '우리''누리''미리'(4호기) '두루', '마루', '구루'(5호기) 랜다. 이 친구들은 아마 지금도 차디찬 냉각팬의 바람에 뒷골을 식히며 끙끙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끔 예보가 미덥지 않더라도 좀 용서해주자. 비 좀 맞으면 어때! 저렇게 고생하는데.


누리와 두루를 생각해주는 척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 난 그들의 노고가 없더라도 비 맞는 것을 용서할 수 있다. 사실 '용서'라기보다는 좋아한다. 매우. 비 오는 날의 냄새가 좋고, 소리가 좋고, 흐리고 습한 날이 선사하는 하루의 질감이 좋다. 날아갈 듯이 산뜻한 봄날도 좋지만, 미친 듯이 폭우가 내리는 여름날의 질량은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비는 쿤데라의 소설처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이 세상을 적셔, 얼마간의 중력을 부여한다. 그래서 이 세상의 무의미는 흠뻑 젖어가며 유의미가 된다. 폴 버호벤 감독의 「할로우 맨」에서는 투명인간에게 물을 뿌려 그 형상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온다(사실 내가 기억하는 그 장면이 이 영화가 맞는지 모르겠다). 물을 뒤집어쓴 할로우맨처럼 비를 뒤집어쓴 세상도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한다. 물방울이 일으키는 난반사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표면이 돼서 물질들의 경계를 빛낸다. 빛내면서 본연의 실존을 명확히 한다. 저마다 표면에 붙은 빗방울을 통해서 말이다.


몇 년 전 나는 한 지독한 산골짜기에서(친구의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비를 맞은 적이 있었다. 얼마나 쏟아졌던지 숨 쉬기도 벅찼다. 나는 그때 앞으로 내 인생이 이보다 더 충만한 순간은 있기 힘들 것이라는 걸 알았다. 온몸에 도포된 감각 신경이 깨어나는 걸 느꼈다. 나는 살아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몸은 살아있었다.  그 감각은 뭐랄까, 감각의 탄성이라고 할까. 마치 북소리 같은 것이었다. 몸은 둥둥거리며 울렸다. 사르트르 본인이었음이 분명한 '구토'의 앙투안 로캉댕이 음악에서만큼은 구역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꼈다. 그것은 분명한 감각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비 오는 거리를 걸어보자. 어지럽게 널려있던 입간판들과 제 몸이 찢어질 때까지 춤을 춰야만 하는 공기인형들은 모두 저마다의 은신처로 쏙 사라진다. 길 고양이들도 방치된 자동차 밑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도 어느 가게의 어닝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차분하고 진중하다. 그 침묵 같은 빗소리 속을 순례자처럼 걷는다.


한때 불안증이 심했을 때 꽤 고가의 스피커를 구입했었다. 물론 조악하기 짝이 없는 합판으로 구획된 원룸에서 우퍼를 울려대 음악을 들을 순 없었고, 스피커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빗소리를 최대한 생생하기 듣는 것. 빗소리에는 불안을 위무하는 어떤 위력이 있었으니까. 너무 위압적이라 되려 편안해지는 바다 같은 우라-.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우리의 진짜 고향은 바다였다. 도롱뇽과 엇비슷하게 생겼을 당시의 조상님들은 뭍으로 떠나며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을까. 아마 그들은 몰랐겠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그래서 물이 그토록 두려운 동시에 편안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비가 오는 날에는 고향의 감각이 어스레하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비가 오는 날에는 나가서 걸어야 한다. 질주하는 자기 착취의 사회가 둔해지는 광경은 흔치 않으니까. 습기에 젖어 가라앉은 공기가 빈틈없이 몸을 감싸는 편안함을 만끽해야 하니까. 경험해 본 적 없는 먼 과거 고향의 다락방과 같은 퀴퀴한 냄새를 우리는 좋아하니까.


앞으로 일주일 내내 비 예보가 있다. 우리와 마루와 두루와 미리가 머리(정확하게는 '메모리')를 동여 메고 며칠 밤낮을 끙끙대어준 덕이다. 이번 주는 걸을 일이 많겠다. 나는 벌써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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