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과 희망은 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작은 소망

by 세 번째 달

회복과 희망은 있다. 회복이 없다고 여기는 사람과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을 본다. 터널 시야로 절망뿐이라고 여기는 때에도 여전히 희망과 회복은 존재한다. 그것은 어떻게 자신이 그것을 만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나는 무한한 책의 세상을 상상하며 희망을 꿈꿔본다. 우리가 읽지 않은 책이 얼마나 많은가, 새롭게 만들어질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가운데 우리에게 작은 희망과 회복이 되어줄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인간은 나의 불안과 절망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결국 내 절망이 유일하지 않다는 것. 타인 역시 이런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작은 위안을 얻는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불행을 나의 위로의 요소로 활용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것은 경계해야 한다.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빠질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고 그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이 있으며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의지가 있을 때 무력감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있다. 회복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상처를 통합하여 다시 기능을 회복하는 능력이다. 그저 나의 이 감정이 사라지기를 바란다면, 약을 엄청 많이 먹으면 된다. 그러면 감정을 대충 자른 것처럼 혹은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처럼 멍한 상태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아닌가. 몸이 건강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마음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일을 하고 사랑을 하는 균형을 되찾을 때 마음이 건강한 상태라고 한다. 나는 이제 다시 편의점에서 일을 하고 있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내게 주어진 일이기 때문에 감사하며 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휙휙 바뀌는 감정 속에서 계속해서 꾸준히 무엇이라도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인간의 삶이란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 어떻게 확장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장님과 함께 회식을 했다. 대화를 하면서 가장 와닿았던 말은 "내가 지금까지 인복이 없었던 것 같은데, 찬민 씨를 뽑아서 인복이 생긴 것 같아요. 고마워요."이었다.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하다 보니까, 인정을 받고 누군가 나의 노력을 알아준다는 것이 이렇게 기쁜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 인정받는 것도 기쁜 일인데, 더욱 내 삶을 잘 꾸려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내 삶이 회복된다면 그런 기적도 없다고 느꼈다. 그만큼 답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회복이 점점 연결되고 이어지면서 삶 전체에서 하나씩 회복되는 느낌을 받고 있다. 특히, '일'이 크든 작든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에게 주는 활력과 루틴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의미가 있는 고통은 버틸 수 있다는 문장을 읽었다. 과연 그럴까 비관적인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이 고통에도 의미가 있다는 해석 능력을 활용해보려고 한다. 현재가 전부가 아니라 우리에겐 다음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회복이 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믿으려 한다. 회복이 있다.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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