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꼭 글로 남길 필요는 없다

부정적인 마음으로 힘든 사람들을 위해

by 라온

일기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이런 댓글들을 읽었다. 일기를 쓸 때 자책하는 말들이나 부정적인 감정만 계속 적게 돼서 그걸 쓰는 것도 보는 것도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같은 이유로 일기 쓰기를 그만뒀던 적이 있기 때문에 어떤 마음인지 잘 알 것 같았다.


처음엔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써서 뭔가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복될수록 해소되기는커녕 우울한 감정이 그대로 유지됐다. 그럼 그 감정은 또 다른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쏟아진 감정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지옥을 이루었다.


일기를 쓰면서 우는 날도 많았다. 일기에 내 우울한 감정을 쏟아낼수록 나는 불행해졌다. 스티커를 붙여도 울고 화나고 우울한 표정의 스티커만 사용했다. 내 마음은 늘 그런 표정들뿐이었다. 이런 상태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일기장에선 어둠의 기운이 솟아날 것만 같았다.


혹자들은 말한다. 그럼 긍정적인 말 한마디라도 적어보라고. 긍정적으로 변화하는데 그게 시작일 것 같지만, 말 한마디 적는다고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부정적인 말을 적어서 우울해지듯이 긍정적인 말 몇 마디 적어서 사람이 바뀐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나의 일기가 부정적인 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된 경우에는 오랜 기간 부정적 기운에 잠식당해 헤어 나올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제부터 긍정적인 말만 써봐야지, 그럼 나도 긍정적인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을 거야'라는 다짐을 해 보지만 얼마 가지 않아 더 부정적인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긍정적인 말 쓴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네 뭐, 그냥 자기기만 아닌가?' '실제론 하나도 즐겁지 않고 기분이 좋지 않은데 그렇게 될 거라고 막연한 희망 속에서 사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실제로 내 마음이 이랬다.


어두워진 마음은 쉽게 하얘지지 않는다. 먹물 통에 하얀 물감 한 방울 떨어뜨린다고 하얘지지 않는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나지도 않는 긍정적인 말 한마디가 아무 의미 없이 왔다 가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렇게 부정적이고 우울한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어떤 누가 항상 우울하고 침울한 기운을 내뿜는 사람이 되고 싶겠는가? 맘대로 변화되지 않는 감정이 힘들고 자꾸 실패할수록 그 마음이 쉽게 깨지고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우선 억지로 긍정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세상엔 부정적인 사람도 있고 긍정적인 사람도 있고 그냥 성향의 차이일 뿐이다. 꼭 내가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당연히 긍정을 강요할 필요도 없다. 내 마음이 부정적인 게 힘들어서, 그렇지 않도록 변화하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다꾸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내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고자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내 불안하고 불행한 마음을 잊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마음을 글로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다꾸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진정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화한 것은 아닐지라도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찾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그렇게 우울 가득한 마음을 글로 쓰지 않고도 일기장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어둠의 기운을 내뿜던 일기장이 핑크색 표지에 본연의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일기와 글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다꾸를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일기를 굳이 글로 채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다. 귀여운 동물 사진을 붙일 수도 있고 어반 스케치를 할 수도 있다. 꽃과 나비 스티커들로 일기장을 채울 수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진 일기장은 더 이상 부정의 기운이 가득해서 꼴도 보기 싫은 일기장이 아니다. 이제 자주 열어보고 싶은 예쁘고 귀여운 나만의 일기장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글이 쓰고 싶어 지면, 그런 날에만 글로 일기를 쓰면 된다. 더 이상 부정적인 말을 쓴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내 마음이 예전처럼 지하 10층까지 곤두박질 칠 일도 없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면 일기장이 부정적인 글로 뒤덮일까 봐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굳이 긍정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지 않아도 내 마음의 속도대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일기장을 다른 것들로 채울 때 주의사항>


1. 표정 스티커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감정이 드러나는 스티커도 금물.

2. 동, 식물이나 풍경을 위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3. 내가 30분~1시간 정도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한다. (ex. 게임을 좋아하면 게임 캐릭터를 분석해 본다던가 그려보는 식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