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취미 말고 끝내주게 좋은 취미요

뿌듯함과 안정감의 산물

by 라온


나의 첫 취미 생활은 십자수였다. 작은 바늘에 자수실을 꿰어서 캐릭터를 수놓고 핸드폰 고리로 만들어 사용했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취미이고 비싼 취미도 아니었을뿐더러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어서 좋았다. 한번 잡으면 완성할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두 번째 취미는 프랑스 자수였는데 프랑스 자수는 십자수보다 조금 더 어렵다. 십자수는 도안에 나와있는 대로 엑스 표시를 만들어가며 자수실로 칸을 채워나가는 거라면 프랑스 자수는 여러 스킬이 필요하다. 양말이나 손수건에 수놓을 수도 있고 가방이나 파우치 옷 등 내가 원하는 곳에 수를 놓을 수 있다. 그 기법이 매우 다양해서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쁘게 수놓아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도 있어 더 만족감이 높았다.


세 번째 취미는 유튜브를 보고 배웠다. 코바늘 뜨기였는데 우연히 알고리즘으로 보게 된 영상은 한번 보고 바로 따라 할 수 있었다. 초보자에 맞게 쉽게 잘 설명해 놓은 영상이었고 기본적 뜨개 스킬 몇 개만 익히면 금세 수세미 하나 정도는 뜰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머리끈도 만들고 예쁜 꽃 모양 키링도 만들었다.


이 세 가지 취미에는 공통점이 있다. 한곳에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명 골을 패는 작업들이라는 점이다. 한번 꽂히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 탓에 정말 골이 패이는 경험을 몇 번이나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즐거웠다. 하지만 이렇게 완성작이 한두 개 생기면 한동안은 하지 않았다. 꾸준히 이어나갈 만큼은 아니었는지 어쩐지 끊임없는 작업을 해나갈 수 없었다. 아마 그 이상에 발전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을 진정으로 달래주지는 못했다. 골만 파이고 그다지 감정적인 해소는 되지 못했다.


첫 취미 생활이 십자수였다고 했지만 그보다 앞서 꾸준히 해왔던 일이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당연스럽게 해오던 일이라 특별히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독서였다. 책을 읽어나가는 일이 재밌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 많은 동화 전집을 다 읽었다고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부터 양치기로 승부를 보는 타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많이 읽으니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졌고 덕분에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여러 번 탔다. 하지만 그때는 책과 글쓰기가 나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란 걸 깨닫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일기를 썼는데 어른이 돼서 쓴 일기는 죄다 우울했다. 일기만 보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다. 더는 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해가 바뀌어도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고 탁상달력에 간단한 이벤트만 적었다. 내 부정적인 기분을 글로 꾹꾹 눌러 담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다시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으니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이 차라리 잘된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그만둬야 했었던 일기 쓰기는 또 다른 취미를 만나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예쁜 스티커로 채워주고 종이를 찢고 오려가며 마음을 다잡는 일은 글을 쓰는 것과는 다른 해소가 되었다. 그러다 내 마음이 글이 쓰고 싶어 지면 그때 글로 남기면 되었다. 그러니까 똑같이 우울한 기분의 글을 쓰더라도 마음이 편했다. 쓰기 싫으면 내가 적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글을 쓰고 싶다는 건 내가 꼭 글로 남기고 싶다는 거 아닐까? 하면서.. 모든 것을 다 글로 남길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다이어리를 보면서 우울한 감정만 느낄 필요가 없었다. 예쁜 것들로 채워진 내 일기장은 이제 뿌듯함과 안정감을 찾아주는 산물이 되었다. 그냥 그런 취미 말고 끝내주게 좋은 취미를 찾은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내가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이거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특별한 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내 마음에 진정한 오아시스였다. 이 두 가지를 통해 내가 마음을 다잡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꾸역꾸역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이 다꾸라는 취미와 더해져 시너지가 폭발한 것이다.


끝내주게 좋은 취미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만두지 않고 나도 모르게 계속하는 일 둘째, 그만두더라도 결국은 돌아오는 일 셋째, 내 마음에 평안을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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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 다꾸템- 은근히 예쁜 것들이 많아 갈 때마다 이것저것 집어오게 된다!!!


<빈티지 다꾸 시작하는 법>

1. 일기장을 고른다. 아무거나 상관없다. 내 맘에 드는 걸로 골라준다. 팁은 쫙 펴지는 것이 좋다

2. 다이소에 간다. 다이소에는 생각보다 가성비 좋은 다꾸템을 많이 득템 할 수 있다. 이게 정말 내게 끝내주게 좋은 취미인지 모를 때는 일단 발만 담가본다. 장비 발은 나중에!!!

3. 다꾸를 시작한다. 어떤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취향대로 내 맘대로 찢고 오리고 붙여준다.

4. 글을 남기고 싶으면 그 공간을 남겨두고 다꾸를 한다. 글을 쓰기 싫다면 과감히 패스

5. 날짜를 적어 준다.

6. 일기장을 덮고 대짜로 눕는다.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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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에서 구매한 아이템들을 이용한 다꾸 (감성 스티커, 크라프트지 포스트잇, 마스킹 테이프)

https://youtu.be/1KXofkdWLW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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