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당신은 이 마음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줄까.
지금의 당신은 이 마음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줄까.
그때의 당신은 그랬지. 이 마음 들을 때면, 읽을 때면 늘 같은 이름을 붙여줬지. 정리를 몰라 늘어놓을 줄만 아는 이 마음을 애정이라고 불러줬었지. 그때의 당신은 그랬지, 그랬었지. 당신에게만 간결치 못하던 나를 당신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우수 짙은 눈에 온기 담아 말했지. 하나 흘려버릴 수 없는 애정이라고 불렀지.
그때의 당신은 그랬지, 그랬었지.
미묘한 일에 두근거렸던 해를 벗어나 머무는 밤. 열한 시 삼십삼 분. 깜깜해져 잔잔한 시간에 당신을 늘어놓고 있어. 또 당신만 늘어놓고 있어. 미안해. 아까 있었던 미묘한 일을 떠올려도 좋을 밤인데, 그러질 못하고 자꾸 반복하면서 이렇게 당신만 늘어놓고 있네.
어제도 했던, 그저께도 했던, 지난주에도 했던, 지난달에도 했던, 작년에도 했던 일을 오늘도 반복하고 있어. 이젠 좀 지긋지긋해질 법한데 말이야. 우리의 마지막이 너무 낯설었기에 이럴 수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아까의 미묘한 일 때문인 걸까.
있잖아,
오늘은 평소랑 다른 하루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시간을 어겨 아침도 평소보다 늦게 먹고 익숙함에 빠진 몸은 다그쳐 나갈 준비를, 종종걸음으로 어제도 갔던 카페를 지나치고선 막 도착한 버스에 무작정 올라탔어. 번호도 안 보고 그냥, 어떤 마음을 먹고 그런 건 아니고 어디든 낯선 곳이면 좋았던 거지. 어디로 가는 버스인진 네 정거장인가 지나칠 즈음 알았으니까. 한참 뿌연 창밖을 구경하다 사람들 우르르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렸어.
내린 곳은 번화가였는데 뭐가 뭔지, 오가는 사람들처럼 간판도 많아 어지럽더라. 아무래도 당신 없이 걷는 도시는 어려워. 그 어지러운 것부터 어떻게 좀 해보려 막 걸었어. 사람들 피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계속 걸었어. 계속 걷다 보니 점점 줄어드는 사람들, 이어서 만난 조용한 거리. 조용함이 끝나는 지점인 듯한 낮은 건물의 하얀 벽 앞에 멈췄어.
무척 옛날에나 유행했을 글씨로 쓰인 간판 아래 우두커니. 들어갈까 말까, 이 안은 어떤 공간일까. 익숙한 게 아니면 겁부터 먹는 버릇은 여전해서 조금 망설여지더라고. 간판의 글씨나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무리 힐끔거려도 도무지 속을 모르겠는 유리문 앞에서,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만 비치는 유리문 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이다 결심 굳히고 용기 좀 내봤어.
손은 시리니까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고, 어제보다 좁아진 것만 같은 어깨로 유리문 밀면서 들어간 카페. 근데 아메리카노 한 잔도 말 못 했지 뭐야. 고개 숙여 인사만 하고 도망치듯 나왔어.
입구에서 왼쪽
저 구석에 두 번째 테이블
어둔 나무 테이블
당신인 듯 당신 아닌 사람이
마치 당신처럼 있었거든
그 사람이랑 눈이 마주쳤거든
당신인 줄 알았거든
아니,
어쩌면 당신이었을까.
밤을 지나 머무는 새벽
한시 삼분
검정 더 짙어진 지금도
당신을 늘어놓고 있어
난 아직도
당신만 늘어놓고 있어.
지금의 당신은 이 마음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줄까. 그때의 당신은 그랬지. 이 마음 들을 때면, 읽을 때면 늘 같은 이름을 붙여줬지. 정리를 몰라 늘어놓을 줄만 아는 이 마음을 애정이라고 불러줬었지.
그때의 당신은 그랬지, 그랬었지. 당신에게만 간결치 못하던 나를 당신은 낮고 깊은 목소리로, 우수 짙은 눈에 온기 담아 말했지. 하나 흘려버릴 수 없는 애정이라고 불러줬었지. 그때의 당신은 분명 그랬는데 지금의 당신은:
정리를 몰라 늘어놓을 줄만 아는
이 마음을 어떤 이름으로 불러줄까.
_2022.02.03作
*므네모시네(Mnemosyne):
기억의 여신이다. 추상적 개념 ‘기억’이 인격화된 존재로, ‘망각’이 인격화된 레테와 대립 쌍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