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너의 손길은 어떤 날의 새벽보다는 다정했다.

by 서리달

시야를 뒤집어 저 하늘을 바닥에 둔 밤. 그럼에도 내 것이라는 감각이 들어오질 않아, 언짢은 마음씨가 용해된 잿빛을 뱉었다. 혼자 담배를 태울 때면 꼭 그런 버릇이 있었다. 연기를 땅이 아닌 하늘로 뱉는 버릇이 있었어요. 하지만 시야가 뒤집어진 밤에 뱉어댄 잿빛에는 이딴 마음씨가 용해된 탓일까, 먹구름만 닮은 담배연기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으로 개명되곤 했다.


나는 지금 거꾸로 서있는 걸까요.


서글프게도 그건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흔한 물구나무도 서지 못하는 뻣뻣한 몸이었으니까. 어렸을 적엔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는 것조차 잘하지 못해서 놀림받곤 했던 몸치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시야를 뒤집어 저 하늘을 발밑에 둔 밤이지만, 오롯이 내 것이라는 감각이 들어와 머물러주지 않는 이유는: 예전 같지 않은 게 아닌 예전부터 아녔던 탓이라고 짐작했다.


언짢은 마음씨가 용해된 잿빛이 안개가 되는 밤. 거꾸로 매달린 빌라와 아파트단지, 빨갛게 빛나는 십자가가 가리킨 땅을 향해 한숨을 뱉고 있습니다. 본명이 연기였던 잿빛에는 언짢은 마음씨가 녹아있는데, 언짢다는 말의 뜻은 사전에 적힌 한 줄로는 꽤 빈약하다고 가늠했다. 하여튼 등받이에 등을 기대면 신음하는 의자에 푹 기댄 채,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을 때처럼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있는 지금: 시야를 뒤집어 저 하늘을 바닥에 둔 밤이 좀 지루합니다.


거꾸로 매달린 빌라와 아파트단지, 빨갛게 빛나는 십자가가 가리키는 목적지도 슬슬 질려가는 중이지. 시야를 뒤집어 저 하늘을 발밑에 둔 밤이지만, 오롯이 내 것이라는 감각이 들어와 머물러줄 생각을 않는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지 가늠해 보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별로 대단한 이유가 아니란 것쯤은 이제 잘 아니까, 본명이 연기였던 잿빛 한숨이나 남김없이 아낌없이 뱉어봤다.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게 아닌, 아주 예전부터 아니었던 내가 원흉일 거라고 확신했다. 본명이 연기였던 잿빛에는 여전히 언짢은 마음씨가 녹아있었다. 그러고 보면 언짢다는 말의 뜻은: 사전에 적힌 한 줄로는 꽤나 빈약한 듯이 여겨졌다.






이제 능숙해져야만 할 건 거짓말밖에 없다. 멍청하게 솔직한 편이라고 나를 소개할 순 없겠지만, 끝끝내 드러나고 마는 진짜가 부끄러웠던 게 한두 번이 아녔지. 모자람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했던 1년으로 깨단한 사실이었다. 이제 능숙해져야만 할 건 거짓말밖에 없다.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만 같더라도 그게 옳다고 할 수 있는 말씨. 마음에서 마흔네 걸음씩 멀어진 곳에 있는 표정 따위에, 필히 능숙해져야 될 때에 이르렀단 걸 안다. 아마도 쉬운 일일 거라는 짐작은 하지 않기로 했다. 세상을 살아내며 해내야 하는 일에 쉬웠던 게 있던 적이 있을까. 쉬울 거라고 짐작했지만 결과엔 늘 아쉬운 기분이 뒤따랐었지.


때문에 쉬운 일일 거라는 짐작은 하지 않기로 했고, 모자람을 오롯이 받아들여야만 했던 1년에도 그럭저럭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의미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고집을 조금 더 뾰족하게 깎아내 봤다.


버릇이나 습관보다는 생리현상에 가까워진 한숨에 잿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그런 만큼 언짢은 마음씨 또한 더욱 용해돼, 세월에 희석되면 언젠가는 묽어질 줄로만 알았던 잿빛이 무거워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금 내뱉은 한숨에 땅이 꺼지거나

하진 않았지마는:


묽어질 줄로만 알았던 잿빛이 짙어졌단 사실에 서글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새롭게 다가올 해를 위한 다짐으로 일순 금연을 떠올렸지만, 글쎄 아무래도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나를 구성하는 작용에서 빠질 수 없는 하나가 돼버린 만큼 어려울 걸 알아서, 알아서 제외해 두기로 했다. 살아내는 게 아닌 살아가는 삶이 됐을 즈음에나 해볼 법한 다짐이겠지. 그러니까 이제 능숙해져야만 할 건 거짓말밖에 없었다.


