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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태윤 Apr 18. 2023

나에게 상처, 남에게 상처

사람, 사람들 그리고 2

 내가 가지고 있던 가지 중 하나를 꺾는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나뭇가지이다. 나는 이 나뭇가지를 칼로 뾰족하고 날카롭게 깎아낸다. 잘 벼려진 나뭇가지는 이제 무기가 되었다. 그 무기로 나는 엄마를 공격한다. 


 "엄마가 나 보냈잖아! 이모네로 할머니네로 버렸잖아! 내가 얼마나 외롭고 집에 오고 싶었는지 알아? 얼마나 서러웠는지 알아? 나는 그 어린 나이에 내가 버려졌다고 생각했어. 그거 알아? 할머니가 나보고 귀신 씐 애랬어, 나 그런 소리 듣고 지냈어. 눈치 보여서 방에서 숨죽이고 혼자 노는 거 보고 귀신 씐 애래."


 내 날카로운 공격은 치명타를 먹였고 공격에 상처 입은 엄마를 보며 나는 작은 승리감과 통쾌함을 느꼈다.


 나는 새로운 가지를 또 하나 꺾는다. 또 날카롭게 벼려 무기로 만들어 공격한다. 친구에게, 연인에게, 가족에게, 동료직원에게, 혹은 그냥 어쩌다 엮이게 된 타인에게. 공격이 성공하면 그 순간 잠시간은 통쾌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뱉었던 그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고 공격받아 상처받은 얼굴이 마음에 맴돈다.


 그리고 때로는 나도 공격받는다. 어떤 공격은 나에게 작은 상처도 남기지 못하지만 어떤 공격은 깊고 진한 상처를 내고 아물지 못한 흉터로 남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이차이가 조금 나는 남동생이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있는 동안 나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지냈다. 아빠는 출근, 엄마는 동생과 병원. 아직 어렸던 나는 일주일, 이주일, 한 달씩 친척들에게 맡겨졌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귀찮은 존재라는 것은 알았다. 대놓고 구박받지는 않았으나 은근한 차별과 눈치를 받았다. 가장 오래 맡겨진 곳은 외가댁이었는데, 할머니는 손녀보다 손자를 좋아하고 입이 걸걸한 옛날 분이셨다. 장난감도 게임기도 없는 시골집에서 나는 친척언니방에 있는 어려운 책을 읽거나 숟가락이나 약병 같은 물건들을 인형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런 나를 보고 할머니는 쟤는 애 같지 않다고 이상하다고 혀를 찼고 물건을 인형 대신 가지고 소곤소곤 인형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귀신 씐 애 같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그 말은 나에게 큰 상처로 남아서 더 조용하고 눈치 보는 아이로 만들었다. 


 나이가 좀 들어 대학생 때 엄마와 큰 다툼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시작했는지 그 원인은 기억나지 않는데, 엄마에게 상처 주고 싶었던 내 검은 마음은 기억난다. 그리고 엄마에게 던졌던 말들도. 내 말에 엄마는 큰 충격을 받았고 나에게 사과하셨다. 그리고 할머니에게도 따지셨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따진 것은 모르고 있었는데 다리가 부러지신 할머니의 병문안을 갔을 때 할머니가 말씀하셔서 알았다. 나는 기억도 안 나지만 미안하다고 너를 미워했던 게 아니라며 가볍게 사과하셨는데 조금 허무했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10년 20년이 넘어서도 내 마음에 상흔으로 남아있는데 기억도 못하시다니. 나는 그 말 때문에 엄마에게 상처를 줬는데, 그리고 그 상처를 준 것도 나에게 상처로 남아있는데ㆍㆍㆍ.


 엄마에게 했던 말 말고도, 친구나 혹은 연인을 타인을 말로 공격한 적이 종종 있었다. 너무 심한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말도 꽤 있다. 그래서 때로는 시간이 지나 사과를 하기도 하는데 황당하게도 상대가 내가 했던 말을 기억 못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더니 종종거린 게 허무해지지만 상처를 준 게 아니었다는 거에 안심한다. 반면에 나는 기억도 못하는 말로 상처를 받았다는 뒤늦은 고백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며 사과하면서도 이 말이 상처였다고? 하고 의아한 적도 종종 있다.


 이처럼 우리는 말을 무기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상처를 받기도 한다. 어떤 때는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무기가 되어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고, 또 어떤 때는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어떤 무기는 양날의 검과 같아서 공격하는 자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말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무기가 된다. 그러니 언제나 그 말을 내놓기 전에 한번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 말이 누군가에게 날카로운 무기가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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