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일주일
프라하에서의 인턴을 끝내고 파리로 향했다.
집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파리 인턴 시작날에 맞추어 급하게 일주일 단기 임대를 했다.
큰 캐리어1개, 작은 캐리어1개, 백팩 1개.
우버를 타고 비가 오는 날 도착해서 사람을 만났고 집 비짓을 두번이나 했다.
집도 너무 낯설고 내가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던 것은 의아하게도 불어였다. 불어 때문에 낯설었던 내가 불어를 할 줄 알아 편안함을 느끼다니 참 희한하다.
바로 월요일에 출근을 했고 직장은 파리를 기반으로 라이프스타일 오브제를 다루는 브랜드이다. 내가 담당하는 일은 오브제 제작 보조 및 E-Commerce 지원. 디자인과는 다른 분야이지만 새롭게 인턴으로써 경험해보고 싶었던게 가장 크다. 브랜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고 오브제가 만들어져서 주문대로 배송까지 가는 그 시스템을 항상 들어만 봤지 직접 참여해본 적은 없으니까.
그러나 직장은 항상 기대한 것과 같을 수 없는 법. 처음엔 다 신기하고 재밌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이 되었다. 한국인들이 많았고 이 회사에 주체적인 일원이 된다기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시스템에 한명으로 돌아가겠다는 직감이 첫날 집에 가는길에 들었다. 프랑스에서 인턴에게 주는 시급이 따로 있다. 인턴의 최저시급은 사회의 최저시급의 1/3이다. 인턴으로 6개월 일하게 되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파트타이머와 다른게 무엇일까. 사람들도 좋고 사실 일도 새로운 분야라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사람은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붓는 그 지점이 필요하니까. 여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치만 난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하고 싶다. 그래서 나왔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기회일수도 많은 걸 배우는 자리일수도 있겠지만 난 오히려 나의 방향성과 다른 자리임을 알았다. 그 방향성의 결이 비슷할때 인턴으로써 올인하고 집중하고 싶지 억지로, 굳이 인턴으로 있어야 할까에는 아니 라는 답변이 나왔다. 바로 용기를 내고 직감에 반응했던 나에게 고맙다. 다행히 퇴사 이후에 바로 집을 계약해서 지금은 집 문제가 해결되었다. 하나가 해결되면 사람은 간사하게 또 나에게 없는 것에 집중한다. 지금은 뭐 학생백수라는 사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를 훈련할 수 있어 감사하다. 백수든 좋은 기업 취업이든. 일시적으로 기분은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건 평소에 나를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깥 요인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의 루틴을 지키는 것. 그렇게 멘탈은 강해지는 것 아닐까.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곳이 사라졌지만 공허하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다시 찾으면 되니까. 나에 대해 더 알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게 어딨을까.
나는 문제해결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 팀으로 으쌰으쌰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을 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재밌다. 이미 정해진 틀에서 반복적으로 일을 하는건 아르바이트로 재미있게 할 수 있겠지만 내 업으로 삼을게 못된다는 걸 배웠다.
하루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똑같은 하루인데 나의 관점에 따라 빨리 흘러가길 바라기도 하고 시간이 너무 많아 지루하기도 하고 시간이 소중하기도 하고. 퇴사하지 않았다면 매일 출근준비를 하고 8시간을 밖에서 보내 지친 상태로 집에서 포근한 저녁을 맞이하겠지. 그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투자할 수 있으니 감사와 지혜로 잘 써보자. 나는 이런상황에 꼭 기한을 둔다. 하염없이 흘러가지 않도록 셋팅값을 부여하는데 새로운 인턴이나, 파트타이머 + 프리랜서나 늦어도 1월초에 시작하도록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