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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관 Jul 17. 2022

나의 행복한 시간

3개월 만의 재회

   새벽 1시, 3개월 만에 집에 돌아왔다. 차를 길가에 조용히 주차해놓고 귀가 예민한 아내가 깨지 않도록 현관문 번호를 천천히 누르고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와 빈방으로 들어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작은 소리에도 잠이 깨는 아내는 며칠째 기침으로 잠을 못 자서인지 내가 온 것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다. 아내는 내가 오는 줄 모르고 있다. 아직 500km를 더 가야 하니 하룻밤 길가에서 자고 갈 테니 기다리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일하기 위해 남의 집을 전전하며 방 한 칸 얻어 잠을 자고 때론 방을 못 구해 숲 속의 무료 캠핑장에서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스웩 텐트에서 하룻밤 보내기도 했다. 둘째 딸이 예정보다 일찍 아이를 출산했단 소식을 2000km 떨어진 곳에서 듣고 바로 출발해 둘째 날은 1200km를 운전해 집에 도착한 것이다. 아내는 내가 다음날 도착하는 줄 알고 있지만 밤새 운전해 새벽 1시에 도착한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가까이 살고 있는 첫째 딸이 5살짜리 손녀와 3살 된 손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 먼저 손녀가 급하게 뛰어와 나에게 안긴다. 손자는 아직 잠이 덜 깨서인지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다. 집으로 들어와 아침을 같이 먹고 난 후 손주들 둘이 나에게 한꺼번에 안겨 목을 껴안고 서로 볼을 부비며 뽀뽀 세례를 퍼 붙는다. 할아버지에게 격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아이들을 딸과 아내는 웃으면서 바라보고 대화를 하고 있다.


   오늘 밤은 손녀와 함께 자는 날이다. 서로 할아버지와 자겠다고 하여 먼저 누나가 같이 자고 다음 날은 동생이 자기로 했다. 두 살 베기 넷째 손주는 할아버지와 코 인사를 하고 안기기는 좋아하지만 잠은 할머니하고 자겠다고 한다. 하지만 누나와 형은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하여 꼭 나와 같이 자려고 한다. 손녀와 함께 침대에 누워 볼을 한참 부비고 뽀뽀를 한 후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잠든 아이의 작은 손과 발을 만져보노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올라옴을 느낀다.


   내가 많이 사랑했던 첫 손주는 어느덧 여덟 살이 되어 두 달 전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에게 가 있다. 이 아이도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하고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나에게 달려와 안겨서 동생인 손녀가 오빠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먼저 안기지 못한다고 질투를 했었다. 그런데 이번엔 오랜만에 왔는데도 함께 하지 못하게 되니 그동안 나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던 첫 손주가 그리워진다. 그런데 딸이 3개월 후에 한국에 들어간다고 한다. 지금 가면 꽤 오랫동안 이런 아이들의 순수하고 진한 사랑을 받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아이들은 금방 자라고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추억들은 잊어버리겠지만 그들의 무의식 속에서 사람에 대한 신뢰와 사랑으로 자리해 주길 바랄 뿐이다.


   손주들과 사랑을 나눌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벌써 그립다. 내가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행복이 무엇일까? 이런 손주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세상에 무엇이 또 있을까? 좋은 집도 예쁜 농장도 그들이 와서 뛰어놀 때 의미가 살아날 뿐이다. 첫째 딸 손주들이 한국에 가도 둘째 딸 손주 둘이 가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있어 한동안은 덜 쓸쓸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오랫동안 내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기는 손주들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와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집과 농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아주 행복한 일이고 그 시간이 나의 가장 행복한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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