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During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신앙을 거듭 닦아내 본다.

by 서리달

날씨가 화창해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바라봤다. 보이는 것이라고 해봤자 시야를 가로막는 하얀색 교회와 평수가 작은 하늘, 그리고 답답함의 상징 같은 콘크리트 건물들밖에 없지마는: 어쨌든 간에 기분이라도 내보겠다는 심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도대체가 이딴 경치로 당최 무슨 기분을 낼 수 있겠는지. 잠자코 바라볼수록 담배밖에 떠오르지 않는 창밖을 보다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조금만 열어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담배연기가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만 열어두는 게 좋을 창밖의 경치였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딴 경치마저 그렇게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이럭저럭 잘 정비됐고 잘 꾸며진 동네이긴 한데_ 잠자코 바라볼 때마다 느껴지는 거라곤 온통 ‘배척’밖에 없어서 그런 걸까. ‘돌봄’의 상징 같은 교회를 바라보다가, 저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초등학교를 바라봐도 내 기분은 환기되지 않았다.


더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처지가 된 나라서 그런 거겠지. 그러고 보면 나의 사고회로는 어떤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안쪽에서부터 찾으려는 껄끄러운 버릇으로 작동하는 구닥다리였다.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꽤나 평수가 작아져버린 하늘을 바라봤다. 조각구름 하나도 없이 그저 맑은 파랑이었다. 어쩌면 파랑의 상징은 바다보다는 하늘이 더 올바를지도 모르겠다는 가설을 세웠는데, 담뱃재를 펴 바른 듯한 어떤 날의 하늘이 떠올라서 뭉개버렸다.


어쨌든 간에 기분이라도 내보겠다는 심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오후 4시 14분: 도대체가 이딴 경치로 당최 무슨 기분을 낼 수 있겠는지. 잠자코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담배밖에 떠오르지 않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조금만 열어두는 게 낫겠다고 결심했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딴 경치마저 그렇게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혹은 믿음 따위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그저 어른스럽기만 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마다, 출처가 불분명한 추위를 느꼈던 것도 아마 이런 뜻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도 모르지. 하여튼 성장이란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단한 뜻이란 이러했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혹은 믿음 따위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더 이상 사람에게 환상을 품지 않는 것,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 것, 오래토록 그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그럭저럭 성장을 이뤄낸 후에야 붙여지는 ‘딱지’ 같은 어른스러움은: 사람에게 나만 아는 ‘무언가’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붙여지는 것이었고, 이를 깨단한 어떤 날로부터 더는 그것을 소원하지 않게 됐다.


물론 이게 정답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는 못하겠다. 원체 구닥다리처럼 작동하는 사고회로를 끊임없이, 그 어떤 요령도 없이 그러면 그런 만큼 낭비하듯 굴려대다가 도출해 낸 결론이니까. 정답이라고는 도무지 말할 수 없을 것 같고, 이쯤에서 그냥 사람의 생각엔 정답도 오답도 없단 변명이나 덧붙여둘 뿐이다.


더 이상 사람에게 환상을 품지 않는 것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 것과 오래토록

그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


하여튼 성장이란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면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깨단한 뜻이란 이러했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환상이나 기대 혹은 믿음 따위가 줄어든다는 뜻이었다.


그저 어른스럽기만 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마다, 출처가 불분명한 추위를 느꼈던 것도 이런 뜻에서 비롯된 것이었지. 요즘은 그런 추위를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는 거울이나, 내가 찍혀있는 사진을 볼 적에 자주 느끼곤 한다. 그러니까, 과거 어느 때보다는 어른스러워진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내가 이해하고 있는 뜻을 내게 적용할 때마다, 그렇게 좋은 건 또 아닌 것 같단 기분이 들어 몇 모금 씁쓸해지곤 합니다.


더 이상 사람에게 환상을 품지 않는 것, 이러저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는 것, 오래토록 그러할 수 있다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 사람으로 살아가며 성장을 이뤄낸 후에야 붙여지는 ‘딱지’ 같은 어른스러움은: 사람에게 나만 아는 ‘무언가’를 부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붙여지는 것이었고, 이를 깨단한 어떤 날로부터 더는 그것을 소원하지 않게 됐는데_


어느새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돼있었다.






메시지 알림은 모두 꺼둔 핸드폰으로

나흘 전에 받은 DM에 답장을 보내고


조만간 답장이 올 거라고 신앙한다. 꾸미는 취미 없어서 밋밋하게 넘겨대는 달력을 힐끔 흘겨봤다. 지난주에 잡았던 약속이 이제 딱 일주일 남았다는 사실을 깨단하는 저녁. 분위기가 괜찮은 카페를 미리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해 보다가 페이드아웃. 아직 일주일이나 남은 약속이라며 미뤄두고서, 오늘의 한 끼는 무엇으로 먹어야 좋겠는지 고민한다.


김치찌개가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제 먹었다. 늘 같은 것만 먹는다고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뭔가 좀 다른 게 좋겠지. 제육볶음도 나쁘지 않을 텐데 기름진 게 들어갈 기분이 아니라서 문제야 문제. 배달음식은 어떨지 짧게 생각해 봤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시원찮은 일상이라도 한 끼만큼은, 제대로 먹어야만 한다는 고집이 족쇄 같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까, 일주일이나 남은 약속의 주인공은 내게 맛집과 카페를 맡겼는데 큰일이다.


커피는 보통 직접 내려먹지,

식사도 직접 해 먹어야만 하는 나란 놈은:


내가 사는 동네가 어떤 동네인지도 모르고 사는 바깥사람이었다. 메시지 알림은 모두 꺼둔 핸드폰으로 대뜸 근처에 있는 맛집과 카페를 검색한다. 어떻게 봐도 광고 같은 추천과 목록들이라 한숨만 아홉 번 뱉었다.


다 모르겠다는 식으로 질끈 깨무는 담배 한 개비. 재떨이에서는 아까 태우고 던져 넣은 꽁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 오늘의 한 끼는 아직도 정해지지 않았다. 달력을 힐끔 흘겨봤다. 제일 위에 커다란 숫자가 열두 번째 달을 일러주는데_ 새해라는 말이 자꾸만 낯설어지는 중이다. 당장 마주하고 있는 오늘이 이토록 뒤죽박죽인데 새해는 무슨 새해.


메시지 알림은 모두 꺼둔 핸드폰으로 지난달에 받은 DM에 하트를 누르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신앙을 거듭 닦아내 본다. 그나저나 오늘의 한 끼는 무엇으로 먹어야 좋겠는지 마저 고민해 보는데 영 모르겠다.


김치찌개가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제 먹었다. 늘 같은 것만 먹는다고 문제가 될 건 없겠지만 뭔가 좀 다른 게 좋겠지. 제육볶음도 나쁘지 않을 텐데 기름진 게 들어갈 기분이 아니라서 문제야 문제. 배달음식은 어떨지 짧게 생각해 봤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시원찮은 일상이라도 한 끼만큼은, 제대로 먹어야만 한다는 고집이 족쇄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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