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달 초하루(2025.11.01)*

이미 추억된 지난달들을 힐끔힐끔 흘겨봤다.

by 서리달

빈자리에 내려앉아있던 먼지마저도

알뜰히 챙기고 떠나가는 겨울바람이 불었다.


덕분에 빈자리는 가을보다 더욱 빈자리다워졌고, 마음 시리도록 선명해진 부재가 지독해서 구름마저 부재중인 하늘이나 바라봤다. 그늘에서 헤아려본 남은 달은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달들이 어딘가 낯설고, 괜스레 막연한 기분이 들어 이미 추억된 지난달들을 힐끔힐끔 흘겨봤다. 마주하고 있는 오늘과 다른 구석 따윈 없지만 애연스러웠다.


계절이 앞으로 얼마만큼 돌아온대도, 똑같이 겪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이 애연스러워 나를 끌어안았다. 방금 막 불어온 바람이 겨울을 가득 머금고 있는 탓이라고 변명하면서 웅크렸다. 일순 이런 내 모습이 꼭, 말로는 표현해내지 못할 무언가가 두려워진 사람이나 된 것만 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이 돼버릴 전부가 두려운 거겠지. 그러니 당당히 돌아보질 못한 채 힐끔힐끔 흘겨보는 걸지도 모르겠다.


콘크리트 벽이 마련해 준 그늘에서 남은 달을 헤아리는 지금. 이토록 보잘것없는 지금마저도 얼마쯤의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된다는 사실. 세상의 대부분은 다시 겪을 수 없는 추억으로 이뤄졌단 사실이 애연스러워, 그대로 머물고만 싶었던 나를 한껏 끌어안았다.


방금 막 불어온 바람이

겨울을 가득

머금고 있는 탓이라고 변명하면서 웅크렸다.


빈자리에 내려앉아있던 먼지마저도

알뜰히 챙기고 떠나가는 겨울바람이 아팠다.


덕분에 빈자리는 가을보다 더욱 빈자리다워졌고, 마음 시리도록 선명해진 부재가 지독해서 구름마저 부재중인 하늘이나 바라봤다. 그곳에 두고 온 것들이 몇몇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내 주변에 잔재한 부재는 조금 전보다 더욱더 선명한 빛깔, 너무나도 맑은 날이지만 시리도록 애연스러운 겨울의 시작점이었다.


당신이 머물던 자리에 차게

식어버린 바람이

빙빙 맴돌고 있는 해거름이 춥다.






개연성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어젯밤에 꿨던 난해한 꿈으로 시작한 생각이, 오늘 저녁의 먹을거리와 문장에 담고 싶었던 의미 따위로 뻗치는데_ 이 모든 생각들이 놀랍게도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 동안에 이뤄진다. 대충 3분에서 4분 남짓한 시간마다 거듭되는 생각이란 매번 이런 식이다.


개연성이라든지 개념 따위가 모호한 생각들만 재생된다. 몸이 들썩일 만큼 신나는 멜로디와는 다르게, 한없이 구슬프기만 한 노랫말을 읊어대는 노래 같은 생각이 지금도 이어진다. 요즘 사람들이 흔히 떠드는 집중력장애라는 게 나에게도 있었던 걸까, 싶어지리만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기질 때문이라고 생각해 봤다.


썩 만족스러운 이유가 되진 않았다.


나를 적어내려 눌러앉은 백지 앞에서 찬찬히 돌아보면, 이러저러하게 해결할 게 없는 어린 시절에도 이와 같았던 나였지. 개연성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생각을 하는 버릇은 의외로 역사가 깊었다. 물론 나 이러하다고 해서 어떤 불편함을 느끼는 건 아닌데_ 드문드문 피로함을 느끼긴 한다.


분명하게 갈피를 잡질 못하고 헤매듯이, 이런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넘어가고 다시 생각하니까. 마냥 간편한 버릇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겠지. 몸이 들썩일 만큼 신나는 멜로디와는 다르게, 한없이 구슬프기만 한 노랫말을 읊어대는 노래 같은 생각이 지금도 이어진다.


