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

나의 일상은 네모와 잿빛 혹은 그늘 그리고,

by 서리달

내 마음이 그러하다고 해서 처해있는 처지라는 게 마음처럼 풀리거나 하진 않았다. 내가 바라던 것으로부터 반대로 가지 않는 것. 이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발음해도 좋으리만치 알 수 없는 방향으로만 흘러가버리는 게 처지였다.


결국엔 내가 해왔던 만큼 그만큼 지나간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게, 처지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말의 진위가 의심스러워지는 지경이 내가 처한 처지였다. 웬만하면 잘 풀리기를 바라고 부디 그러하길 바라며 살아왔건만 처지는 그게 아니었다. 내 마음이 그러하다고 해서 처해있는 처지라는 게 마음처럼 풀리거나 하진 않았다.


반대 또는 예상외, 매번 그런 쪽으로만 흘러가다가 어쩌다 한 번. 마음처럼 풀리곤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종의 미끼 같은 느낌이었지. 마음처럼 풀리는 듯해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면, 처지라는 건 언제나 반대 또는 예상외로 튀어나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이제는 원했던 것의 반대만 아니라면 그럭저럭 다행이라고 발음하며 안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됐는데, 이런 식으로 적응하고 이런 식으로 안도해도 괜찮은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결국엔 내가 해왔던 만큼 그만큼 지나간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게, 처지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런 말의 진위가 의심스러워지는 지경이 내가 처한 처지였다.


덕분에 요즘에는 아주 꼬여가는 처지가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며 웃을 줄 알게 됐다. 물론 그런 웃음을 두고서 진실로 웃었다고 할 수 있겠는지, 딱 잘라서 정의하지는 못하겠는데 어쨌든:


수지타산이 박살 나버린 듯한

처지에도 나쁘지 않다고 말해보는 요즘이다.


이런 식으로 적응하고 이런 식으로 안도해도 괜찮은 건지, 헷갈리는 건 여전하지만 다른 처세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으니까. 요즘에는 아주 꼬여가는 처지가 아니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며 웃을 줄 알게 됐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명작이었다. 누군가의 일상은 꼭 잘 만들어진 영화 같은 연출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일상은 기승전결이 매끄러운 소설 같았다. 나란 놈의 일상은 네모와 잿빛 혹은 그늘, 기대가 되지 않는 내일을 점치는 노을이 고작이었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는 명작이었다.


그들의 일상의 근거가 노력인지 타고난 배경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 버릇이 된 비교는 악취미 같은 소급*이었던 적이 없었다. 소급적인 비교는 어차피 내 마음만 다칠 뿐이라는 사실쯤은 잘 알았다. 때문에 고칠 방법을 모르겠는 버릇, 답도 없이 울적해질 뿐이던 비교는 언제가 됐든지 지금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를 제외한 모두가 명작이었다. 네모와 잿빛 혹은 그늘, 기대가 되지 않는 내일을 점치는 노을밖에 모르는 나를 둘러싼 주변은: 잘 만들어진 영화라든가 기승전결이 매끄러운 소설 같은 일상이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잠자코 감상하게 돼버리는 그런 것이었다.


얼마나 바라본대도 질색과 권태가 아닌 것이 묻어 나올 리가 없는 내 일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이 사는 일상은 너무나도 명작이라 울적해졌다.


손가락을 하염없이 위로 올리지만 그럴수록 내려가는 네모난 화면 속. 언젠가 알고 지냈던 당신의 일상은 색깔을 잘 조합한 꽃다발 같아졌고, 이제는 악연 같아진 당신의 일상도 꽤나 드라마 같아졌던데_ 잿빛 콘크리트 그늘에 숨어 담배 한 개비 깨문 채, 손가락을 올릴수록 내려가는 네모를 바라보고 있는 내 지금은: 살짝 스치듯이 봐도 알 수 있는 졸작이었다.


얼마나 바라본대도 질색과 권태가 아닌 것이 묻어 나올 리 없는 일상이었다. 보다 더 나아지고 싶은 의욕은 여전하지만 방법을 모르고 헤매는 처지 또한 여전해서 헛도는 하루하루, 둘러보는 주변엔 명작뿐인 세상인데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보이거나 하진 않았다. 내 역할은 아무래도 다른 역할인 듯했다. 볼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명작이 있다면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아까운 졸작이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졸작이 있기에

명작의 가치가 더욱 각별해지곤 했었지.


얼마나 바라본대도 질색과

권태가 아닌 것이 묻어 나올 리 없는

졸작이 내 일상이었다.






바닥이 있기에 하늘을 올려볼 수 있었다. 처해있는 처지라는 게 제아무리 난해하더라도 바라보는 하늘이 내려앉거나 밟고 있는 바닥이 흩어지진 않았다.


충분했던 적 없이 부족한 것들뿐이던 일상, 그것의 배경이 되어줄 흐림과 맑음은 이제 익숙한 반복. 어쩌면 이런 즈음에 놓인 마음이란 것도 그와 같은 건지도 모르겠네. 나아지고 싶다는 의욕을 꽉 움켜쥐고 있던 두 손에 힘을 풀고, 너그러이 잡으면 꽤 나쁘지 않은 오늘이었다. 연신 씹어대며 태웠던 쓴 담배도 얼마쯤은 달짝지근한 듯이 느껴지기도 했지.


바닥이 있기에 하늘을 올려볼 수 있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낙엽, 혹은 도시의 바닥을 기어 다니는 생쥐를 빼닮은 오전과 오후. 둘러본 곳곳에 머무는 명작 같은 그들에 움츠러들어봤자, 졸작으로 살아가는 나 또한 작품이란 사실은 변할 리 없었다. 세세한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큰 테두리에선 그들과 나는 다르지 않았다. 나도 그들처럼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무래도 울적해지고 마는 건 여전한데_


바닥이 있기에 하늘을 올려볼 수 있었다. 처해있는 처지라는 게 제아무리 난해하더라도 바라보는 하늘이 내려앉거나 밟고 있는 바닥이 흩어지진 않았다.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에 빳빳했던 다리에 힘을 풀고, 맨바닥일지라도 잠시 주저앉아 쉬면 꽤 너그러워지던 어제였다. 연신 씹어대며 태웠던 쓰디쓴 담배도 상념 따윈 덜어낸 듯이 날아가 구름이 되곤 했었지.


화단에 가지런히 심어진 꽃 같은 그들에 움츠러들어봤자, 잡초인 듯이 살아가는 나 또한 꽃이란 사실은 변할 리 없었다. 세세한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큰 테두리에선 그들과 나는 다르지 않았다. 나도 그들처럼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무래도 울적해지고 마는 건 여전한데_


바닥이 있기에 하늘을 올려볼 수 있었다.



*처용(處容):

설화에 나오는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기인(奇人). 879년에 왕이 동부를 순행할 때 기이한 생김새와 옷차림으로 나타나 가무를 하며 궁궐에 따라 들어와 급간(級干)의 벼슬을 받았는데, 향가 <처용가>를 지어 불러 역신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실려 전한다.

*소급: 과거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미치게 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