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힘들 때 알게 된 나의 소중한 취미
우리나라에는 평균적인 삶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해야 하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는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해서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이런 삶이 마치 정답인 것처럼 여겨져 왔고 지금도 그러한 것 같다. 나 또한 20대 후반에는 결혼해서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순 없을 텐데... 나 또한 그런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이 삼십이 넘도록 남들 다한다는 결혼도 하지 못했고 그나마 다니던 직장도 몸이 안 좋아 그만두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또다시 반복되는 현실에 우울증은 더 극심하게 내 마음을 갉아먹고 굉장히 힘들게 했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그렇게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할까, 왜 나는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은 나를 점점 더 비참하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 못 들고 가슴팍을 때려가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 봤자 달라질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그렇게 시간만 자꾸 흐르고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있었다. 하도 제자리에 가만히 있다 보니 이젠 점점 뒤로 후진하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역행하고 있다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난 대체 뭘 해야 할까? 난 뭘 잘하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고민들의 대답을 찾으려고 답도 없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야만 했다. 머릿속은 항상 풀가동 상태였다.
하루 종일 유튜브만 들여다봤다. 돈이라도 잘 벌면 덜 우울할 것 같은 마음에 남들은 어떻게 사나, 어떻게 돈을 버나 열심히 찾아봤다. 다들 뻔한 소리 아니면 누구나 월천 벌기 가능!! 이런 영상이 대부분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개는 시도 해 보았지만 역시나.. 돈 벌기 지금처럼 좋은 세상이 없다는데 내겐 여전히 어려운 세상이었다. 이렇게 또 실패에 맛을 보고 우울감에 빠져들고 있을 때 유튜브에서 빈티지 다꾸 영상을 보게 되었다. 사실 예전에도 본 적 있었지만 그때는 예쁘다 하고 그냥 넘겼었는데 갑자기 나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어렸을 때도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꾸준히 일기를 써왔던 터라 재밌을 것 같았다. 비록 지금은 그 일기 쓰기도 멈춰버렸지만.
주인이 우울하니 다이어리는 당연히 우울함에 극치였고 그 우울한 일기를 다시 읽자니 도무지 쓸 맛이 안 났다. 좋은 일도 있고 웃을 일도 있어야 하는데 내 일기장은 온통 우울한 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다이어리 쓰는 일을 그만뒀다. 지금이라도 뭐가 달라질까 싶었지만 빈티지 다꾸는 글을 쓰지 않아도 예쁘게 꾸미기만 해도 되었다. 그래서 하기로 마음먹고 다꾸 용품을 주문했다.
일기장은 동생이 준 노트에 하기로 하고 예쁜 배경지와 스티커를 고르고 꾸미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하는 다이어리 꾸미기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어른들도 이렇게 하는 이유가 있었어.. 진작 할걸..'
빈티지 다꾸를 보고 그냥 지나쳤을 당시, 나도 예전처럼 다꾸 해서 영상이나 올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남들과 좀 다르게 하고 싶어 영어공부를 하면서 다이어리도 꾸미는 영상이었는데 몇 개 올리다가 그만두었다. 이번에 다꾸를 다시 시작했으니 유튜브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도 망했는데 지금이라고 별 다를 바 없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냥 영상 자체를 만들어서 올리는 일이 재미있었다.
영상을 찍으면서 다꾸를 하려니 고요한 새벽시간이 가장 좋았다. 다들 잠들고 조용한 시간에 영상을 찍으려면 그때밖에 찍을 시간이 없었기도 했지만, 원래 야행성 체질이라 오히려 집중이 잘 되고 좋았다. 다꾸가 아니면 그 시간에 부풀어 오르는 생각을 끌어안고 눈물이나 흘리고 있을 텐데 집중해서 할 일이 생겼다.
예쁜 종이와 스티커들이 너무 맘에 들었다. 종이들끼리 바스락대는 소리도 듣기 좋았고 스티커 떼지는 소리, 가위질 소리도 좋았다. 핀셋으로 슥슥 긁는 소리도 좋았다. 그렇게 다이어리를 꾸미기 할 동안엔 어떤 고민도 우울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뭘 붙이면 더 예쁠까? 어디에 배치하는 게 좋을까? 이런 생각들이 대신 내 머릿속을 채웠다. 다꾸를 시작하기 전에 분명 우울했는데 눈물 날 것 같은 생각이 가득 찼었는데 다꾸를 끝 마치고 나면 아픈 마음이 많이 사그라들어있었다.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고도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쉽게 기분전환이 될 수 있나 싶었다. 여행을 가도, 정처 없이 걸어도 우울할 때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는데 (오히려 더 우울한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른 곳으로 정신을 집중하니 빠져나오기가 상대적으로 더 쉬웠다. 마음에 안식처를 찾은 기분이었다.
난 꾸준히 빈티지 다꾸를 했다. 울고 싶을 땐 무조건 다이어리를 펼쳤다. 영상을 만들지 않을 때도 스티커를 붙이고 종이를 찢고 다이어리를 꾸몄다. 다 꾸미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마음에 들게 꾸며지면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유튜브 영상도 계속해서 올릴 수 있었다. 구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유명 유튜버 채널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구독자가 조금씩 생기고 그들과 소통하고 영상을 만드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누군가도 내 영상을 보거나 글을 읽고 멍 때리는 시간을 갖고 마음을 돌보는 시간을 갖기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아픈 시간을 이겨내는 법을 찾은 것처럼 다른 누군가도 자기만의 치유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는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살아왔지만 내가 나를 놓지 않았다. 물론 놓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이런 나를 끌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이겨낼 수 있는 작은 틈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버리면 어느 누가 사랑해 줄까.. 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다독이다 보면 작은 틈새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 틈새를 발견했으면 좋겠다.
아마 난 평생 다꾸를 하지 않을까 싶다. 혹시 이 마음이 다 치유되더라도 다꾸는 놓지 못할 것 같다. 내 영혼의 단짝이자 유일한 숨통이니까.
나의 첫 빈티지 다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