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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Sep 04. 2021

지금 여행하지 않는 자, 유죄

미리 말하지만, 이 글은 해외여행을 예찬하거나 강요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지금껏 한 번도 한국을 떠나 본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야 딱히 그럴 자격도 못된다. 오히려 마치 관광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줄 마법인 것처럼 굴었던 한때의 사회적 분위기를 나는 좀 싫어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관광이라고 해서 여타 삶의 다른 콘텐츠들에는 없는 신비한 힘 같은 건 없다. 아니, 아마 없는 것 같다. 낯선 나라에 다녀와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얘기하는 친구는 많이 봤지만, 그중에 행동이 바뀐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따라서 바뀌었다는 기분은 단지 휴가의 여운에 불과할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이 글의 제목이 떠나지 않는 사람들을 탓하는 이유는, 사실 이 글은 특정한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인 글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 A-.


A는 브런치를 가끔 본다. 그런데 내가 브런치에 글을 남긴다는 것은 모른다. 따라서 그 친구가 이 글을 실제로 읽게 될 확률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보게 된다면.. 안녕? 나야.


A와 내가 만난 곳은 어느 먼지 구덩이 창고였다. 우리는 일당 11만 원짜리 알바를 하고 있었다. 최저시급의 1.5배에 달하는 일당에 혹했었지만 노동은 상당히 가혹했다. 손바닥도 아니고 손가락 끝에 물집이 잡힌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루의 일이 끝나갈 때쯤, 내일도 나올 사람이 있냐는 실장의 질문에 슬며시 손을 든 건 A와 나뿐이었다. 다음 날부터 우리는 친구 비슷한 사이가 됐다.


언젠가 그가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을 때 나는 좀 당황했었다. 뭐랄까, A는 열 마디 말할 시간에 몸부터 놀리는 스타일이랄까. '아~ 00 하고 싶다~' 하는 식의 뜬구름 잡는 이야기와는 거리가 좀 먼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을 다녀야 했고, 돈 나올 구석이라고는 건강한 육체 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무슨 동아리인지 모임인지에 갔다가 여권이 없다고 무시 아닌 무시(?)를 당했던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맘에 드는 여자라도 있었나 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일단 비행기 표부터 끊으라고, 질러놓고 보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바람을 넣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비슷한 말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 강릉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키는 컸지만 얼굴은 약간 위아래로 짜부라트린 톰 히들스턴(비하는 아니다)을 닮았던. 뭐라더라, 요약하자면 여행을 다녀오면 '인생'을 배울 수 있으며, 여행지에서는 온갖 문제들에 마주치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면서 강해진다는 식이었다. 부탁한 적 없는 훈계 끝에, 본인은 현재 모 대기업에 재직 중이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그는 잠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유럽 여행 코스를 강의했다(물론 이도 부탁한 적은 없었다).


관광객이 마주치는 진짜 '문제'들을 해결하는 건 대사관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 그가 다녀온 곳이 소말리아나 모잠비크가 아니라면 말이다. 톰 히들스턴이 말했던 문제라는 게 구체적으로 뭔지 듣지 못했지만, 대충 동물원에 가면 자연의 무서움을 배울 수 있다는 식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들었다.


여하튼, A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비행기 표부터 끊어버렸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내가 알기론 그 과정에서 생활비를 소진하고도 상당한 빚을 졌다. 우리가 세네 달 동안 쉬지 않고 먼지 창고를 견뎌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가 유럽에서 배워온 게 무엇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후기에 따르면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의 여행 경력을 전시하는 것으로 하룻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A는 그곳에서도 상처를 받았나보다. 그 이후로 친구는 다시 여행을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러해서, 떠나지 않는 자들은 유죄다. 한 번도 진짜 여행을 해 본 적 없는, 이를테면 대기업 톰 히들스턴 같은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숙함은 타인에게 상처를 남긴다. 내 생각에 그는 단 한 번도 용기 있게 떠나 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안락한 것들에게서 말이다. 그는 단 한 번도 먼지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본 적이 없다. 다만 그가 뛰어들었던 곳은, 문명과 대사관과 관광 소비자라는 이름의 볼풀장이었을 따름이다. 그는 그곳이 폭풍우 치는 대양이라고 여겼겠지만 말이다.


그의 말이 맞는 부분도 있었다. 문제 앞에 절망해본 자들만이 강해진다. 단지 고난이라는 유령은 별 달린 호텔이 아닌 혼자 남겨진 새벽의 단칸방에서 나타난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자기 파괴는 놀랍게도 당신의 먼지 구덩이 작은 방에서만 행해질 수 있다.


한때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졌던 여행 열풍은 어쩌면 일종의 회피 반응이다. 전체적으로 고도로 탈진한, 그러나 부유한 사회인 대한민국은 어떻게든 탈출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음주가무의 민족이고, 게임의 민족이고, 여행의 민족 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그런 광고 카피가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것은 용기가 아니다. 떠나는 것도 아니다. 정당한 보상 같은 것도 아니다. 일시적인 도피일 뿐이다. 게임 중독은 사실 게임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을 회피하는 것에 중독되는 것이다. 여행 중독 사회라고 다를까?


우리는 도피자가 아니라 여행자가 돼야 한다. 삶은 도피해야 될 무엇이 아니라 여행해야 될 무엇인 것이다.


새벽 시장에 나가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곳에는 누구보다 빨리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 그 어떤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삶들이 있다. 성전(聖殿)은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아닌 동자동 쪽방촌에 있고, 그랜드 캐니언보다 웅장한 공기는 해 뜨는 길거리에 있다.


매일 열던 문을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열 때, 비로소 우리는 둥지를 떠나게 된다.


지친 밤마다 망망대해 같은 외로움을 각오하며 좁은 방문을 여는 사람들, 그러니까 내 친구 A. 당신들은 부끄러울 거 전혀 없다. 용기를 증명하는 건 수첩에 그려진 스탬프가 아니라 손에 박힌 굳은살이니까.


매일 아침 극점 같이 차가운 냉동창고 속으로, 적도보다 뜨거운 땡볕 속으로 덤덤히 떠나는 당신들,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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