나를 적어내려 눌러앉은

백지 앞에서 담배 한 개비를

태워대고 있는 지금:


찬찬히 돌아본 가장 먼 곳의 그곳을 떠올리다가, 나를 적어내야 될 첫 문장에는 역시 당신의 미소가 어울릴 거라는 생각을 하고. 어젯밤 꿈에서 봤던 궁남지의 풍경이, 여름에서 겨울로 급작스레 바뀌던 것에 의문스런 슬픔을 느낀다. 지금 내 곁에 고양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내일이겠는지, 그나저나 고양이의 이름은 역시 나비가 좋겠지.


아니 나비라는 이름은 너무 흔하니까, 길경桔梗이라고 지어도 좋을 것 같은데_ 영원한 건 절대 없는 세상이지만 이름에는 원래 희망을 담는 거잖아. 그러고 보면 난 언제나 희망적이었다. 말투에 비관이 찌들긴 했어도 희망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결말이란 보통 이런 식이지. 근데 오늘 안에 나를 다 적어낼 수 있을까.


나 지금 이러는 순간에도 멀어진

그곳에는 언제쯤이면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개연성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생각들이 이어진다. 이 모든 생각들이 놀랍게도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 동안에 이뤄진다. 대충 3분에서 4분 남짓한 시간마다 거듭되는 생각이란 매번 이런 식이다.


개연성이라든지 개념 따위가 모호한 생각들만 재생된다. 몸이 들썩일 만큼 신나는 멜로디와는 다르게, 한없이 구슬프기만 한 노랫말을 읊어대는 노래 같은 생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겨울에 태어난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겨울이 좋다는 말을 했던 적이 없었다.


생일이라는 동짓달 초하룻날만 되면 너는 사람들로부터 사라지곤 했었다. 축하를 해주고 싶어도 보이질 않았고, 어떻게든 찾아내 축하를 해줘봤자 너는 멋쩍다는 듯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지. 다음부터는 모른 척해달라는 말을, 애써 짓누르고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는 겨울이 좋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겨울이 싫은 이유 또한 말해준 적이 없었다.


사계절을 두고서 너는 이런저런 말을 했던 적이 더러 있었지만, 겨울만큼은 어물쩍 넘어가버리던 찰나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싫어하는 무엇을 그저 입에 담지 않는 것, 그게 싫어하는 무엇을 향해 네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짓이었다. 이유라는 게 반드시 자백하듯이 말해야만 이유가 되는 건 아녔다.


너는 너만의 버릇으로 자전하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다른 누군가와 빙글빙글 공전하기도 했는데,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즈음에 그들은 네 곁에 없었다.


겨울이 무척이나 겨울다운 때에 너는 검은색 옷을 자주 입었지. 아직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어느 겨울, 검은색 정장차림으로 그늘에서 담배를 태우던 너를 본 적이 있다. 맞담배를 태우며 근황을 물었더니, 요즘은 살이 쪄서 맞지 않는 옷이 많아졌다고 했지.


실없는 이야기를 하는 네게서, 익숙한 담배냄새가 아닌 울적한 향냄새가 났다. 하얀색 셔츠엔 남는 부분이 많았고, 벨트는 스무 살에 쓰던 벨트 그대로였다. 이런 벨트로는 바지가 흘러내릴 거라며 송곳으로 직접 구멍을 뚫었던 나무색 벨트. 너는 여전히 너만의 버릇으로 자전하는 사람이었다.


때때로 다른 누군가와 빙글빙글 공전하기도 했는데,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즈음마다 그들이 네 곁에 없었던 이유를: 그때 그 그늘에서 깨단할 수 있었다. 겨울에 태어난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겨울이 좋다는 말을 했던 적이 없었다. 사계절을 두고서 너는 이런저런 말을 했던 적이 더러 있었지만, 겨울만큼은 어물쩍 넘어가버리던 찰나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싫어하는 무엇을 그저 입에 담지 않는 것,


그게 싫어하는 무엇을 향해 네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심한 짓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만의 버릇이 세상에서 가장 애연스러운 버릇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동짓달 초하루: 음력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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