멍청하게 솔직한 편이라고 나를 소개할 순 없겠지만, 끝끝내 드러나고 마는 진짜가 부끄러웠던 게 한두 번이 아녔으니까. 이제 능숙해져야만 할 건, 그토록 혐오해 왔던 거짓말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만 같더라도 환히 웃으며 그게 옳다고 할 수 있는 말씨. 마음에서 마흔네 걸음씩 멀어진 곳에 있는 표정 따위에, 필히 능숙해져야 될 때에 이르러버린 오늘이었다.


버릇이나 습관보다는 생리현상에 가까워진 한숨에 잿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그런 만큼 언짢은 마음씨 또한 더욱 용해돼, 세월에 희석되면 언젠가는 묽어질 줄로만 알았던 잿빛이 무거워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금 내뱉은 한숨에 땅이 꺼지거나 하진 않았지마는:


세월에 희석돼 언젠가는

묽어질 줄로만 알았던 잿빛이

짙어졌단 사실에,


하늘 없는 듯이 울적해지고 마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필연이라고 믿는 우연으로 시작됐으면서 영원하잔 말이 어째서 그렇게 쉬운 걸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목구멍을 지나치고 혀끝까지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말을 겨우 참았다. 서글서글하니 수더분한 미소가 일그러지는 게 싫었다. 지금을 모면하면 어차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의문일 텐데, 이딴 것 때문에 내일에도 보고 싶은 미소가 일그러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시답잖은 농담을 마련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잔뜩 성난 노랫말이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지만, 아닌 척 시답잖은 농담을 한 모금씩 나눠 태우는 한 개비에 만들어낸 실구름에 걸어뒀지. 내일의 우리는 과연 어떤 모양이겠는지, 의문에 짐작이 접목돼 새빨간 단풍나무에 벚꽃이 핀 것만 같은 생각만 재생되는데_ 서글서글하니 수더분한 미소가 일그러지는 게 싫었다.


때문에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쳐, 목구멍을 지나치고 혀끝까지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말을 참아냈다. 지금을 어떻게든 모면해 내면 어차피 사라질 의문일 텐데, 이딴 것 때문에 내일에도 보고 싶은 미소가 일그러지는 게 싫었다. 언젠가 녹아내릴 겨울을 빼닮은 너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믐달이 돼버리는 그 입에서, 꿈결에도 있을 리 없는 영원이 흘러서 껄끄러워도 어쩌겠어. 서글서글하니 수더분한 미소가 일그러지는 게 더 싫었다. 그래서 시답잖은 농담을 마련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잔뜩 성난 노랫말이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았지만, 아닌 척 시답잖은 농담을 한 모금씩 나눠 태우는 한 개비에 만들어낸 실구름에 걸어뒀다.


어젯밤에는 위로가 필요했었다는 너를 듣다가, 오늘만큼은 마음껏 다뤄도 좋다는 농담인 체하는 허락을 걸어뒀지. 너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는데, 늦저녁에 너의 손길은 어떤 날의 새벽보다는 다정했다. 그 손길에 기댄 채 마지막 한 모금은 네게 양보했고 달이 뜨지 않은 밤을 바라봤다. 내일의 우리는 과연 어떤 모양이겠는지, 의문에 짐작이 접목돼 참나무에 빌붙은 겨우살이가 떠올랐는데_


언젠가 녹아내릴 겨울을 빼닮은 너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믐달이 돼버리는 그 입에서, 꿈결에도 있을 리 없는 영원이 흘러 의문이 솟구쳐도 어쩌겠어. 서글서글하니 수더분한 미소가 일그러지는 게 더 싫었다. 지금을 모면하면 어차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의문일 텐데, 이딴 것 때문에 내일에도 보고 싶은 네가 일그러지는 게 싫었다.



*녹(綠):

1) 푸를 녹綠

2) 산화 작용으로 쇠붙이의 표면에 생기는 물질.

*G-DRAGON – 삐딱하게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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