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사람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를 생각하며

by 세 번째 달

나의 작은 사람은 3명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나.


할아버지는 내게 사실 큰 사람이었다. 거목. 아주 큰 나무가 많은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공기를 내뿜고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처럼 늘 크기만 했던 남자. 그러나, 할아버지의 마지막은 그 눈빛이 너무나도 간절하게 살고 싶었던 한 소년이었다. 아니 아기 같았다. 그저 어머니를 바라보며 먹을 것을 구하는 아이처럼 삶을 갈구하는 할아버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커 보였던 한 사람이 이렇게 작아질 수도 있구나. 무적 같아 보였던 그가 무너지면서 나는 한층 자라났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많이 늙었다.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만큼 늙어버렸다. 실제로 두 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길가에서 만나도 이제는 힘이 있는 모습이라기보다 조금은 힘이 빠져서 걷는 듯한 느낌을 받는 아버지는 나의 작은 사람이다. 이제 곧 은퇴를 하시는데, 그렇게 되면 더욱 작아질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33년 일을 하고도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향한 동기는 아마 나를 향한 걱정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더 빨리 자리를 잡고 싶어진다.


또 나의 작은 사람은 나이다. 한로로의 _에게를 듣다가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매일 세상이 쥐여주던 어둠 끝에

홀로 숨죽여 울고 있던

너를 안아주지 못한 날 용서해

어린 아픔 나의 사랑 이젠 안녕"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기숙사 2층 침대에서 홀로 눈물을 2시간 동안 흘리며 아파했던 순간을. 그치지 않았던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서 지금은 눈물이 사라진 것일까. 우울증이 걸린 이후로부터는 눈물이 사라져 버렸다. 17살의 나의 트라우마 때문에 하나도 크지 못했던 나. 20살의 나와 30살의 나를 돌아보면 달라져 있는 게 별로 없다. 어른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지만 하나도 변하지 않은 나. 언제쯤 그 큰 기둥에 달린 목줄을 풀 수 있을까. 트라우마를 빙빙 돌며 목줄이 풀렸지만,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코끼리 이야기가 생각난다.


초원을 자유롭게 다녀야 할 코끼리를 어릴 때부터 작은 공간에 살게 하면 그 공간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이야기. 누구보다 더 거대하고 멋진 삶을 살아낼 수 있는 존재를 망쳐버리는 어릴 적 트라우마. 사실 그것에서부터 벗어나서 살아가는 사람도 너무 많겠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상처받은 인물은 극복해 내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잘 극복하기 힘들다는 문장이 왜 이렇게 와닿는지 모르겠다. 나도 소설 속 인물처럼 꿈을 꾸고 새로운 삶을 향해 변화해갈 미래를 그려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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