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NK

버려진 것들 속에서도 나를 볼 수 있게 됐다.

by 서리달

나는 아직도 어릴 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짚어준 오늘 아래 나란 놈은: 다르게 볼 수 없는 ‘낡은 것’이 돼있었다. 내 마음이 여전하다고 해서 언제나 그때만 같을 순 없었다. 시간은 게으른 나와는 다르게 착실했고, 꿈과 추억은 같은 뜻을 머금고 있었다.


어릴 적에 바라보던 꿈의 뜻이 어땠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마는 더 이상 애가 아니게 된 후로부터 꿈이란 그랬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들의 반복 혹은 미화가 흔히들 일컫는 꿈이었다.


놓아줄 때가 됐음에도 차마 놓아주지 못한 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꿈과 추억은 알고 보니 같은 뜻을 머금고 있었다. 덧붙여서 나란 놈은: 어릴 적부터 여태까지 줄곧 나인 채로 살아왔었지만, 제법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때의 나와 오늘 아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도 어릴 적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시간이 짚어준 오늘 아래 나란 놈은: 다르게 볼 수 없는 ‘낡은 것’이 돼있었다.


내 마음이 여전하다고 해서 언제나 그때만 같을 순 없는 듯했다. 시간은 게으른 나와는 다르게 착실했다. 꿈은 내일이라든가 미래, 동경보다는 추억이라든지 어제 또는 과거와 더욱 친밀했다. 어릴 적에 바라보던 꿈의 뜻이 어땠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마는 더 이상 애가 아니게 된 후로부터 꿈이란 그랬다.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상황들의 반복 혹은 미화가 흔히들 일컫는 꿈이었다. 놓아줄 때가 됐음에도 차마 놓아주지 못한 채, 끊임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그런 것’이었다.


꿈과 추억은 알고 보니

같은 뜻을 머금고 있었다.






다만 아름답고 싶었다는 어느 시인은 이제 먼 추억이 됐다. 어쩌면 추억조차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이라고 하면 이른바 떠올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어줄 때나 비로소 이뤄지는 것이기도 하니까. 다만 잊힌 사람이 돼버렸는지도 모르지.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에 그의 꿈은 녹아들 수 없었던 탓이리라.


그래도 아직 그 시인을 기억하고 거듭 읽는 내가 있고, 또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몇몇 사람들에게만큼은 추억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름답고 싶었다는 그의 꿈이 늦게나마 이뤄졌다고는 역시 못하겠는데, 적어도 완벽하게 잊히진 않았으니,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고 싶은 팬심이 깊다.

하여튼 세상이라는 게 늘 그랬다.

방향성이 다르면 기회를 내어주지 않았다.


대단한 꿈이 됐든지 소박한 꿈이 됐든지 간에,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과 다르다면 그저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아닌 것들에게 세상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이었지. 하루마다 가까워지려 부단히 애쓰지만 도무지 가까워지질 않는 거리감.


저 세상에 녹아들어야만 비로소 이뤄지는 꿈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반복되는 건 박탈과 소외였던 탓에 꿈은: 나만 기억하는 추억이 돼버리고 마는 애연哀然. 다만 아름답고 싶었다는 어느 시인은 그토록 애연한 삶을 걸었다. 배척을 일삼는 세상 아래 아닌 것으로 머물다가 떠났다. 세상은 이제 어느 시인을 잊었고,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어느 시인의 거꾸로 선 꿈*을 추억한다. 놓아줄 때가 됐음에도 차마 놓아주지 못한 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꿈과 추억은 알고 보니

같은 뜻을 머금고 있었다.






슬슬 놓아줄 때가 됐음에도 차마 놓아주지 못한 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덕분에 어제보다 더욱 추억스러운 모양, 빛깔이 돼버린 꿈이란 것쯤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 어릴 적에 바라봤던 꿈이 이러했는지, 이렇게 돼버릴 수밖에 없는 순리였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마는: 이제 다른 길이 없다.


처지는 이러면 이럴수록 자꾸만 바깥으로 옮겨지는데 안쪽에 머물러봤자, 가운데에 머물 수 없음을 깨단했으니까. 바깥으로 옮겨지는 처지조차도 긍정해 버리기로 작정했다. 아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던 시인의 행이 떠올랐고, 나는 그 의미를 이제야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낡은 것조차 되지 못할 아닌 것이 된 요즘, 지금에 와서야 나는 버려진 것들 속에서도 나를 볼 수 있게 됐지. 그럼에도 나아졌다고는 말하지 못할 처지란 게 아팠다. 서글펐다.


저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과 내가 꾸는 꿈의 방향은 너무나도 달랐고, 다른 것은 곧 아닌 것이었다. 세상이라는 게 늘 그랬다. 방향성이 다르면 기회를 내어주지 않았다. 대단한 꿈이 됐든지 소박한 꿈이 됐든지 간에,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과 다르다면 그저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아닌 것들에게 세상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이었지.


하루마다 가까워지려 부단히 애쓰지만 도무지 가까워지질 않는 거리감. 저 세상에 녹아들어야만 비로소 이뤄지는 꿈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반복되는 건 박탈과 소외였던 탓에 꿈은: 나만 기억하는 추억이 돼버리고 마는 애연哀然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슬슬 놓아줄 때가 됐음에도 차마 놓아주지 못한 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


덕분에 어제보다 더욱 추억스러운 모양, 빛깔이 돼버린 꿈이란 것쯤은 알고 있지만 버려진 쓰레기조차 한때는 ‘필요’였음을 깨단했으니까. 자꾸만 바깥으로 옮겨지는 처지조차도 긍정해 버리기로 작정했다.


낡은 것조차 되지 못할 아닌 것이 된 요즘,

지금에 와서야 나는

버려진 것들 속에서도 나를 볼 수 있게 됐다.



*진이정 시집, 거꾸로 선 꿈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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