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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Mar 16. 2019

아모르 파티

Amor Fati


아버지가 죽고 그의 삶은 변했다. 평생 가난한 목사로 살아왔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거운 을 지고 묵묵히 사막을 걷는 지친 낙타처럼 한 번도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듯 보였다. 나중에 은퇴하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었지만 정작 은퇴 후 아버지의 지친 육신은 그만 멈추어 버렸다. 얼마 후 어머니도 죽고 그는 태평양을 건너 이민자가 되었다. 부모가 없는 고국 땅을 떠나 올 때 "이 땅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 그를 공중에서 맞이한 후 저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며 의미다"라고 했던 목사 아버지의 가르침도 태평양 바다에 묻었다. 그의 제자들에게 했던 예수의 약속이 2천 년이나 지났는데도 그 약속을 평생 굳게 믿고 일평생 낙타의 삶을 살다가 죽은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큰 허상에 기반한 삶이었는지 그는 40세가 되어서 알게 된 것이다.


아내가 죽고 나는 정신이 들었다. 평생을 같이 할 것이라고 믿었던 아내가 현대 의학으론 희망이 없다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나와 아내는 문둥병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렸다는 예수의 치유능력을 굳게 믿었다. 아내는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자신도 절대 죽지 않고 살 것이라고 믿었으므로 지나온 삶의 성찰도 나와의 진지한 대화도 없이 그저 매일의 평범한 삶을 행복한 듯 이어갔다. 의사는 3개월 예후 진단을 내렸지만 우리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처럼 치유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3개월 후 아내는 죽었다. 난 믿음의 실패자가 되어서야 그동안 나와 아내가 믿음이란 허구의 황홀감에 빠져 살았다는 것을 알았고 나의 가슴엔 시작도 하지 못한 이별의 대화가 슬픔으로 남았다.


69세의 이민자였던 그는 죽음을 택했다. 이민 사회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살아오던 그는 티브이 코리아 위성방송으로 하루 종일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여러 날들을  눈물로 보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은 허무감에 빠져들었다. 많은 이민자들이 갖고 있는 허망한 믿음도 잘 살아보자는 세상의 소망도 치열하게 지켜야 할 가족의 사랑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그의 삶은 그저 "헛되고 헛되고 헛된" 무의미하고 허무한 그 무엇 일 뿐이었다. 몇 날을 고민했지만 살아야 할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한 그는 어두운 차고에서 목을 맸다. 그러자 이국 땅에 홀로 남겨진 그의 아내는 삶의 유일한 의미였던 남편을 위한 밥 짓기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러다가 제대로 먹지 못해 그녀의 간장은 기능을 점점 상실했고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신의 영광을 위해 태어나 하늘의 뜻에 따라 살다가 영원한 낙원으로 가는 천상의 가치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의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순간까지 끝없이 반복되는 수고와 근심의 수레바퀴 운명을 우리는 어떻게 견뎌내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른 새벽, 잠이 깨면 지나온 세월의 기억들이 줄지어 머릿속을 채우고 또 살아가야 할 날에 대한 고뇌가 동이 틀 때까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침울한 현실과 어두운 미래를 벗어나고 싶어 무지개 빛으로 밝게 보이던 약속의 땅으로 이민을 왔지만 여전히 마음속은 어둡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던 그 69세의 이민자처럼 결국은 그리 죽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가야 할 길이란 말인가? 그만 우울한 생각을 멈추고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집 밖으로 나간다.


눈을 들어 밝아오는 먼 하늘을 쳐다보고 프렌지페니의 향기를 품은 아침 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세상의 만물들이 끝없이 반복되는 생성과 소멸 가운데 주어진 생을 이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동이 터 오면 새들은 노래하고 닭은 홰를 치면서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나뭇잎은 햇빛을 향해 즐거워 반짝거리고 꽃은 속살을 펼쳐 따스한 빛을 안으로 맞아들인다. 그리고 해가 지면 새들은 날개를 접고 어둠과 하나 되어 잠이 들고 들은 꽃잎을 접고  고요함 속에서 새로운 태양이 떠 오르길 기다릴 것이다.


집을 나와 걷다 보니 눈앞에 카슬 힐(Castle Hill) 바위산이  보이고 사람들이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나도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며 내 십자가를 떠올려 본다.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예수가 말한다. 나는 내 죽음의 길을 기꺼이 걸어간다. 죽음이 나의 운명이고 또 너의 운명이기도 하다. 죽음의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네 삶에 주어진 너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라. 그것이 구원의 길이다. 영원으로부터 와서 영원으로 잠들기 전 너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받아들여라. 유한한 너의 삶을 인정하고 오늘의 삶을 책임 있게 살아라. 네 십자가를 없애 줄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천상의 가치를 설교하는 자들의 말에 속지 말고 오늘 너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어도 좋을 만큼 그렇게 살아라.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이라고 속삭이는 시인의 말에도 속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최고로 살아라. 주어진 삶의 고통을 두려워 말고 운명을 사랑하라. 그러면 춤을 출 수 있고 웃을 수 있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나의 두 다리는 힘이 넘치고 머릿속은 번개를 맞은 듯 반짝인다.  시간 만에 도착한 카슬 힐 정상의 시야는 사방이 막힘이 없고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예수가 다시 나에게 속삭인다.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예속되지 말고 자유인이 되어라. 인식의 지평을 끊임없이 넓혀 모든 예속으로부터 벗어나 진리로 자유케 되어라. 그 일을 못하면 죽는 줄 알고 평생 한 공장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 노동자처럼 살지 말아라. 너는 결코 노예들의 행복을 부러워 말고 너를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어떤 주의나 행동에는 단호하게 No라고 외쳐라.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주도적이 되어라. 오늘 또 세상이 새롭게 시작되었으니 두려워 말고 새로운 삶을 살아라. 네 삶의 주인은 너 자신이다. 자유인으로 당당히 가라. 이제 너는 자유롭게 춤을 추고 웃을 수 있다.


나는 내일도 이불을 박차고 새로운 세상을 맞으러 동트는 길로 나서리다. 걸으며 생각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순간을 살 것이다. 삶은 나의 놀이터가 되고 천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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