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맞이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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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 mark

안녕, 이제 이사도 다 하고, 짐 정리도 거의 다 끝나고 처음 맞는 주말 아침이야. 정리는 했지만, 아직 사야 할 것도 많고, 세세한 아이템 배치까지 끝나려면 아직 꽤 남은 것 같아. 그래도 여기저기 쌓여있던 박스들도 정리가 되고,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던 옷들도 자기 자리 찾아서 들어가고 하니까 훨씬 집이 맘에 들어. 더 넓어 보이기도 하고 말이야.


짐 정리하다가, 군대에 있을 때부터 써오던 일기장 겸 글귀 모음집 겸 자기 계발서 삼아 만들어 놓은, 일명 ‘빨간 공책’을 오랜만에 보게 됐어. 꾸준히 써왔으면 정말 좋았을 건데, 군대에서는 근무 끝나고 혼자 생각 정리할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많이 썼는데 전역하고는 잘 안 썼더라.


그런데 그중에서 내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던 글귀 중에, 작가가 생각이 안 나서 최근까지도 한참 못 찾고 있던 글귀가 있었는데 빨간 공책에 써져있었어.



“인생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된다. 인생을 축제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를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길을 걷는 어린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에 꽃잎을 받아들이듯, 그렇게.”



오스트리아의 작가이자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글귀였어. 내가 이 글을 옮겨놨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하는 삶의 자세에 있어서 ‘끝판왕’이 아닐까 싶어.


글귀를 다시 들여다보면, 인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봐서 뭐하겠어. 어차피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닐 건데. 인생 자체를 불꽃놀이가 펑펑 터지고 모두가 웃고 즐기는, 그런 축제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매일을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는 거야.

축제에 갔는데, 어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어오다가 내 옷에 묻힌 거야. 신경도 쓰이고, 아이의 보호자는 뭐 하는 거지 하고 짜증도 나기도 해. 그런데도 축제니까, 화나고 짜증이 나도 그러려니 하는 거야. 축제잖아 다른 날도 아니고 축제. 그 축제에서 오늘은 경품 이벤트에 당첨이 되어서 내가 원하던 상품을 손에 넣게 되었어. 못 받아도 신나는 그 축제에서, 경품까지 받는다? 오늘은 정말 신나는 날이 되는 거야.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

길을 걸어가는 저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가 바람이 불면서 떨어지는 분홍색 벚꽃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면서 온 몸에 꽃잎을 맞으면서 방긋방긋 웃어. 바람이 이쪽에서 불면 이쪽으로, 저쪽에서 불면 저쪽으로 그냥 꽃잎을 받아들이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런 감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어. 사실 작가 자신도 그렇게 살았을 수 있을까 싶기는 하지만, 적어도 목표로 하는 삶의 자세가 이런 것이라면 하루하루가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어.


나는 이 글귀를 보고는 니체가 말하는 낙타, 사자, 아이의 정신이 떠올랐고, 이러한 자세가 아이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다고 생각했어.

짐을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는 낙타, 그리고 불합리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에는 저항하는 사자의 정신. 그리고 놀고 싶을 때 놀고, 놀고 싶지 않을 때는 그만둬버리는 아이의 정신.


아이가 놀면서 ‘왜 해야 하지?’ 하고 묻는 순간에는 그 놀이가 하기 싫고, 그 놀이가 재미있지도 않은데 계속해야 하는 순간이지.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해소시키는 게 답인 거지. 니체는 이런 태도로 우리 삶을 대한다면, 인생 자체를 즐길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아.


물론, 아이처럼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두라는 건 아니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그냥 아이처럼 인생을 꽃잎 받아들이듯 받아들이고, 니체의 말처럼 인생의 의미나,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인생을 좀 더 즐겁게, 행복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즐길 수 있을까 생각하자는 거야.


온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병인 파킨슨 병을 앓고 계신 정신과 의사이신 김혜남 선생님의 글 중에서 그런 내용이 있었어.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다 보면, 결국엔 찾을 수 없고 그러다 보면 자살이 떠오르게 되는 거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는 왜? 가 아닌 어떻게? 가 맞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왜 살아가는 거지? 어떤 이유에서 태어났고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걸까?라는 질문보다는 오늘 축제처럼 맞이한 하루, 선물처럼 받은 이 하루를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게, 밤에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을 때 그래, 괜찮은 하루였네 하고 마무리할 수 있는지가 더 나은 태도인 것 같아.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잠시 동안 힘들었고, 극단적이었던 네가 이 글을 보고는 조금 내려놨으면 좋겠다. 오늘 ‘축제’도 잘 다녀오고. 또 연락할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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