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머리 외국인 : 우리는 같은 '행복'을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친숙한 사물엔 주목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문학가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한 말이다. 시클롭스키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Defamilarization)라는 문학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들에 따르면 문학의 목적은 관습에 무디어지는 것 을 경계하고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드는 것, 그러한 낯설게 하기를 통해 지각의 과정을 더욱 어렵고 오래 걸리 게 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는 '이상하게 만들기(make strange)'의 일종으로 문학뿐 아니라 예술의 기법으로 두루 쓰이는 용어다. 독자는 '낯설게 하기'의 과정을 통해 너무 친숙한 나머지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삶의 진실 들을 새롭게 대면하게 된다.
( 출처 : 하단 브런치 )
내가 르네 마그리트를 좋아하는 이유도, 시를 쓰는 이유도, 구체적인 묘사글을 쓰는 것도, 단어의 의미를 계속 곱씹는 것도 모두 ‘낯섦’과 ‘또 다른 것’이 주는 재미에서 비롯된다. 언어학과 사회학 모두 흥미롭지만, 그중에서도 언어학이 특히 재미있다.
겨우 소쉬르의 책을 읽어보고, 꽃말과 언어에 관한 작업을 몇 번 해본 것, 그리고 세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정도지만, 언어가 형성되는 과정과 단어의 사전적·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는 일이 흥미롭다. 그리고 그 차이가 예민하게 분별된다.
언어는 곧 그 나라의 문화와 사고를 담고 있기에, 어떤 단어는 특정 문화에만 존재한다. 단순히 단어의 유무가 아니라, '개념의 유무'로 느껴진다. 사람은 단어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구성하기 때문에, 어떤 단어가 존재하지 않으면 비슷한 의미의 다른 단어를 찾아 어떻게든 생각을 표현해낸다.
그리고 역시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행복’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키워드다. 그런데 이 ‘행복’이라는 단어 하나가 왠지 모르게 오만해 보인다. 너무 많은 권한과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우리가 평소 말하는 “아, 행복해”, 강연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이들이 말하는 ‘행복’,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 속의 행복, 그리고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같은 질문 속의 ‘행복’. 이 모든 문장에서 쓰이는 ‘행복’은 과연 같은 의미일까? 사전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의미는 다르다. 그 경계를 제대로 분별하지 않으면 혼란이 온다. 너무 많은 것을 포괄하는 이 단어가, 어느 순간부터 밉게 느껴진다.
사람마다 교육 환경도 다르고 성장 배경도 다른데, 우리는 정말 같은 의미로 단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대화를 하다 보면, 지금 이 단어가 우리 둘에게 같은 의미로 작동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어떤 의미와 의도로 이 단어를 썼고, 상대방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우리는 정말로 생각을 잘 교환하고 있는 걸까?
여담이지만, 헬로톡에서 알게 된 한-영 스터디 메이트인 미국인 친구와 첫 통화를 하던 날, 그가 나에게 “혹시 너 시 써?”라고 물었다. 내가 놀라서 “왜?”라고 하자, 그는 “너는 단어들을 소중히 다루는 것 같고, 그 의미를 자꾸 새롭게 말해주는 느낌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나킴 님께 온라인 면담을 부탁드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분도 내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어떤 감각과 애정을 느낀다고 해주셨다.
예술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던 내가 갑작스럽게 유학을 결심한 것도, 어쩌면 '자기만의 시각, 자기만의 언어’를 만든다는 그 사실에 무의식적으로 매료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 단락 출처 :
https://brunch.co.kr/@ihearyou/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