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couros

설령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by 서리달

당신 곁에 있던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영원을 빼닮은 무언가를 약속했던 처음이 떠올라. 뭐가 됐든 간에 말이지,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처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지. 어쩌면 끄트머리에 다다를 즈음에는 다들 처음을 떠올리는 걸까.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이라서 그런지, 답을 요구할 수도 없는 질문만 많아지고 정리가 잘 안 되네.


단지 그냥 지금은, 나만 이런 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야. 처음과 똑같지 못한 끄트머리에서 처음을 떠올리게 되는 건, 다른 누구들도 똑같을 거라고 믿고만 싶은 밤이야. 정리하려 해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헤매는 마음이야.


우리 같은 마음으로 머물렀던 하루들을 돌아보고 있어. 이런 감정이든 저런 감정이든 전부 꺼둔 채로 멍하니 보고만 있어. 더 이상 아무런 의미조차 되지 않는 듯이 보는 사진들과 편지, 이어서 네모난 화면 속 점점 짧아지는 글자의 나열들까지. 우리 같은 마음으로 머물렀던 하루들을 돌아보고 있어.


그러고 보면 표현에 서툴러서 걱정된다던 당신이었지. 이렇게 돌아보고 있으니 마냥 그러지도 않은 당신이었네. 서투르단 말이 귀엽게 보일 만큼 당신의 언어는 넓었어.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마음, 그런 마음이 사랑의 원래가 아닐까 생각했었을 정도였으니까. 말하자면 늘 부단히 애쓰던 당신이었지.


그랬던 당신을 돌아볼수록

마음이 조금 먹먹해지네.


이런 감정이든 저런 감정이든 전부 꺼두기로 했는데 말이야. 하여튼 먹먹해진 지금에 품고 있는 건 알 수 없는 것들과 감히 말해볼 수 없는 것들이야. 당신은 처음에 들떠서 노력했던 걸까, 그나저나 내 마음은 시간에 희석돼 묽어져 버린 걸까.


처음보다 더 깊어졌다면 깊어진 사이일 텐데, 외려 처음보다 더 모르겠는 것들이 늘어버렸지. 말해볼 수 없는 물음만 몇 움큼씩 늘어버렸지. 어쨌든 마음의 갈래를 못 잡겠는 지금에도 깨닫게 된 게 하나 있어.


우리 사이엔 그렇게 나빴던 일이라든지, 힘든 일이라든가 아팠던 일도 딱히 없었다는 거지. 하나하나 가만히 되짚어보면 유난스러울 정도로 대단했던 일도 아니었네. 근데 그땐 그게 왜 그토록 서운했던 건지. 고작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 서운함은 왜 흩어지지 않고, 켜켜이 쌓이기만 해서 이런 지금을 빚어내는 건지.


만약 시간과 마음을 저울에 올려둔다면 좋았던 일이라든지, 행복했던 일 혹은 사랑스럽거나 애틋한 일들이 더 많겠지. 균형을 말할 틈도 없이 한쪽으로 기울어버리겠지.


내 마음이 당신 향해 기울었던 듯이

당신 마음이 날 향해 기울었던 듯이


영원을 빼닮은 무언가를 약속했던 처음이 떠올라. 뭐가 됐든 간에 말이지,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처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지. 어쩌면 끄트머리에 다다를 즈음에는 다들 처음을 떠올리는 걸까.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이라서 그런지, 답을 요구할 수도 없는 질문만 많아지고 정리가 잘 안 되네.


단지 그냥 지금은, 나만 이런 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야. 처음과 똑같지 못한 끄트머리에서 처음을 떠올리게 되는 건, 다른 누구들도 똑같을 거라고 믿고만 싶은 밤이야. 정리하려 해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 헤매는 마음이야. 어차피 답을 들을 수도 없는 물음만 한 움큼 더 그러쥔 채로 흐린 밤을 닦아내는 지금이야.


내 곁에 있던 당신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_2022.02.05作


*에피쿠로스(Epicouros), 쾌락中


<나는 자연을 탐구하면서 솔직히 말하겠다. 즉 대중의 의견에 영합해서 쏟아지는 군중의 갈채를 받기보다는, 설령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